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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우 나이키여 잘 가거라" … 세계 유일 부대 해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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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지난달 30일 공군은 부대 하나를 없앴다. 나이키(NIKE)라는 지대공미사일이 배치됐던 부대다. 이 부대는 ‘나이키’를 보유한 세계 유일이자 마지막 부대였다. 나이키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옛 소련의 전폭기들에 공포의 대상이었다. 1965년 미군이 넘겨준 뒤 50년 동안 영공을 지켜왔다. 그런 나이키도 이제 패트리엇 미사일에 자리를 내줬다. 이연수 공군방공유도탄사령관(공군 소장)은 “나이키 부대 창설 이후 전우와도 같은 나이키가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하고 자랑스럽게 퇴역하게 됐다”며 “나이키는 이제 우리 공군 역사의 뒤안길로 간다”고 말했다.

  우리 군은 6·25전쟁 이후 미군이 공짜로 준 무기들로 군대를 꾸렸다. 70년대 이후엔 자주국방 정책에 따라 무기를 대거 교체하며 굵직한 사업을 통해 전력의 공백을 하나씩 메워왔다. 그런 만큼 도태 중이거나 도태 예정인 무기들도 늘고 있다. 대표적인 도태 무기는 69년 미군의 특별군사원조로 처음 들여온 F-4D 팬텀 전투기다. 도입 당시엔 음속의 두 배가 넘는 속도로 날며 ‘미그기 킬러’ ‘하늘의 도깨비’라는 별칭을 얻었던 최첨단이었다. 북한의 군사 위협이 가중되던 70년대엔 자주국방을 위해 국민이 모은 방위성금 163억원 가운데 65억원으로 팬텀 5대(방위성금헌납기)를 구매하는 등 공군은 모두 70여 대의 팬텀을 운영했다. 공군 관계자는 “팬텀은 우리 군이 베트남전 3차 파병 대가로 미국에서 6대를 들여온 이후 추가로 도입해 우리 공군의 주력으로 활약했다”며 “팬텀 도입으로 전력을 역전시켰지만 도입 40년이 넘으면서 도태됐다”고 말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패튼 전차라 불리며 맹위를 떨쳤던 M-47 전차 역시 2000년대 초 모두 사라졌다. 6·25전쟁 때 북한군의 옛 소련제 전차에 속수무책으로 밀렸던 아픈 경험을 지닌 우리 군은 지상전의 왕자인 전차(M-47·M-48)를 수백 대 들여와 보유했다. 88전차로 더 잘 알려져 있는 K-1 전차가 생산되면서 M-47 전차는 물러났다. 반면 도입된 지 40년이 넘은 M-48 전차는 일부 도태됐지만 동부전선과 백령도·연평도 등에서 여전히 활약하고 있다. 군 관계자는 “구형 전차를 대체할 K-2 전차 도입계획이 당초 680대에서 200대로 줄었다”며 “새 전차가 배치돼도 공백이 생겨 구형 전차는 당분간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6·25전쟁 당시 북한 해군의 부산 앞바다 진입을 막았던 우리나라 최초의 전투함 백두산함(PC-701)을 시작으로 해군 함정들은 50년대 말부터 도태의 길을 걸었다. 이미 외국에서 도태시킨 함정들을 들여와 수리한 뒤 사용한 데다 바닷물로 인한 부식 속도가 빨라 육군·공군 무기보다 수명이 짧았다. 미국에서 들여온 70여 척을 포함해 모두 120여 척이 퇴역했다.

  무기의 수명은 법적으로 정해진 건 없다. 통상 함정은 20~30년을 사용하면 고물 취급을 받는다. 전투기는 외형을 제외하고 모든 부품과 뼈대를 교체하는 기골보강(氣骨補强)을 통해 업그레이드를 하더라도 30~40년이면 교체된다. 전차는 25년 안팎의 사용연한이지만 굴러갈 때까지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역에서 은퇴한 무기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되고 있다. 함정의 경우 군사협력 차원에서 양도하는 경우가 많다. 1달러를 받고 수출하기도 한다. 동남아시아나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국가 등으로 20여 척을 양도했다. 해군 관계자는 “우리가 수명을 다한 함정을 들여와 한동안 사용했던 것처럼 이를 필요로 하는 나라들이 있다”며 “우리 함정을 받은 나라들이 우리나라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져 협력이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퇴역 무기의 양도가 국산 훈련기나 포탄 등 방산물자를 수출하는 데 일조하면서 군사외교의 일환으로 쓰인다는 뜻이다.

 다른 무기로 태어나기도 한다. M-47 전차가 대표적이다. 전차에 장착됐던 포탑(砲塔)을 떼어 해안에 배치해 해안포로 활용하기도 한다. 고열과 바람을 일으키는 전투기의 엔진은 활주로의 눈 제거용 기계(일명 마징가 제트)로 개조해 사용하기도 한다. 또 정비기술자들의 실무교육용 재료로 쓰인다. 일부는 지자체나 교육기관, 박물관에 전시용으로 제공된다. 국방부 당국자는 “퇴역 무기를 지원해 달라는 요구가 늘고 있다”며 “여건상 가능한 대로 지원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전시용으로 양도하는 경우 인명살상용으로 사용될 수 있는 주요 부품과 보안장비를 제거하는 일명 ‘비군사화’ 작업을 마치고 전달된다.

정용수 기자

M1 소총 미국 역수출하려다 …

군이 6·25 때 사용하던 M1 개런드 소총의 미국 수출길이 막혔다. M1소총은 미국이 지원해 우리 장병들의 주력 소총으로 사용해 왔다. M16소총이 보급되며 군에선 자취를 감췄다. 대표적인 퇴역 무기다. 국방부는 살상용 무기인 M1 소총 8만여 정을 별도로 보관해오다 미국 수출을 타진했다.

 M1 소총은 미국에서 골동품 취급을 받고 있다. 미국 내 총기·골동품 수집가들 사이에서 한 정당 1000달러 이상에 거래되고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 인기가 높은 것을 알고 지원받은 무기를 미국에 역수출하려 한 것이다. 미국 정부도 처음엔 긍정적인 입장이었다. 하지만 최근 연이어 발생하는 미국 내 총기 사고로 인해 미 국무부와 국방부가 불가 입장으로 선회했다. 여전히 살상력이 높은 M1 소총이 대거 미국에 풀리면 총기 사고가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국방부 당국자는 “다른 나라에서는 대부분 폐기했지만 우리는 이를 별도로 보관하고 있어 한 정에 400~500달러를 받고 미국으로 수출하려 했지만 어렵게 됐다”며 “보관에 비용이 들어가고 있어 처분 방식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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