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정외과 4학년
지난주 개최된 퀴어문화축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시기적으로는 세월호 참사 여파가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진행되었다는 점을 차치하더라도 다소 파격적인 행보를 보인 퍼포먼스 행사, 그리고 동시에 같은 장소에서 진행됐던 반(反)동성애 단체의 맞불 시위와 맞물려 여러 이야깃거리를 생산해 냈다.
올해로 15회차를 맞은 축제는 주제로서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Love conquers hate)’라는 문구를 내걸었다. 문구 하나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론 혐오 역시 강한 동기를 제공할 수 있는 충분한 기제가 아닌가 싶다.
혐오 또는 증오가 생산적인 일을 이룰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특히 혐오가 정치화될 때는 위험한 파급력을 가진다. 대체로 특정 집단에 대해 배타성을 갖게 하는 증오 심리는 ‘우리’라는 울타리 안에서 결집효과를 불러일으켜 더 강한 목적성을 띠게 하고, 영향력을 확장시킨다. 인종주의가 만연했던 20세기에 인류는 인종청소를 목격한 바 있다. 이는 혐오가 낳은 가장 끔찍한 산물이었다.
우리는 종종 외국인 혐오, 여성 혐오, 동성애 혐오, 가난 혐오 등등 갖가지 종류의 혐오가 어긋난 행동주의로 연계되는 광경을 목격하곤 한다. 새로운 위험으로 대두되고 있는 묻지마 범죄,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등장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의 왜곡된 특정 가치관의 전파 및 편중 심화, 그리고 오프라인에까지 확산되는 끼리끼리 문화가 바로 그것이다.
이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최근에는 미국의 총기난사 사고 중 피의자가 여성 혐오주의자였다고 보도된 바 있 다. 그 대상이 무엇이든 혐오가 기폭제가 되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는 세태는 우려스럽다. 다원화를 중시하는 글로벌 시대에 혐오를 위시한 약자에 대한 소외시키기와 마녀사냥, 그리고 배타적인 민족주의 열풍은 사회 전체적으로 낭비를 유발할 뿐이다.
혐오는 직관적이고 표현하기에 거침없고 쉽다. 이에 비해 사랑은 희생, 관용, 이해를 아우르는 숭고한 노력을 요한다. 사랑이 혐오보다 강하기 위해선 넘어야 할 임계치가 존재하는 것 같다. 모든 청중을 배려하지 않는 표현의 자유 수위나 일방통행식 맞불 시위 모두 상대 진영의 혐오를 재생산해낸 측면이 분명히 있다. 개인적으로는 동성애가 자연스럽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들의 기본권과 표현의 자유는 존중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양성에 대한 담론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공고화시킨다는 측면에서 충분히 고무적이다. 인정과 대화는 사랑을 혐오보다 강하게 하기 위한 첫걸음이 아닐까.
김지훈 고려대 정외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