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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이야기로 풀어낸 남북 건축 세계인들에게 강렬한 인상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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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14회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 한국 현대 건축을 이끈 김수근을 소개하는 코너도 마련됐다. 위에 걸린 사진은 잠실종합경기장 안에 선 김수근.
2 한국관 커미셔너를 맡은 건축가 조민석씨가 국가관 전시 중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 트로피를 들고있다.

7일 개막한 제14회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 건축전은 세계 건축을 리드하고 있는 네덜란드 건축가 렘 콜하스(Rem Koolhaas·69)가 총감독을 맡아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모토를 내세웠다는 점에서 개막 전부터 뜨거운 관심을 모아왔다. 게다가 한국관 전시 ‘한반도 오감도’(Crow’s Eye View: The Korean Peninsula)가 66개 국가관 전시 중 최고의 영예인 황금사자상을 받아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국관 커미셔너를 맡은 건축가 조민석(48·매스스터디스 대표)씨와 총감독 렘 콜하스, 그리고 남북한 건축의 절묘한 만남은 이번 비엔날레의 성격을 압축해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 한국관의 ‘유토피언 투어’ 섹션.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영국인 닉 보너가 소장하고 있는 북한 관련 자료를 모아놓은 방이다.
8 제 14회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 건축전 총감독을 맡은 렘 콜하스

총감독 렘 콜하스, 건축의 본질을 묻다
“발코니가 없었다면 세계 역사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렘 콜하스는 올해 초 영국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유럽 역사의 격동기마다 발코니에서 열변을 토하며 대중을 선동하는 이들이 없었다면 혁명 등 사회를 바꾸는 변화가 일어나기 힘들었을 거라는 설명이었다. 건물의 한 부분이면서 도로 등과 만나는 열린 공간, 이 발코니의 역사와 비엔날레가 무슨 상관이라는 걸까.

하지만 렘 콜하스가 직접 지휘한 본 전시가 열리고 있는 베니스 자르디니 공원의 중앙관을 가보면 이 의문은 모두 풀린다. 발코니는 물론 계단·화장실·부엌·복도·벽·바닥 등 조각조각 해부된 듯한 건물의 각 부분이 전시장의 주인공으로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직접 큐레이터로 나선 ‘건축의 요소들(Elements of Architecture)’ 전시다. 왜 그는 지금 이처럼 일상적인, 너무도 익숙한 것들을 전시장 가운데로 이끌어낸 것일까. 콜하스는 건축전문지 ‘아키텍추럴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지금 모든 것에 접근이 쉬워진 디지털 사회(flat digital world)에 살고 있지만 갈수록 중요한 사실을 잊어가고 있다”며 “우리가 건축의 본질적인 것들과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를 깨닫고 앞으로 여기서 끌어낼 잠재력이 무엇인지 돌아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번 비엔날레 주제가 ‘근본’ ‘본질’(Fundamentals)이 된 배경이다.

베니스 비엔날레로부터 총감독 제안을 여러 차례 받아오면서도 끈질기게 고사해온 그는 이번에 제안을 수락하며 두 가지 조건을 달았다고 한다. 준비기간을 2년 이상으로 보장해 달라는 것과 전시에서 현대 건축을 다루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개막 기자회견에서 콜하스는 “갈수록 건축 전시가 미술·디자인 전시와 굉장히 비슷해지고 있다. 그런 경향과 확실히 선을 긋고 싶었다”고 밝혔다. 기존 건축전과 차별화하겠다는 콜하스의 구상은 이렇게 요약된다. 첫째, 건축의 역사를 돌아보겠다는 것. 둘째, 올해 건축전의 주인공을 건축가(architect)가 아닌 건축(architecture)으로 만드는 것이다. 빅 네임 건축가를 가리는 일 따위는 다 잊고 건축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자는 선언인 셈이다.

