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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태고발] "젊어질 수 있다면야, 천만 원이 아깝겠어요?" ①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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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불로초 주사’로 불리는 자가 성체줄기세포 주사는 현행법상 허용되지 않는다.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아 보건당국의 허가를 받지 못해서다. 그러나 서울 강남과 부산 해운대 등의 부유층 사이에서는 ‘회춘약’으로까지 불리며 인기를 끌고 있다.

건강과 장수에도 ‘빈익빈 부익부’가 적용되는 건가? 요즘 강남이나 부산 해운대 지역을 중심으로 일명 ‘불로초 주사’로 불리는 줄기세포 주사를 맞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는 소문이다. 보통은 회춘용으로 알려졌지만 일부에서는 불치병을 치료하는 용도로도 암암리에 시술된다. 문제는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은 배양 줄기세포를 활용한 치료가 국내 약사법상으로는 불법 의료행위에 해당한다는 점이다.

“요즘은 늘어난 비거리 때문에 골프 치는 맛이 난다니까!” 부산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김유혁(가명·62) 씨는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늘어난 드라이브샷 비거리 때문에 싱글벙글이다. 2주에 한 번씩 갖는 선후배 기업인들과 골프 모임에서도 그의 늘어난 드라이브샷 비거리가 단연 화제다.

젊은 후배들보다 더 멀리 보내는 그의 샷을 보고 동반자들은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다. 그것도 몇 달 사이에 달라진 일이다. 그는 20년 전에 처음 골프채를 잡았을 때보다도 오히려 비거리가 늘어났다고 너스레를 떤다.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김씨는 자신의 골프실력이 좋아진 것은 몇 달 전에 지인의 권유로 찾아간 성형 클리닉에서 ‘줄기세포 주사제’를 맞은 덕분이라고 믿는다. 일명 ‘불로초 주사’로 불리는 값비싼 회춘약이다. 그는 “나이를 먹으면서 골프 치는 재미가 시들해졌는데, 줄기세포 주사를 맞고 난 뒤 거짓말처럼 몸이 가벼워지고 양손의 힘도 좋아졌다”고 설명했다.

줄기세포 주사란 자신의 골수나 혈액, 지방 등에서 추출한 성체줄기세포를 배양해 맞는 주사를 말한다. 보통의 줄기세포 치료는 간단하게 지방추출·분리·배양·시술 등으로 이뤄지는데, 주사를 통해 몸에 주입하기 때문에 줄기세포 주사라고 부른다.

회춘·미용 목적의 시술 급증

문제는 이 같은 시술이 국내에서는 현행법상 허용되지 않는 불법이라는 것이다. 줄기세포 치료제는 ‘의약품’으로 규정돼 약사법이 적용된다.

약사법은 줄기세포를 자신의 몸에서 추출해 그냥 주입하는 것은 합법적으로 보지만 자기 몸에서 채취한 줄기세포라도 이를 배양해서 의료 목적으로 사용하려면 법에 따른 임상시험 절차를 거쳐 안전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이와 관련해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줄기세포는 치료 목적이든 미용 목적이든 조작 과정을 거쳐서는 안 된다”며 “(줄기세포)배양은 조작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줄기세포를 배양하지 않고 ‘자신의 몸에서 추출해 그냥 주입’하는 것은 치료 효과가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혈액이나 지방에서 추출한 줄기세포 수는 치료제로 사용할 수 없을 정도의 미량이기 때문이다.

한 성형외과 전문의는 “골수나 혈액, 지방에서 줄기세포가 차지하는 비중은 0.01%도 안 된다”며 “치료용으로 사용하려면 최소한 1억셀의 줄기세포가 필요한데, 그 정도의 셀을 혈액이나 지방에서 곧바로 추출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배양’이라는 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줄기세포 치료제를 합법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임상시험을 거쳐야 하는데 거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말한다. 현재 국내에서 줄기세포 치료 허가를 받으려면 후보물질을 추출한 뒤 동물실험을 거치고 나서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에 임상시험을 신청하고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후 세 차례의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식약처에서 다시 허가를 받는 과정을 거친다. 세 차례의 임상시험은 안전성(1상)-약효 여부(2상)-약효확증(3상) 단계로 진행되는데 여기에 보통 4~5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부유층들이 지병도 쉽게 고칠 수 있고 젊음을 되찾게 해준다는 줄기세포 치료 주사를 4년 넘게 기다려가며 맞을 까닭이 없다. 희귀병을 앓고 있거나 병세가 빠르게 나빠지는 치매 등에 걸린 환자들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국내에서도 배양한 줄기세포 치료가 암암리에 확산되고 있는 이유다. 국내 약사법에 따르면 무허가 의약품을 제조하거나 판매(약사법 제31조 위반)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된다.

명백한 불법 의료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서울 강남과 부산 해운대 등지에는 부유층을 중심으로 줄기세포 주사 시술이 확산일로에 있다. 당초 줄기세포 주사치료는 주름개선과 가슴 성형, 대머리 치료 등 미용 목적으로 맞는 이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발기부전, 음경확대 등 성기능 치료에도 효능이 뛰어나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줄기세포 주사제가 회춘의 명약으로 인기를 끈다. 줄기세포 주사를 맞은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이 주사제가 피부미용 등의 외형적 변화뿐만 아니라 간·신장 등 신체기관의 기능까지 향상시켜준다고 소문이 나면서 ‘현대판 불로초’ 내지 ‘만병통치약’으로 통한다.

