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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가는 길 다양 … 학생에게 쉽고 훈훈한 방법 가르쳐라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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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9호 06면

사진 어맨다 리플리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 구상은 6·4 지방선거에서 대거 당선한 진보 교육감 당선자들의 공약이다. 또 혁신학교를 4년 내에 1700개로 늘린다고 한다. 지난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은 참고서·학원이 필요 없이 교과서만으로 교육이 완성되는 ‘교과서 완결 학습체제’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우리 교육의 문제점은 누구나 인지하는 것이지만, 이런 구상이 발표될 때마다 학생과 학부모는 걱정이 앞선다. ‘백년대계’라는 교육이 사람이 바뀔 때마다 이랬다 저랬다 하는 탓이다. 특히 이번에 진보 교육감의 대거 당선으로 불안과 기대가 교차하고 있다.

교육 강국 탐사작가 어맨다 리플리가 본 한국교육

 그럼 대한민국 교육엔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일까. 학부모나 학생 눈에는 온통 문제점투성이겠지만 제3자의 눈엔 달리 비칠 수도 있다. 우리 교육의 현주소를 보다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 어맨다 리플리(큰 사진) 뉴아메리카재단 선임연구원을 인터뷰했다. 지난해 여름 출간된 그의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아이들(The Smartest Kids in the World·작은 사진)은 미국 교육계에 상당한 충격을 줬다. 지금까지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있다.

 -한국 교육의 장단점은 무엇인가.
 “지나친 스트레스, 시험 점수에 매달리는 것, 암기 교육 등이 문제지만 보다 많은 학생들이 읽기·수학·과학에서 세계 최고 성취도를 자랑한다는 점은 높이 살 만하다.”

 -미국과 비교하면 어떤가.
 “한국 교육체제는 학생들을 ‘과대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 체제는 반대로 ‘과소 평가’한다. 특히 수학의 경우 미국에서는 타고난 재능이 있어야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유전적인 요인과는 상관없이 열심히 공부하고 연습하면 수학을 잘할 수 있다고 본다. 한국의 저소득층 학생들의 성과도 뛰어나다. 한국의 저소득층 학생의 13%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시험 결과 상위 25%에 든다. 미국 학생들의 경우는 5%에 불과하다.
 한국 대입제도가 지극히 능력주의(meritocracy)에 충실하다는 것도 장점이다. 출신이나 가문이 아니라 특정 점수 이상만 받으면 대학에 갈 수 있다. 미국의 경우는 예컨대 아버지가 하버드대 동문이면 그 자식도 하버드대 입학 가능성이 높다. 공평하지 않다.
 그런데 외국인 입장에서 보면 한국에서는 능력주의가 사회에 진출할 때에는 퇴색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의 톱5 대학 졸업장만 있으면 자신의 능력을 계속 증명할 필요가 절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업장이 실제 업무 성과보다 더 가치 있다고 통하는 것은 아닌지···. 물론 나는 외부 사람이기 때문에 이러한 관찰이 틀렸을 가능성이 있다.”

 -좀 더 비판적으로 평가해달라.
 “한국의 교육체제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지는 아주 어려운 문제다. 너무나 많은 상반되는 모습이 공존하는 체제다. 그래서 더욱 한국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우선, 한국은 미국에 ‘멋진 영감(beautiful inspiration)’을 주는 모델이다.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도록 독려하는 모델이다. 특히 수학과 과학에서 스스로를 더 높은 단계로 끌어올리게 하는 모델이다. 미국 부모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자녀들의 실력 향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한국 교육이 보여준다. 한국 학생들은 공부 차원을 뛰어넘어 인생 차원에서 어려움에 대해 배운다. 가끔은 실패하고 또 훌훌 털고 일어나 다시 시도하는 것을 배운다. 그러한 인내는 지능지수(IQ)보다 더 소중한 것이다. 아이들이 어른이 돼 살아가는 데 평생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면을 들여다보면 한국 교육은 학생들을 기진맥진하게 만든다. 한국 시스템은 ‘교육 에베레스트’의 꼭대기로 올라가기 위한 매우 비효율적인 방법이다. 산을 올라가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보다 쉽고 보다 ‘훈훈한(humane)’ 방법이 있다.”

