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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남자는 친밀한 사람에게 거짓말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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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형경
소설가

삼십대 초반인 그는 사소한 일들에 대해 여자친구에게 거짓말하는 습관이 있었다. 여자친구가 점심에 무엇을 먹었느냐고 물으면 김치찌개를 먹었으면서도 순두부를 먹었다고 대답했다. 좋아하는 색에 대해 질문을 받으면 여자친구가 입고 있는 셔츠를 보며 노란색이라고 말했다. 명백히 파란색을 좋아하면서도. 그는 사실과 다른 정보를 내놓는 순간 그 사실을 자각할 수 있었고, 미안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럼에도 오랜 버릇이 개선되지는 않았다.

 사실 거짓말은 무의식적으로 행해지는 자기보호 전략이다. 성장기 내내 우리는 진실을 말했을 때 화내거나 믿어주지 않는 어른들을 상대해 왔다. 사실대로 말하면 용서해 주겠다는 말을 믿었다가 더 큰 곤욕을 치른 경험도 있다. 거짓말하는 이들에게는 믿어주지 않는 양육자가 먼저 있다. 무엇보다 남자들은 세상을 기본적으로 경쟁의 장(場)으로 이해한다. 자기 정보를 노출할수록 경쟁에서 취약한 자리에 서게 된다고 믿는다. 요즈음 같은 정보화 사회에서는 잘못 내보인 개인정보 하나가 어떤 곤란을 초래할지 상상할 수 없다. 솔직함이란 곧 사회적 미숙함과 같은 셈이다.

 남자들의 거짓말은 또한 상대를 컨트롤하는 전략이기도 하다. 친밀한 대상에게 자기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 인정받고 싶은 모습을 연출해 그의 마음을 얻으려고 한다. 가끔은 거짓말을 적극적인 유혹의 도구로 사용한다. 여자도 그 정도는 알고 있다.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믿기 때문에 결혼하는 여자는 없다. 선거철이 되면 남자들의 유혹의 언어가 잔칫상 위에 진설된다. 공약을 내거는 사람도, 그것을 듣는 사람도 약속이 전부 지켜질 거라 믿지 않는다. 지난 대선 직후 중년의 남성 지인이 이런 말을 했다. “저 여성 대통령께서 공약을 모두 지키려고 하실까 봐 걱정이야.” 거짓말에 관한 한 남자가 여자보다 전문가임을 천명하는 말처럼 들렸다.

 남자들의 거짓말은 친밀한 관계를 보호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다. 청소년기 남자는 엄마를 상대로, 성인 남자는 주로 연인이나 아내를 상대로 거짓말을 펼친다. 연인과 모든 것을 공유하는 게 사랑이라 믿는 여자들은 남자가 자기 일에 대해 침묵하거나 은폐하는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 진실을 내놓으라고 다그치기도 한다. 비즈니스 파트너의 거짓말은 문제삼아야겠지만 친밀한 파트너의 거짓말은 믿어주는 게 좋다. 관계를 지속하고 싶지 않을 때 남자는 진실을 말할 것이다. 다른 여자를 만난다고, 너의 잔소리가 듣기 싫다고.

김형경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