지난 2011년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의 조사에 따르면 줄기세포 치료를 받은 이유는 당뇨병·류머티즘·파킨슨병 등의 난치병도 있지만 피부미용, 만성피로 등 질환 이외의 목적이 대부분이었다.

‘줄기세포(Stem Cells)’는 말 그대로 인간 생명활동의 근간(줄기)이 되는 세포다. 자기재생능력(self-renewal)과 분화능력(differentiation)을 갖추고 있어 피부·간·신장 등 신체 어느 조직으로든 변화할 수 있다. 즉 줄기세포는 개체를 구성하는 세포나 조직이 되기 위한 원시세포이자 근간세포라고 할 수 있다. 줄기세포를 ‘만능세포’라 부르는 이유다.

줄기세포 주사의 가격은 한 대를 맞는데 1천만 원에 달할 정도로 비싸기 때문에 회춘을 선물해주는 명약이라 할지라도 일반인들로서는 언감생심이다. 성형업계에 따르면 줄기세포 주사의 가격은 줄기세포 수(업계에서는 ‘셀 카운트’라고 부른다)에 따라 달라진다. 보통 1억셀(Cell) 당 700만 원 정도로 암묵적으로 통용된다. 1회 시술에 포함되는 줄기세포 수가 1억~2억셀가량인 것을 감안하면, 어림잡아 주사 한 대에 700만~1400만 원의 비용이 든다.

김씨는 “주사 한 대 가격으로는 비싼 편이지만, 젊어지고 있는 것을 스스로 느낄 정도니 돈이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효능이 알려지면서 비슷한 연령대의 사업하는 친구들은 너도나도 주사제를 맞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내에는 세 가지의 줄기세포 치료제가 허가돼 환자들에게 시술된다. 사진은 관절 내시경을 통해 손상된 연골에 줄기세포를 주입하고 있는 모습.(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난치병 환자의 줄기세포 시술도 늘어

성형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줄기세포 주사를 이용하는 고객들 중에는 정치인·고위공직자·기업인·연예인 등도 다수 끼어있다. 이들 대부분이 1년에 3~4차례씩 정기적으로 줄기세포 시술을 받는다고도 한다. 1년에 자연 소멸되는 줄기세포 수가 4억셀 정도인데, 그만큼을 보충해주면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김씨 역시 자신의 복부 지방에서 추출한 줄기세포를 배양해 현재까지 얼굴과 어깨, 허리 등에 네 차례나 시술을 받았다.

부산 해운대에 있는 한 줄기세포 치료 전문병원 관계자는 “부산에서도 웬만큼 돈 있는 사람은 다 맞았다고 보면 된다. 부유층에서는 정기적 시술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정기적 시술의 필요성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40대부터 자신의 몸 안에 있는 줄기세포가 급격히 줄어들게 된다. 1년에 4억~5억셀 정도로 추정한다. 줄기세포 감소는 노화의 주요 원인이다. 노화를 늦추거나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인위적으로 줄기세포를 넣어줘야 한다. 예를 들어 노화가 진행된 50대의 얼굴에 줄기세포를 주사하면 주름살이 없어지고 팽팽해진다. 얼굴 세포는 50대지만 새로 주사된 줄기세포는 한 살짜리 세포이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을 거쳐 노화가 방지된다고 보면 된다. 줄기세포 치료에 비용이 많이 들지만, 효과를 몸으로 느낀 사람들이 반복해서 줄기세포 주사치료를 하는 이유다.”

그는 최근 들어서는 단순 ‘미용’ 목적이 아닌 음경확대, 질 수축 등 성기능과 관련된 시술도 크게 늘어나는 추세라고 귀띔했다. 줄기세포 주사 한 대로 젊은 시절처럼 왕성한 성생활을 할 수 있다는데 그것이 가능할까? 부산에서 직접 줄기세포 주사를 맞은 사람들을 수소문해 직접 만나보나 확인해보기로 했다. 먼저 박성훈(가명·68) 씨의 경험담이다.

“줄기세포 주사로 음경확대와 근육강화 치료를 받은 친구 한 명이 30대처럼 살고 있다고 자랑하고 다녔다. 실제 그 친구는 나보다 한 살 어린데 열 살은 더 젊어 보인다. 그 친구가 줄기세포 이야기를 자주 해서 솔깃한 마음에 직접 발기부전치료를 받았는데 거짓말이 아니었다. 시술을 한 뒤로는 밤늦게까지 친구들과 어울려도 힘에 부치지 않는 등 라이프 스타일이 확 바뀌었다.”

주부 김경자(가명·63) 씨도 성기능 치료를 받아 생활의 기쁨을 찾았다. 그는 60대를 넘긴 나이지만 얼핏 봐서는 50대의 외모로 비칠 정도였다. 김씨는 “특별한 질병은 없지만 줄기세포 주사를 맞으면 건강이 더 좋아지고 피부 미백과 주름 개선에도 효과가 있어 1년에 서너 차례 맞는다”며 “3개월 전에는 질수축 시술을 받았는데, 이게 바로 만병통치약이구나 싶었을 정도로 효과를 보았다”고 말했다.

병원 관계자들의 설명으로는 최근 난치병 환자들이 줄기세포 주사치료를 받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특히 척수손상이나 관절염·당뇨병·심혈관 질환 등 만성 질환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주요 고객이란다. 지난 4월 말, 줄기세포 치료 전문병원으로 유명한 부산 해운대의 한 클리닉을 직접 찾아가보았다. 밖에는 ‘피부과 전문’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지만, 주로 줄기세포 치료를 한다.

최재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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