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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구청장 득표율, 여 44% vs 야 52% … 결과는 5 vs 20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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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8호 04면

어느 선거에서나 득표율로 나타난 유권자의 표심(票心)과 당선자 분포가 반드시 일치하진 않는다. 득표한 것보다 훨씬 많은 당선자를 내는 정당이 있는가 하면 반대의 경우도 있다. 득표율보다 많은 자리를 차지한 정당은 ‘과다 대표’, 반대의 경우 ‘과소 대표’가 된다. 그게 선거의 현실이다. 중앙SUNDAY는 수도권 기초단체장 선거 결과를 놓고 대표성의 왜곡 정도를 분석했다. 서울(25곳)·경기(31곳)·인천(10곳) 등 기초단체 66곳이 그 대상이다.

[6·4 지방선거 리뷰] 수도권 당선 기초단체장, 대표성 따져보니

득표율 7%p 차이에 점유율 60%p 격차
“서울 구청장, 새정치민주연합 20곳 싹쓸이.”

6·4 지방선거가 끝난 뒤 이 같은 뉴스가 쏟아졌다. 서울에서 구청장을 뽑는 25곳 중 20곳에서 승리했으니 ‘싹쓸이’란 것이다. 하지만 득표율로 보면 좀 다르다.

새정치연합이 얻은 득표율(서울 전체 구청장 선거에서 나온 표 중 새정치연합 후보자들이 얻은 표)은 51.6%였다. 그런데 당선자 점유율은 80%에 이른다. 득표한 것보다 훨씬 많은 당선자를 낸 것이다.

새누리당은 44.19%의 득표율을 올렸다. 하지만 당선자 점유율은 20%(25명 중 5명)에 불과하다. 얻은 표에 비해 자리를 획득하는 데 실패했다.

두 당의 득표율은 7.41%포인트 차이 난다. 이게 당선자 점유율에선 60%포인트의 격차로 나타났다. 새누리당에 비해 새정치연합의 표가 승리에 더 쏠쏠하게 쓰였다. 서울 구청장 전체 선거에서 인물과 별개로 정당만 봤을 때 새정치연합은 ‘과다 대표’되고, 새누리당은 ‘과소 대표’ 된 셈이다. 이는 최고 득표자 한 명을 당선자로 뽑는 소선거구제의 특징이다.

미국 예일대의 더글러스 레이(정치학) 교수가 만든 레이 지수(Rae index)로 보면 이런 대표성의 왜곡이 수치로 확인된다. 레이 지수란 각 정당의 득표율과 의석 점유율의 차이 값을 모두 더한 뒤 정당의 수로 나눠 구한 값이다. 지역 선거에서 득표율 0.5% 이상의 정당만 계산에 넣는다. 이론상 모든 정당이 득표율만큼의 의석만 얻는다면 레이 지수는 0이다. 반대로 100%를 득표한 정당이 한 석도 못 얻고, 한 표도 못 받은 당이 의석을 다 갖는 극단적 상황에선 100이 된다. 이 값이 두 자릿수면 대표성 왜곡이 심하다고 본다.

이런 논리를 6·4 서울 구청장 선거에 적용한 결과 레이 지수는 17.95였다. 대표성의 왜곡현상이 수치로 드러났다. 레이 교수가 서구 20개국을 조사해 구한 평균치는 3.96이다.

4년 전 선거에 비해서도 대표성의 왜곡 정도는 심해졌다. 2010년 서울 구청장 선거에서 레이 지수는 11.95였다. 당시 민주당은 48.4%의 득표율로 21명(84%)의 당선자를 냈고, 42.8%를 얻은 한나라당은 4명(16%)만 당선시켰다. 두 정당만 보면 올해보다 왜곡현상이 심했던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당시엔 자유선진당·미래연합 등 10개 정당이 구청장 선거에 후보를 내 올해(5개 정당)보다 표 집중현상이 덜했다. 레이 지수를 계산할 때 집어 넣는 기준인 득표율 0.5% 이상을 얻은 정당이 4년 전에 더 많았다.

서울에서 대표성 왜곡이 완화되지 않은 원인으로 여권 지지층의 결집 부족을 꼽는 이도 있다. 명지대 김형준(정치학) 교수는 “이번 지방선거는 2012년 대선의 연장처럼 치러져 다른 지역에선 여권 표가 결집했는데 서울에선 그렇지 않았다”며 “서울의 여권 지지층은 ‘관피아 척결’ 같은 정부 정책에 더 예민하고 불만이 큰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경기 여권 지지층 4년 전보다 더 결집
31명의 기초단체장을 뽑은 경기도는 어떨까. 새정치연합은 48.51%의 득표율로 17명(54.83%)의 당선자를 냈다. 44.76%를 득표한 새누리당에선 13명(41.93%)의 당선자가 나왔다. 대표성 왜곡이 서울보단 덜한 셈이다. 레이 지수는 3.27이었다. 서구 20개국 평균치(3.96)보다 낮다.

