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상처 입은 뇌, 명상과 이야기로 치유해 보세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3면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정신적 고통이 만연한 나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문관인 수전 오코너 박사가 한국의 정신건강 시스템 전반을 다룬 보고서(2012)에서 우리 사회에 던진 메시지다. 안전불감증이 부른 연이은 참사와 자살률 1위라는 오명, 알코올 남용과 도박, 학교 폭력 같은 사건사고에 끊임없이 노출되면서 마음은 지치고 병들어 간다.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강도형 교수는 “예상치 못한 사고를 겪고 고통받는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는 특정한 소수만의 얘기가 아니다”라며 “빈번히 발생하는 심리적 외상을 극복하는 훈련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불안감·회의감·통증 … 심리적 외상의 증거

가까운 사람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 큰 부상, 교통사고, 가정폭력, 천재지변과 재난…. 심리적 외상(트라우마)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은 멀리 있지 않다. 연세대 신학과 정석환 교수는 “사건 당시 충격이 사라지지 않고, 트라우마가 남아 일상적인 삶을 방해하면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로 본다”고 말했다.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사람은 늘 불안해하고, 삶에 회의를 느낀다. 인간관계에서는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강도형 교수는 “충격의 잔상이 겹쳐 항상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 노출되면 세로토닌(행복호르몬) 같은 신경전달물질이 제대로 분비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감정의 변화는 신체 이상 반응도 함께 부른다. 강 교수는 “자율신경계가 불안정해 근육이 긴장하고, 흥분 상태가 이어진다”며 “면역력이 떨어져 쉽게 지치고 감정조절이 안 돼 분노를 표출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세월이 약이라고 생각하고 스트레스 장애를 방치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조언했다. 성공회 윤종모 주교는 “심리적 상처가 기억을 자극했을 때 무서워서 숨으려고만 하면 일생 동안 본인을 괴롭힌다”고 말했다. 강도형 교수는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부정적인 감정과 태도가 이어지면 뇌에서는 감정적·신체적 반응이 습관처럼 굳는다”고 말했다.

가까운 사람과 얘기하고, 전문가 도움 받아야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는 극복할 의지가 있다면 충분히 나아질 수 있다. 치료 방법은 다양하다. 강도형 교수는 “약물치료와 심리치료뿐 아니라 최근에는 명상이 적극 활용되면서 치료 효과를 끌어올린다”고 말했다. 약물 치료는 신경전달물질이 균형 있게 분비되도록 돕는 과정이다. 본인을 이해해 주는 사람과 아픔을 나누는 것은 심리치료의 한 방법이다. 정 교수는 “상처 입은 뇌는 이야기의 보상을 필요로 한다”며 “이를 통해 불안함과 답답함·아쉬움·죄책감을 덜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명상은 외상후 스트레스를 치료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될까.

 명상은 마음을 단련시킴으로써 스트레스에 대항하는 심신의 면역력을 강화하는 방법이다. 충격·스트레스 때문에 흐트러진 자율신경계를 조절하고 심신의 이완을 돕는다. 강도형 교수는 “집중력을 높여 감정을 조절하는 뇌 기능을 강화한다”며 “스트레스에 대항할 수 있는 긍정적인 정서를 갖게 한다”고 설명했다. 외국에서는 명상을 정신치료 보조 수단으로 활용한다. 강 교수는 “미국에서는 명상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개발돼 의사·심리치료사·상담사가 환자의 트라우마 극복을 돕는 과정에 적극 활용한다”고 말했다.

 심리적 외상을 극복하는 것은 때론 성장의 발판이 된다. 윤종모 주교는 “인생을 살다 보면 도처에서 상처를 받을 수 있다. 그렇지만 어떤 이는 상처에 무너지는 반면 어떤 이는 성장하는 계기가 된다”고 말했다. 무너지는 사람은 상처받는 데 익숙해 늘 좌절한다. 그렇지만 성장하는 쪽으로 훈련된 사람은 상처를 받을수록 강해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마음에 집중하며 답 찾는 것이 명상

외상후 스트레스장애의 치료는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한 끊임없는 훈련의 과정이다. 정 교수는 “파도가 쳤다가 물러나듯 상처도 주기적으로 반복된다”며 “일상생활에서 슬픔, 죄책감 같은 증상이 몰려올 때 자신의 마음을 지키고 트라우마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기술을 꾸준히 익혀야 한다”고 말했다.

 명상은 마음을 단련하는 효과적인 훈련 방법으로 주목받는다. 정석환 교수는 “본격적인 운동 전에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 듯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데도 일정한 공식이 있다”고 말했다. 잡념을 비운 채 호흡에 집중하고 마음의 상태를 관찰하는 것이 기본자세다. 정 교수는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그것을 왜 피하는지 스스로 자신의 마음에 집중하며 답을 찾는 것이 명상”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명상은 거창하고 어려우며 무겁다는 편견이 있다. 윤 주교는 “접시를 닦을 때 찌꺼기만 씻어내리는 게 아니라 마음의 상처와 더러움·약함·두려움을 같이 씻어내겠다고 마음먹으면 이 자체도 명상이 된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조명을 어둡게 하고 차를 마시며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 것, 그 자체도 명상이 된다”고 말했다.

 다만 명상을 처음 접할 때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윤 주교는 “전문가로부터 명상과 호흡법, 심상법(마음을 보는 것)을 배우고 일상생활에서 변화된 시각과 마음가짐을 끌어내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글=이민영 기자 사진=김수정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