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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데뷔전서 2골 네이마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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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All in One Rhythm!(모두 하나의 리듬으로!) 브라질 월드컵 슬로건이다. 구호를 현실로 만든 건 브라질의 샛별 네이마르(22·바르셀로나)였다. 월드컵을 둘러싸고 불협화음을 냈던 브라질도 그의 골이 터지는 순간만큼은 “브라질”을 외치며 한목소리를 냈다.

 2014 브라질 월드컵 개막전 브라질-크로아티아전이 13일 상파울루 아레나에서 열렸다. 경기장으로 가는 길은 평온하지 않았다. 시내 여덟 곳에서 월드컵 반대 집회가 열렸다. 경기장으로 향하는 지하철에서 만난 톰 쿠카토는 “교육과 복지는 등한시하고 막대한 자금이 드는 월드컵을 개최한 이유를 모르겠다. 반대 집회가 열리는 카랑역으로 간다”고 했다. 열차는 시위대와 기마 경찰이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는 카랑역에 정차하지 않고 통과했다. 쿠카토는 “이럴 줄 알았다. 그래도 꼭 참석할 것”이라며 다음 역에서 내렸다. 카랑에서 네 정거장 떨어진 상파울루 아레나에서는 브라질 팬들이 국가를 목이 터져라 불렀다. 하지만 정부에 대한 불만은 여전했다. 경기장 내 대형 스크린에 지우마 호세프(57) 대통령의 모습이 나오자 야유가 쏟아졌다. 상대팀 주축 선수인 루카 모드리치(29·레알 마드리드)가 소개될 때보다 더 큰 야유였다.

  경기가 시작되자 갈등이 잦아들었다. 전반 11분 브라질 수비수 마르셀루가 자책골을 넣자 브라질 팬들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월드컵 84년 역사상 개막전 첫 골이 자책골로 들어간 건 이번이 처음이다. 0-1로 크로아티아에 리드를 허용하자 ‘브라질’을 외치는 팬들의 목소리가 도리어 더 커졌다. 실수한 선수를 향해 아낌없이 격려가 쏟아지자 삼바 군단의 리듬이 빨라졌다.

 선봉에는 10번을 단 네이마르가 섰다. 예전에 펠레가 달았던 바로 그 번호다. 생애 처음 출전한 월드컵에서 위대한 등번호를 부여받은 네이마르가 공을 잡을 때마다 관중석이 들썩였다. 그리고 마침내 팬들의 기대에 부응했다. 전반 29분 아크 정면에서 네이마르의 왼발을 떠난 공은 빠르게 땅볼로 굴러가 크로아티아 골대 오른쪽을 관통했다.

 후반 26분에는 브라질이 페널티킥을 얻었다. 크로아티아 수비수가 살짝 손을 대자 브라질 공격수 프레드(31)가 넘어졌고, 심판이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니코 코바치(43) 크로아티아 감독은 경기 후 “니시무라 유이치 주심과 같은 기준으로 판정하면 이번 대회에서 100개 이상의 페널티킥이 나와야 한다. 월드컵이 아니라 서커스가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논란이 된 페널티킥의 키커로는 네이마르가 나섰다. 네이마르는 부담스러운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며 승부를 뒤집었다. 후반 43분 네이마르가 교체돼 물러나자 팬들은 기립박수로 찬사를 보냈다. 브라질은 종료 직전 오스카르(23)의 쐐기골로 ‘발칸의 강자’ 크로아티아를 3-1로 눌렀다.

 네이마르는 한때 개인적인 플레이를 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18세였던 2010 남아공 월드컵 때도 대표 물망에 올랐지만 둥가 감독은 그를 제외했다. 산투스에서 주전으로 뛰며 그때부터 ‘제2의 펠레’라고 칭송받았던 그에겐 충격적인 결과였다. 크로아티아와 경기는 네이마르가 어떤 점에서 성숙했는지 잘 보여 줬다. 그는 철저하게 팀 동료를 이용했고, 그것을 통해 더 경쾌한 몸놀림을 뽐낼 수 있었다.

 2011년이 반전의 포인트였다. 헤어진 여자친구가 자신의 아들 다비드 루카를 낳은 것을 알게 된 그는 책임을 미루지 않았다. 직접 데려와 키웠고 “아들을 준 하늘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된 그는 브라질 대표팀에서 주축으로 뿌리를 굳건히 내렸다. 지난해 브라질에서 열린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는 4골을 넣으며 최우수선수에 선정됐다. 브라질도 정상을 밟았다.

 그의 나이는 이제 고작 22세다. 펠레 이후 10번을 물려받은 브라질 선수 중 가장 나이가 어리다. 펠레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네이마르를 향해 “아직 대표팀의 중심에 서기엔 이르다”고 말했지만 그의 섣부른 예언은 개막전부터 빗나갔다. 루이스 펠리피 스콜라리(66) 브라질 대표팀 감독은 네이마르를 대표팀의 중심에 배치했다. 지난해까지 왼쪽 측면에 배치하던 네이마르를 펠레가 뛰었던 자리인 최전방 중앙으로 옮겼다. 스콜라리는 네이마르에게 자유를 줬고, 네이마르는 자신 앞에 펼쳐진 드넓은 공간을 맘껏 휘저었다. 동점골을 넣은 네이마르가 스콜라리의 품에 뛰어든 이유다. 월드컵 데뷔전에서 2골을 넣은 건 ‘축구 황제’ 펠레(74·브라질)를 비롯해 현역 최고 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29·포르투갈), 리오넬 메시(27·아르헨티나)도 이루지 못한 기록이었다. 펠레는 18세의 어린 나이로 출전한 1958년 스웨덴 월드컵에서 5골을 넣으며 우승컵을 들었지만 월드컵 데뷔전이었던 소련과 경기에서는 골을 터트리지 못했다.

상파울루(브라질)=김민규 기자

사진설명

네이마르가 크로아티아와의 월드컵 개막전에서 페널티킥 결승골을 넣은 뒤 관중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브라질 등번호 10번은 펠레의 후계자라는 의미다. 네이마르는 브라질 월드컵 첫 경기부터 2골을 쏘았다. 월드컵 데뷔전에서 2골을 터트린 건 메시·호날두는 물론 펠레도 못한 일이다. 작은 사진은 왼쪽부터 네이마르가 여자친구와 승리를 자축하는 모습. 월드컵 공식 주제가를 부른 클라우디아 레이테와 제니퍼 로페즈. 브라질 국기로 장식된 안경을 쓴 팬들. [로이터·AP·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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