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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뿔이 흩어진 세월호 기록, 시민 품으로 가져와야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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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9호 08면

세월호 사고 추모기록보존 봉사단이 진도 실내체육관 옆에 텐트를 연 지도 한 달이 넘었다. 지금까지 구술 30건, 사진 797건(홈페이지 게재 기준)이 모였다. 봉사단이 서울과 안산 등 전국에서 수집하고 있는 추모기록은 오는 9월 서울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유재연 기자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실종자 12명은 아직까지 뭍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다. 희생자 및 실종자 가족들은 이 사건이 점점 잊혀지고 묻히는 것이 두렵다고 말한다.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을 ‘기억 수집’으로 실천하는 이들을 중앙SUNDAY가 만났다. 지난달 14일부터 진도 체육관을 시작으로 서울·안산 일대에서 자원봉사자와 세월호 생존자들, 희생자 가족들을 상대로 구술 작업 및 기록 보존을 하는 이들이다. 참사에 대한 추모 기록을 모은 ‘세월호 기억 저장소’도 곧 문을 연다.

[세월호 침몰 두 달] 추모기록 보존 나선 자원봉사자들

김익한 교수

 추모기록보존 자원봉사단을 이끄는 김익한(54·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장·사진) 교수를 필두로 시민단체와 기록 관련 협회 20여 곳이 뭉쳤다. 명칭은 ‘세월호를 기억하는 시민 네트워크’. 11일 명지대 연구실에서 이뤄진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김 교수는 “이제는 세월호에 대한 기억 수집을 전 국민적 운동으로 확대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전쟁이나 다름없는 세월호 참사를 역사의 기록으로 모두 남겨야 한다는 게 김 교수의 주장이다.

인터넷 기억 저장소에 모이는 기록들
‘세월호 기억 저장소’ 홈페이지(http://sewolho-archives.org)에 따르면 9일 기준으로 모인 기록은 구술 30건, 문서 186건, 사진 797건이다. 동영상도 100건 가까이 모였다. 홈페이지가 완전히 정비되지 않아 통계 작업이 더딜 뿐, 실제 구술 작업 수는 이보다 훨씬 많다고 김 교수는 밝혔다.

 구술 작업은 지난달 14일 진도 실내체육관 옆에 설치된 추모기록보존 천막에서 이뤄졌다. 처음 천막이 설치됐을 땐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힐끗 보고 지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자신이 보고 겪은 슬픔과 울분을 풀어내고자 하는 사람이 점차 늘었다고 했다.

 홈페이지에 공개된 국제민간구호기구 아드라(ADRA) 자원봉사자 이근혁씨의 구술 기록은 그간 쌓인 기억의 대표적 사례다. 지난달 9일부터 일주일가량 봉사활동을 하던 이씨의 눈에 수많은 풍경이 담겼다. 대학생들이 용돈을 모아 기증한 트레이닝복을 실종자 가족이 아닌 일반인이 입으며 “사이즈가 맞지 않는다”고 투덜대더라는 이야기, 밥을 먹으러 온 잠수사들의 먹먹해하던 모습, 공무원들은 당최 할 줄 아는 게 없고 모두 시민들이 팔 걷고 나섰다는 내용들이 40분짜리 음성파일에 남았다. “팽목항의 빨간 등대를 보고 있으면 눈물이 흐른다” “외환위기 때도 국민들이 위기를 극복했지 않았나. 정부는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든다”라고도 했다.

 자원봉사자 세 명도 말을 거들었다. 천안함 유족들처럼 가족 잃은 아픔을 공감해 도우러 온 사람들도 많았다고 했다. 사촌 여동생의 시신을 발견했는데도 가족관계 증명이 안 돼 몇 차례나 시신을 확인하러 왔다갔다한 유족의 모습도 생생하게 전달했다. “진도는 동화처럼 아름다운 섬인데, 이제는 세월호 참사 때문에 ‘슬픔의 섬’으로 여겨질 것 같다”며 안타까워하는 주민의 목소리도 담겼다. 이달말이면 이들처럼 현장을 지켰던 사람들의 수많은 이야기가 홈페이지에 공개된다.

‘기억 0416’ 모금 운동도 전개
“며칠 전에 발견된 안중근 학생의 의자 위에 누군가 ‘돌아오라’고 적은 팻말을 세워놨는데, 그게 그렇게 가슴이 미어지더라”고 말하며 김 교수는 눈물을 떨궜다. 단원고 2학년 교실 열 곳에는 여전히 노란 쪽지와 리본, 사진들이 아이들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많은 종이 쪽지들이 하얗게 바랬다. 단원고 측은 김 교수에게 이 기록들을 보존해달라고 부탁했다.

 추모객들이 각 분향소에 남긴 편지와 리본 등 추모 기록들은 붙여진 그 모습 그대로 보존하는 게 원칙이다. 누군가는 리본 모양으로, 어디선가는 하트 모양으로 쪽지를 붙이는 등 나름대로 의미 있게 배열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얇은 종이로 벽을 그대로 본뜬 다음 쪽지를 옮겨 붙여 보관하는 방식을 취한다고 했다.