 -한국 교육이 본받아야 할 모델은?
 “전체는 아니지만, 미국 학교 중 일부는 교육의 엄격성과 창의성이 잘 균형 잡혀 있다. 게다가 그런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즐겁게 공부하는 가운데 높은 학업 성취 수준에 도달한다. 나라 차원의 모델을 살펴본다면 한국과 마찬가지로 PISA 시험 결과로 상징되는 학업 성취가 좋지만 방과후 과외 비율도 낮은 핀란드·캐나다·폴란드 등이 흥미롭다.”

 -미국은 대중 교육이 문제지만, 대학원 교육 등 엘리트 교육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만, 현재 교육체제로는 미국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다고 본다. 지금도 미국은 세계의 나머지 국가들에 대해 여러 경제적 우위를 지니고 있지만, 우위 요소가 점점 줄고 있다. 다른 나라들은 전진했는데 미국은 같은 자리에 머물렀다. 과거에는 경제적 우위 덕분에, 예컨대 15세 미국 학생들의 실력이 선진국 평균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특히 수학에 통달하지 않고도 좋은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자동화와 아웃소싱의 시대에는 그게 불가능하다. 이제 학생들은 변화에 신속하게 적응할 수 있는 보다 높은 학업 수준에 도달한 다음 사회에 진출해야 한다.”

 -한국 학생들이 1·2위를 다투는 PISA 시험은 암기 중심인 한국 학생들에게 유리하지 않나.
 “PISA 시험이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현재로선 세계 각국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 수준을 비교할 수 있는 최고의 평가 기준이다. PISA 시험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문제해결 능력, 논증 능력, 판단력, 응용력 등을 측정한다. 직접 시험을 치러봤는데 그 어떤 표준화 시험보다 높은 수준의 사고를 요구하는 시험이었다. 놀라운 점은 이 시험이 직장 업무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 늘 수행해야 할 과제와도 관련이 깊다는 점이다. 정보량이 아주 많거나 부족할 때 리스크를 평가하는 능력도 측정할 수 있는 시험이다.”

 -유럽의 경우 부모들이 자녀들의 직업학교 진학에 호의적이다. 한국의 부모들은 대학 문호가 대폭 줄어들어 자녀들이 직업학교로 진학해야 한다면 크게 반발할 가능성도 있다.
 “세계 어느 나라나 교육의 장점 그리고 교육이 처한 도전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크게 좌우하는 것은 부모다. 하지만 부모의 역할이 특히 두드러진 곳은 한국이다. 직업학교가 대학만큼의 명망을 얻지 못한다면 한국 부모들이 만족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직업학교 교육의 수준과 명망이 높으면 학술적 스킬(skill)보다 실용적 스킬에 관심에 많은 학생을 유인할 수 있다. 한국의 직업 프로그램들은 미국보다 훨씬 학업 성취 수준이 높다.”

 -한국 대학 교육은 특히 삼성·LG 등 기업들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내가 방문한 모든 나라에서 기업들은 직원들의 스킬에 불만이 있다. 회사가 필요로 하는 스킬과 직원들의 스킬 사이에는 분명히 부인할 수 없는 격차가 있다. 나라별로 격차의 대소(大小)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격차는 ‘건강한’ 갈등이다. 사람들의 삶과 미래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왔다 갔다 하며 끊임없이 토론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경제적으로 생존하고 성공하는 데 꼭 배워야 할 것들이 있다. 하지만 생각하는, 활기 넘치는 사람이 되고, 공동체의 건강한 일원이나 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도 있다. 세계 모든 나라에 있는 이런 긴장이 얼마만큼 문제이며 얼마만큼 건강한 것인지 말하기는 사실 어렵다.”

 -미국 교육은 세계의 다른 문화에 대해 어느 정도까지 가르치는가.
 “미국은 교육의 우선순위에서도 매우 자기중심적(self-centered)인 상태로 남아 있다. 하지만 세상은 작아졌다. 세상은 넓고도 좁은 곳이 됐다는 것을, 보다 많은 미국 사람이 자각하고 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시하는 게 불가능해졌다. 미국은 천천히 바뀌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계의 다른 나라들은 오래전부터 밖을 내다보고 있다. 지금은 미국이 그래야 할 때다. 그래야 미국 국민이 잠재력을 온전히 실현할 수 있다.”

 -한국 독자들에게 할 말이 있다면?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 가지 강한 인상을 받은 게 있다. 한국에서 만난 아이들은 내가 다른 나라에서 만난 그 어떤 아이들보다도 쾌활했다. 그들은 생명력으로 가득했다. 나를 만나 이야기한다는 사실에 들떠 있었다. 하지만 내가 학교 얘기를 꺼내자 아이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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