4 러시아관 5 일본 아티스트 스기모토 히로시의 다도 퍼포먼스 6 영국관 7 스페인관

전시 설계로 승부한 한국관 커미셔너 조민석
올해 프로그램은 그의 이 같은 뜻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근대성의 흡수: 1914~2014’를 주제로 한 국가관 전시도 마찬가지다. 지난 100년 동안 각 나라의 건축이 어떻게 변모해 왔는지 돌아보는 자리인데, 여기선 콜하스가 제안한 주제를 각 국가관 전시를 총괄하는 커미셔너들이 어떻게 풀어내는가가 관건이었다.

예컨대 일본관은 ‘인 더 리얼 월드’라는 주제로 1970년대에 초점을 맞췄다. 당시 젊은 건축가들이 이끈 급진적인 건축 실험에 초점을 맞췄다. 여기엔 안도 다다오가 1976년 완공한 콘크리트 집 ‘스미요시 나가야’의 콘크리트 모델이 한 자리를 차지했다. 브라질은 자국 건축이 나름 고유한 개성을 갖고 발전해왔다는 전제 하에 연대기적 조명을 택했다. 브라질의 ‘국민 건축가’ 오스카 니마이어(1907~2012)의 회고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전시장을 니마이어 작품 사진으로 가득 채운 점이 눈길을 끌었다. 은사자상을 수상한 칠레관은 1970년대 공장에서 찍어 만든 ‘콘크리트 패널’을 전시장 한가운데 놓았다. 전시를 위한 쇼가 아니다. 당시 정치 이데올로기가 건축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가장 강력하게 보여주는 재료로 콘크리트 패널을 택한 것이다.

한국관이 택한 주제는 남북한 건축이다. 조 커미셔너는 “지난 100년간 한반도를 지배한 가장 큰 역사적 현실이 분단인 만큼 남북한 건축을 동시에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배형민 서울시립대 교수, 안창모 경기대 교수와 함께 큐레이터로 전시에 참여한 그는 안세권·신경섭·필립 모이저·오사무 무라이·크리스 마커(사진), 문훈(건축 드로잉), 닉 보너(북한 관련 작품 컬렉터), 임동우(북한 건축 연구), 강익중(회화) 등 총 29개 팀의 작가가 참여해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구성으로 전시장을 꾸몄다.

하지만 ‘분단’과 ‘건축’ 이야기를 어떻게 자극적으로 이용하거나 왜곡하지 않고 의미 있는 성찰의 실마리로 활용할 것인가가 한국관이 풀어야 할 큰 과제였다. 다양한 예술 장르의 작업물과 학술적 성과를 어떻게 한 자리에 아우를지도 문제였다. 내용이 산만해질 위험 요소가 적잖았다.

하지만 이런 우려와 달리 한국관은 정제된 디스플레이로 콘텐트를 소화해냈다. 프란체스코 반다린(심사위원장) 등 5인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은 “다양한 장르를 긴밀하게 연결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한반도의 지정학적인 현실을 잘 담아냈다”며 한국관에 황금사자상을 안겼다.

조씨는 현대 한국 건축의 기대주다. 그동안 파주 ‘딸기가 좋아’, 서울 강남역 사거리의 ‘부띠크 모나코’, 포털사이트 다음의 제주 사옥 ‘스페이스닷원’, 2010년 상하이 엑스포 한국관 등의 설계로 두각을 드러냈다. 연세대 건축과·미 컬럼비아대 건축대학원을 나온 뒤 뉴욕에서 활동하고, 렘 콜하스가 운영하는 설계사무소 오엠에이(OMA)에서 3년간 일한 그는 국제 감각과 네트워크를 탄탄하게 갖췄다는 평을 듣는다. ‘준비된 커미셔너’로서 콜하스가 짜놓은 이번 비엔날레의 전체 프레임을 정확하게 읽고 준비한 것이 성과를 높였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편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를 주관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권영빈)가 2012년 커미셔너 선발을 공모와 추천으로 변화시키고 조씨를 선발한 것도 한국관의 수상 가능성을 높였다는 분석이다.

글=이은주 기자 , 사진=외신종합·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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