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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어린이책 <5> "문방구 장난감 총칼 싫어요" 피켓 하나가 만든 평화의 기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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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무기 팔지 마세요!
위기철 글, 이희재 그림
청년사, 229쪽, 9800원

어른도 그렇겠지만 아이한테는 게임 레벨 올리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밤낮으로 애써야 간신히 한 단계씩 올라가는 것인데 얼마나 소중할까. 하지만 평화는? 그건 만질 수도, 먹을 수도, 내가 애써 얻은 것도 아니니 그저 사전에 있는 단어 정도로나 여길지 모른다.

반공주의 교육의 폐해에서 벗어난 게 불과 이십 년 남짓이지만 대신 다른 숙제가 생겨났다. 아이들 일상에 깊이 스며든 폭력에 대한 고민, 그리고 평화를 시큰둥하게 여기는 마음을 바꿔놓는 것이다. 이는 두 개의 과제가 아니라 하나로 이어진다. 아이들이 일상 속 폭력을 가벼이 여기지 않고 진지하게 여긴다면 작은 행동이 바뀔 것이고, 이 바뀐 행동들이 퍼져나가면 교실이, 학교가, 마을이, 어쩌면 나라가, 세계의 운명이 평화로 향할지 모른다.

이게 꿈이고 이상이기만 할까? 노래로 존 레넌의 ‘이매진(Imagine)’이 있다면 한국 아동문학에는 위기철의 『무기 팔지 마세요!』가 있다. 존 레넌은 평화로운 세상을 ‘상상하자’고 했지만 위기철은 그것을 이야기 속 현실로 만들어냈다.

한국의 보통 여자아이 보미는 같은 반 남자아이가 장난으로 쏜 비비탄을 맞는다. 보미와 친구들의 항의에도 사내아이들은 막무가내다. 이에 여자아이들은 ‘평화를 위한 모임’을 만들어 무기 장난감을 거두는 운동을 벌이고 학교 앞 문방구에서도 무기 장난감을 팔지 말라며 평화를 호소한다. 이 피켓팅은 신문에 기사화되고 남자아이들도 서서히 감화받아 ‘평화를 위한 모임’의 홈페이지를 만든다.

여기에서 끝났어도 흐뭇하겠지만 이야기는 예상치도 못한 곳까지 훌쩍 뛰어넘는다. 미국 소녀 제니가 ‘무기 팔지 마세요!’란 팻말을 든 한국 소녀의 사진에 감동하여 툭하면 총기 사건이 일어나는 자국 현실에 반기를 든 것이다. 제니의 호소는 미국 전체로 퍼져나가 많은 이들의 동감을 얻고, 워싱턴에서 시민들의 대규모 행진을 이끌어낸다. 너무 동화라고?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동화는 현실을 반영하고, 때로는 현실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아동문학은 소설(작은 이야기)이 아니라 대설(큰 이야기)’이라는 말이 있다. 어린이들에게는 그냥 지금 여기 있는 현실만 보여줄 것이 아니라 그 틀을 넘어 과연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원리를 허구의 세계에서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희망은 어린이가 갖는 최대의 특권이며 아동문학이 이상주의와 닿아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어린이들에게 평화로운 세상을 선물하려는 어른들의 노력도 중요하다. 하지만 적어도 허구에서라면 어린이들은 선물 받는 평화보다 자신이 애써 얻어낸 평화를 더 소중히 여길 것이고 그것은 어린이들의 시민 의식, 나아가 평화로운 세계를 현실화시키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끈다’는 유명한 말을 살짝 바꿔보고 싶다. ‘영원히 어린이다운 것이 세계를 구원하리라.’

박숙경 아동문학평론가

박숙경은  인하대 일본학과, 동대학원 한국어문학과에서 아동문학을 공부했다. 평론집 『보다, 읽다, 사귀다』(창비), 역서로 『비가 톡톡톡』(히가시 나오코), 『개를 기르다』(다니구치 지로)가 있다. 현재 계간 『창비어린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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