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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가난하고 높았던 시인 백석 … 그를 향한 안도현의 연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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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백석평전
안도현 지음, 다산책방
456쪽, 1만2000원

어떤 존재에 대한 깊은 애정은 때로 놀라운 것을 만들어낸다. 이 책도 그렇다. 스무 살 무렵 백석(1912~96)의 시 ‘모닥불’을 처음 만난 후 그를 짝사랑하기 시작한 시인 안도현(53) 우석대 교수는 30여 년간 품어온 선배 시인에 대한 애정을 한 권의 책으로 풀어냈다. 450쪽이 넘는 분량에 백석의 삶과 문학을 빼곡히 챙겨넣은 『백석평전』이다.

 책은 만주에서 5년 여의 시간을 보낸 백석이 해방을 맞아 고향 평안북도 정주로 돌아가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기러기들은 떼를 지어 날았지만 백석은 혼자였다. 그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터벅터벅 길을 걸었다”같은 쓸쓸한 문장이 이어진다. 그리고 이야기는 백석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 이승훈·조만식 등에게 배웠던 오산학교 시절, 일본 유학생활, 기자로 활동하다 시집 『사슴』을 내놓아 문단의 주목을 받았던 이야기까지 시인의 삶을 연대기별로 풀어놓는다. ‘세종로를 걸으면 사람들이 돌아 볼 만큼’ 잘생겼던 시인의 연애담도 흥미롭다. 짝사랑에 그치고 만 통영 여인 박경련, 기생 자야와의 사랑, 여류 시인 최정희·모윤숙·노천명과의 인연 등을 상상력을 발휘해 복원해냈다.

시인 백석

 새로운 사실도 많다. 백석의 연인이었던 자야 김영한이 발표한 수필 두 편을 처음 발굴해 소개했고, 백석의 통영방문 횟수가 모두 세 차례였다는 점도 조사를 통해 밝혀냈다. 백석의 시로 알려진 ‘나와 지렝이’ ‘늙은 갈대의 독백’ ‘계월향 사당’ 같은 작품이 그의 작품이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못박는다. 무엇보다 희미했던 북한에서의 행적을 되살리는 데 힘을 쏟았다. 문학이 체제유지 도구로 전락한 북한에서 백석은 시 대신 러시아 문학 번역이나 동시 등 아동문학에 관심을 둔다. 하지만 50년대 아동문학 논쟁에 휘말려 오지인 양강도 삼수군으로 쫓겨갔고, 그곳에서 숨을 거둔다. 북한 체제를 예찬하는 내용을 담은 시도 여러 편 발표했다.

 저자는 정치와 역사에 휘둘릴 수 밖에 없었던 시인의 삶을 단정적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삶은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렇게 혼란한 시대를 살아낸 한 인물에 대한 전기인 동시에, 빼어난 시인의 시 세계를 조명하는 해설서이자 한 남자의 굴곡진 생애를 담은 소설처럼도 읽힌다. 다양한 시점과 문체로 진행되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했던 한 시인의 초상이 오롯이 드러난다.

이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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