경기도 지역은 4년 전에 비해서도 대표성 왜곡현상이 완화됐다. 4년 전 민주당은 47.41%를 득표했는데 31곳 중 19곳(61.29%)을 획득했다. 한나라당은 42.56%의 득표율을 올리고도 10곳(32.25%)을 얻는 데 그쳤다. 당시 레이 지수는 6.48이었다.

2010년에 비해 올해 선거에선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의 득표 수 자체가 늘었다. 새누리당은 4년 전보다 39만493표(올해 226만9422표, 4년 전 한나라당 187만8929표)를, 새정치연합은 36만6818표(올해 245만9882표, 4년 전 민주당 209만3064표)를 더 얻었다. 수치상으로 4년 전보다 여권 지지층이 더 결집한 셈이다. 이를 통해 2010년 아슬아슬하게 졌던 곳에서 선거 판도를 뒤집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2010년 선거는 이명박 정부 3년차에 실시돼 중간평가론과 정권심판론 바람이 박근혜 정부 2년차인 이번 선거보다 더 강하게 불었다. 당시 여권 지지자들의 표가 한나라당 외에 미래연합 등으로 분산되기도 했다.

반면 이번 선거에선 ‘대통령의 눈물’ 등으로 여권 지지층이 결집할 여지가 많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여론조사업체 리서치앤리서치의 배종찬 본부장은 “4년 전 선거 때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지지율은 30% 후반에서 40% 초반에 불과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6·4 지방선거 전날인 6월 3일 여론조사에서도 지지율이 50% 초반을 유지해 여권 지지층을 결집시킬 여지가 컸다”고 말했다.

인천선 새누리가 과다 대표 현상
인천에선 ‘역전현상’이 일어났다. 새누리당은 득표율(47.07%)에 비해 당선자(10곳 중 6곳·60%)를 많이 냈다. 반면 새정치연합은 36.97%를 득표하고 3곳(30%)을 획득했다.

4년 전과는 정반대다. 당시엔 한나라당이 40.39%를 득표하고도 1석(10%)만 얻었다. 민주당은 한나라당보다 적은 39.11%의 득표율을 얻고도 훨씬 많은 당선자(6명·60%)를 냈다. 이는 민주당이 야권연대를 위해 7곳에만 후보를 내 9곳에 후보를 낸 한나라당보다 표를 덜 얻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는 데도 막상 후보를 낸 곳에선 한나라당 후보보다 득표를 많이 한 게 영향을 미쳤다. 야권연대 파트너였던 민주노동당 후보 2명도 10.59%의 득표율로 2석(20%)을 얻는 데 성공했다.

올해엔 4년 전 민노당 후보가 선출됐던 2곳(동구·남동구)에서 모두 새누리당이 승리했다. 민노당에서 정의당으로 당적이 바뀐 현직 단체장들이 같은 곳에 그대로 출마하고 새정치연합은 후보를 내지 않아 정의당 후보들이 9.74%의 득표율을 얻었지만 당선자를 내지 못했다.

이들이 얻은 표 수 자체는 4년 전에 비해 크게 줄지 않았다(4년 전 11만316표 대 올해 11만9535표). 하지만 새누리당 후보의 득표 수가 4년 전에 비해 늘었다(4년 전 42만699표 대 올해 57만7415표). 이 때문에 인천에서도 4년 전보다 새누리당 지지층이 더 결집해 근소한 차로 졌던 곳에서 역전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레이 지수는 4년 전 20.23에서 올해 7.54로 대폭 낮아졌다.

레이 지수는 인물론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게 단점이다. 유권자의 상당수가 정당만 보고 찍지는 않기 때문에 정당 득표율과 그 정당의 의석·선출직 점유율이 꼭 비례적으로 일치해야 바람직하다는 논리에도 한계가 있다.

하지만 정당이 과다 또는 과소 대표됐는지 인식하지 못한 채 당선자 수로만 성적표를 매기면 민심을 왜곡할 위험이 있다는 게 레이 지수의 메시지다. 김형준 교수는 “득표한 수준보다 의석을 보너스로 더 얻는 과다 대표 현상이 나타나면 정당들이 민심을 오판할 수 있다”며 “2010년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했지만 바로 수개월 뒤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선 패배한 데서 보듯 숨어 있는 표를 보고 전략을 짜지 않으면 선거 결과는 금방 뒤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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