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시론

안전하려면 안전비용 부담해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최종찬
전 건설교통부 장관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최근 한국 사회 곳곳에 가려져 있던 안전 불감증 문제가 속속 드러나고 그에 따른 각종 대책이 우후죽순처럼 거론되고 있다. 지하철·다중이용시설·요양병원 등 안전을 강화해야 할 대상이 수두룩하다. 모든 국민이 안전을 강화하라고 요구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안전은 공짜가 아니다. 안전강화에는 많은 비용이 따르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안전을 강화하면 우선 관련 요금이 인상될 가능성이 크다. 세월호 참사는 선박의 불법 증축, 과적, 비정규직 저임의 선원 고용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했다. 앞으로 단속을 강화해 해운회사가 규정을 제대로 지키도록 할 경우 비용은 크게 늘어날 것이다. 결국 이와 같은 비용은 요금으로 전가될 가능성이 크다.

 경기도와 서울로 다니는 직행버스의 정원초과 문제도 같은 예다. 출퇴근 시 입석으로 고속도로로 다니는데 이를 엄격히 단속하면 버스가 증차되지 않을 경우 승객들은 버스 타기가 그만큼 어려워질 것이다. 증차할 경우 낮에는 승객이 적어 버스회사 입장에서는 경영수지가 악화할 것이다. 그것은 요금 인상이나 정부 보조금 요구의 원인이 될 것이다. 화물 트럭의 과적 단속도 마찬가지다. 과적 못하는 만큼 수입이 줄어 결국은 요금 인상 요인이 될 것이다.

 각종 안전시설 투자비용도 늘어날 것이다. 수년 전 대구 지하철 사고가 난 후 대책의 하나로 지하철 전동차 내부의 많은 부분을 불연재로 대체했다. 수천억원의 국가 예산이 전동차 개체 비용에 지출됐다. 지하철 스크린도어 설치에도 막대한 금액이 들었다.

 기업도 안전시설 투자비용이 늘어날 것이다. 화재예방을 위해 내화벽 설치를 강화하면 그만큼 비용이 늘어나게 마련이다. 각종 건물이나 상가·음식점 등에서 유사시 탈출구 등으로 확보해야 할 공간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는 매우 흔하다. 물건 등을 쌓아놓은 창고로 쓰기도 하고 아예 영업장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것을 제대로 규제하면 영업장이 축소되거나 임대료 부담이 늘어날 것이다.

 안전 관련 인원도 늘어날 것이다. 국가안전처 신설에 따른 증원뿐만 아니라 각종 재난 구조 직원과 안전 규제 공무원의 증원도 예상된다. 아울러 민간 기업에서도 안전담당 직원의 증원과 안전교육 강화가 불가피할 것이다. 안전 관련 예산이 늘어나고 안전요원 증원이 실시되면 사회간접자본(SOC) 등 다른 부분의 예산은 상대적으로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재원은 한계가 있으므로 우선순위 조정에 따라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안전시스템은 우리의 생명을 좌우한다. 생명은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다. 물질적으로는 아무리 풍요해져도 사랑하는 가족, 친구의 죽음 앞에는 모든 것이 의미가 없다. 따라서 안전시스템은 충분한 비용과 시간을 들여 제대로 개선해야 한다. 무슨 문제가 발생하면 온통 그 문제로 뜨겁게 달아오르다 시간이 지나면 냄비처럼 식어버리는 잘못을 다시 범해서는 안 된다. 그동안 성수대교·삼풍백화점·대구지하철 등 수많은 대형사고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후 안전시스템은 별로 나아진 게 없어 보인다.

 안전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강화하려면 겉으로 드러난 원인분석뿐만 아니라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나게 된 근본적인 사회 환경이나 시스템까지 철저히 파악해서 제대로 된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 비용도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정부의 대응은 시작부터 실망스럽다. 세월호 사건의 철저한 진상조사는 아직 시작조차도 안 됐는데 정부는 재난사고의 컨트롤타워로서 국가안전처를 국무총리 산하에 설치하고 해양경찰은 해체하겠다고 발표했다. 국가안전처의 구체적인 기능이나 기존 해경의 업무 처리 등은 앞으로 정할 것이라고 한다. 그동안 각종 사고는 한국 사회의 ‘빨리빨리’ 문화에서 비롯됐다. 그런데 이번 안전시스템 강화 대책의 첫 단추도 빨리빨리의 관행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시간을 충분히 갖고 비용도 필요한 만큼 들여서 세월호를 중심으로 한국 사회 전반에 걸쳐 안전시스템의 문제점을 철저히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종합적인 안전강화 로드맵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를 준비하면서 가장 염두에 둘 점은 안전은 공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안전하게 살려면 우리 모두 안전비용 부담을 준비해야 한다.

 이렇게 안전을 강화하면 그만큼 국민적 부담은 늘어나게 마련이다. 하지만 비용을 무한정 늘릴 수만은 없다. 따라서 안전을 강화하되 효과를 극대화하고 부담을 합리적으로 조절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각종 대책 추진에 따르는 비용과 효과를 분석해 가급적 적은 비용으로 효과가 큰 대책 위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최근 국회에 안전을 강화하는 규제 법안이 줄줄이 상정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안전 강화를 이유로 규제를 추가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세월호 사건에서 볼 때 규제가 없어서가 아니라 규제를 지키지 않은 것이 원인이므로 기존 규제가 지켜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안전을 위한 비용과 규제는 합리적이어야 한다.

최종찬 전 건설교통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