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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코지 트레이드, 최경환 트레이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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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종윤 기자 중앙일보 편집국장
김종윤
뉴미디어 에디터

유럽에서 재정위기가 발생하자 프랑스에도 비상벨이 크게 울렸다. 포르투갈·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PIGS)이 발행한 국채를 프랑스 민간 은행이 대거 갖고 있어서다. 은행들은 유럽중앙은행(ECB)을 쳐다보았다. PIGS가 국채를 발행하고 ECB가 1차 발행시장에서 국채를 사주는 해법을 기대했다. 그러면 PIGS의 국채 값이 안정돼 프랑스 민간 은행도 파산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기대, 오산이었다. ECB는 리스본 조약에 따라 ‘구제금융 금지 조항(No Bailout Clause)’에 묶여 있었다. 유로존 회원국들의 국채를 발행시장에서 직접 살 수 없다는 뜻이다. 프랑스는 곤경에 빠졌다. 프랑스 정부가 직접 나서 은행에 공적자금을 지원하는 방법이 있었다. 하지만 2011년 8월 당시는 재정위기 바이러스가 맹렬히 유럽 전역으로 퍼질 때라 프랑스도 안심할 수 없는 처지였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나섰다. 절묘한 시기를 택했다. ECB가 유럽의 민간 은행에 자금을 장기·저리로 빌려주자는 아이디어였다. 이게 유럽 재정위기가 민간 은행들의 파산으로 전염되는 걸 막은 ‘사르코지 트레이드’다. 정식 명칭은 ‘장기 유동성 주입 프로그램(LTRO)’.

 경제는 심리가 좌우한다. 경제정책을 그래서 ‘타이밍(Timing)의 과학’이라고 부른다. 결단할 때는 과감해야 한다. 사르코지는 분명했다. 시장에 확실한 신호를 주었다. ‘민간 은행의 파산은 없다.’

 유럽의 속내를 뜯어본 건 한국의 새 경제팀에 훈수를 두고 싶어서다. 새 경제부총리로 내정된 최경환 의원은 ‘2월의 참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 당시 정부는 전·월세 소득에 세금을 물리겠다는 정책을 ‘임대차 시장 선진화 대책’이라고 포장했다. 소득이 있으면 당연히 세금을 내야 한다. 여기에 토를 달 생각은 없다. 문제는 시기였다. 당시는 박근혜표 복지정책이 슬슬 시동을 걸 때였다. 복지 지출을 확대하려면 세수도 늘어야 한다. 선진화라는 이름 뒤에서 ‘세금을 더 걷겠다’는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부동산 시장은 길을 잃었다. 경기부양이라는 신호를 내내 주더니 갑자기 정반대의 사인이 들어와서다. 조금씩 싹을 틔우던 시장에 다시 찬바람이 몰아친 건 당연지사다. 차갑게 식은 투자심리를 다시 살리려고 뒤늦게 군불을 때보지만 아랫목에 기별도 안 온다. 시장의 냉정한 반응에 정부가 당황했다. 두 차례나 보완 대책을 냈다. 13일에 당정협의라는 형식으로 나온 2차 완화대책에서는 월세 임대소득 과세를 1년 더 늦춰 2018년부터 세금을 내도록 했다. 이럴 거면서 왜 2월에 서둘러 발표했는지, 참 답답하다. 지금 주택시장에는 냉소만 남았다. ‘사르코지 트레이드’는 절박하게 갈구한 결과 찾은 해법이었다. 새 경제팀도 절박해야 한다. 한국경제호(號)의 엔진은 서서히 식어가는 중이다. 이러다가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 밀려온다. ‘최경환 트레이드’에 대한 기대는 그래서 크다.

김종윤 뉴미디어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