 아이들이 메고 갔던 가방과 신었던 운동화,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립글로스와 열쇠고리. 모두 지금은 물기가 마른 상태다. 각 가정에는 이 같은 유품을 보관할 수 있도록 보존용 박스 100개가 전달되고 있다고 했다. 주인을 찾지 못한 슬리퍼 한 짝, 흰 티셔츠 같은 유류품도 60일 넘게 팽목항 컨테이너 박스에 머물러 있다. 대부분이 김 교수 측에 전달될 예정이다.

 모든 기록을 보관할 ‘세월호 기억 저장소’는 안산 고잔동에 들어선다. 35평짜리 사무실엔 보관서고를 마련하고, 그곳에서 채 50m도 떨어지지 않은 28평짜리 공간엔 작은 전시관과 세월호 희생자 가족을 위한 이야기 카페를 만들 거라고 했다. 동네 부동산 사장이 “내 아들도 단원고 3학년생”이라며 “누군가 웃돈을 줘도 다른 곳과는 계약하지 않을 것”이라며 일사천리로 좋은 공간들을 구해줬다고 했다. 10일 계약을 마친 추모 공간들은 곧 인테리어 작업을 거친 뒤 문을 연다.

 재원은 아름다운재단에서 마련해주고 있다고 했다. 벌써 온라인 사이트 구축 사업과 사무실 임대료 등에 든 돈 1억6000만원을 기부해줬다고 했다. 지난 9일부턴 ‘기억 0416’이라는 이름으로 9억9000만원 목표 모금도 시작됐다. 모자라는 돈은 기록학계에서 십시일반할 예정이라고 했다. 재능기부를 하려는 업체들의 손길도 몰리고 있다. 동영상 사이트 몇 곳이 홈페이지에 들어갈 동영상 제작 과 유지를 돕겠다며 나섰다고 했다.

월드컵 땐 빨간 티·노란 손수건 캠페인
김 교수는 ‘사랑의 기록’을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전쟁 같은 참사 속에서도 서로 다독이고 위로하며 배려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한다는 것이다. 그곳에서 비로소 희망을 볼 수 있다고 했다. 김 교수와의 일문일답.

 -사랑의 기록이 무엇인가.
 “봉사자들이 찍은 사진을 모아보면 특이하게도 실종자 가족들을 찍은 건 하나도 없다. 물어보니까 너무 미안해서란다. 미안해서 가족들을 찍을 수 없었다고 하는데…, 그런 게 인간으로서의 도리이고 우리 내면의 본질이 아닐까. 심지어 나도 배려를 받았다.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는 나를 위해 어느 봉사자가 일부러 매트를 두껍게 깔아 체육관에 마련해줬다. 누군가로부터 그렇게 배려를 받는다는 것은 온전히 새로운 경험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바로 사랑의 기록이다.”

 -구술 기록에서 분노도 많이 느껴진다.
 “실례로 40일 넘게 자원봉사를 하던 정성도(54) 주방장이 지난달 28일에 진도 읍내에 나갔다가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일이 있었다. 당시 체육관에 있던 보건복지부 직원에게 말했더니 ‘자원봉사자가 외부에서 질환을 앓은 것까지 도와주라는 지침이 내려온 바 없어 날이 밝으면 부처에 문의해 회의를 거쳐 알려주겠다’고 답했다. 그뿐 아니라 정부가 교신부터 112 보고서, 심지어 아이들 휴대전화 기록까지 훼손했다는 말이 계속 나오고 있지 않나. 이런 왜곡된 구조가 사랑의 기록을 압살(壓殺)하고 있다. 정부와는 함께 일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시민들의 기억을 나눌 구체적 계획이 있나.
 “일단 각 지자체에 흩뿌려진 추모 기록들을 시민의 품으로 되돌릴 것이다. 그리고 9월 말께 서울 시내 큰 야외공간에서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이름의 전시회를 열려고 한다. 아직 공간도, 큐레이터도 정해진 건 없다. 다만 사랑과 눈물, 분노를 테마로 전시를 기획하면 좋을 것 같다. 이 전시는 그대로 안산으로도 옮겨 갈 거다. 또 월드컵 기간에는 붉은 티셔츠에 노란 손수건을 드는 캠페인을 하려고 한다. 빠른 시일 내에 팽목항에서 취재를 한 각 언론사 사회부 기자들을 모아 이야기도 들어볼 예정이다.”

 -진도 현지의 구술봉사 천막은 언제 철수하나.
 “마지막 실종자가 나오는 순간까지 진도 체육관 옆 기록 자원봉사활동 천막은 그대로 유지될 것이다. 기억을 모으는 것은 잊지 않겠다는 뜻과도 통한다. 기억 수집가인 우리마저 천막을 치우면 실종자 가족들은 더욱 불안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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