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특별시론-대통령 집무실 개조해야 ③·끝 - 실용보다 과시용인 청와대 본관

중앙일보

입력 2014.06.07 00:10

업데이트 2014.06.07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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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한만원
건축가

건축은 그 시대를 표상한다. 현재의 도시와 건축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은 우리 시대의 가치관과 정신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개인을 형성하는 개성의 깊숙한 곳에는 그 사람이 자라오고 또 경험해온 고유의 환경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것은 사회적인 것뿐만 아니라 그 공간적 환경들의 기억이기도 하다.

또한 우리가 만들어내고 살아가는 공간은 현재 우리의 생활을 지배하며 또 우리를 그곳에 적합한 사람으로 만들어 가기까지 한다. 역사를 보면 이 사실을 아는 수많은 위정자가 건축을 통치의 중요한 수단으로 사용해 왔다. 그러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거주·집무하는 청와대 건물들에는 어떤 문제가 있을까.

 청와대 본관은 1991년 노태우 대통령 때 신축됐다. 그 역시 전통과 역사적 정통성을 표방하며 ‘전통 목조 왕궁 건설에 사용한 목조기법’을 모방한 콘크리트 구조로 지어졌다. 당시 작업을 주관한 청와대 관계자는 “민족 문화에 길이 남을 건축물”로 지으려고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군주적 위엄을 지니고자 했던 외관뿐만 아니라 내부적 작동에서도 건물은 심각한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청와대 본관은 대통령의 집무실과 회의실, 그리고 외빈 접대를 위한 기능이 있다. 그 커다란 본관은 결국 대통령 1인의 집무와 의전, 그리고 경호를 위한 모든 기능이 집중된 공간이다. 사진을 통해 보는 그 내부 공간은 온통 권위와 과시로 가득 차 있는 듯하다. 지나치게 커다란 집무실 역시 마찬가지다. 과시보다 실용을 중시했다면 적절한 크기에 보다 기능적인 공간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청와대 내부 배치를 보면 집무실이 있는 본관과 비서실이 있는 위민관이 500m나 떨어져 있다. 소통과 밀접한 협력을 고려한다면 상상할 수 없는 설계다. 아마도 신축 당시 대통령의 의전과 경호 문제에 집중하다 보니 다른 요소들을 소홀히 했던 것 같다. 본관을 가장 정점에 배치하고 경호를 강화하다 보면 오히려 다른 건물과 거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결국 이러한 배치는 그 당시 대통령과 비서실의 관계에서 수직적인 소통과 일정한 거리를 당연시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공간에서 대통령에게는 비서실보다는 경호와 의전이 앞서게 되고 상징적·의전적 역할에 집중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정말로 필요한 다른 접촉은 보고나 공식회의 같은 딱딱한 형태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청와대에 근무했던 참모진이 대통령을 만나는 게 마치 접견 같다고 증언하는 건 이를 잘 나타낸다. 이런 공간은 대통령의 위상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립시키게 된다. 이는 제왕적 대통령에게나 어울린다. 91년에 잘못 지어진 이 썰렁한 궁궐 같은 본관은 20여 년 동안이나 여러 대통령과 참모진에게 소통 문제를 안겼다.

 건물은 지어질 때의 잘못된 판단이나 시대의 변화에 의해 여러 가지 문제를 내포하게 될 수 있다. 100년의 물리적 내구성이 있더라도 사회문화적 변화는 10~20년마다 생긴다. 이런 변화를 차질 없이 수용할 수 있는 게 진정한 내구성이다.

특히 위계와 관련된 공간 형식은 사람의 인식과 사고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기존의 공간 구조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그 속에 내포된 위계질서에 익숙해진다는 의미다. 지금의 본관은 처음부터 잘못된 가치관을 내포하고 있고 이후 시대의 변화와 요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장애물이다.

 청와대는 우리 사회의 중추적 사고를 표상한다. 청와대가 지어질 때 있었던 군사문화는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시대는 변했고 대통령의 통치철학이 달라졌는데 현재의 공간 배치로는 분명 문제가 많다.

건축물 역시 살아 숨 쉬는 생물과 같다. 시대의 요구가 한계에 이르면 이런 흐름을 수용하며 생명을 이어가야 한다. 그 변화를 수용하지 못한 건축물은 결국 그 내재된 모순을 드러내고 존재가치를 잃게 될 것이다. 일반 기업에서도 기업문화나 리더의 변화에 따라 업무 스타일이 달라지며 그에 따라 최적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공간 재배치가 이뤄지게 된다. 그 공간 구조에 따라 리더의 의지와 철학을 알 수 있게 되기도 한다. 굴뚝 기업과 인터넷 기업의 사무실은 그 구조부터 다르지 않은가.

 청와대 집무실 구조는 그동안 바뀐 시대정신에 맞게 바꿔야 한다. 한국 사회의 가장 중요한 인물의 의식을 누르고 있는 저 공간을 뜯어고치자. 대통령이 비서진과 일상적으로 만나고 국회·시민사회와 항상 대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지금 시대가 요구하는 소통의 공간이다. 수직이 아닌 수평의 공간배치가 필요하다. 그리고 분리가 아닌 밀집이 절실하다. 그래야 대통령도 일을 효과적이며 합리적으로, 그리고 당당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구시대적인 권위의 공간구조의 개조가 바로 ‘비정상의 정상화’가 아닐까. 의지가 공간구조를 개조해야지 소통의 형식을 제한하고 있는 기존의 공간구조가 의식을 제약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을 고독과 고립과 불통의 공간에서 구출해내자.

한만원 건축가

Innovation L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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