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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자 7명 해직교사 출신 … 위기의 전교조 재기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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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당선자는 당선 후 첫 일정으로 5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초지동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세월호 희생자 정부합동분향소를 찾았다. 이 당선자는 조문을 마친 뒤 단원고를 방문했다. [뉴시스]

이석문 제주교육감 당선자는 한때 교단을 떠났던 ‘거리의 교사’였다. 모교인 제주 오현고에서 영어교사로 재직하던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결성에 참여해 동료 교사 1500여 명과 함께 해직됐다. 한때 생계를 위해 학원강사로 일해야 했다. 해직 4년여 만에 정부의 ‘조건부 복직’ 방침에 따라 학교로 돌아왔다. 2000년 전교조 제주지부장으로 선출됐고, 2010년엔 진보 출신으론 최초로 제주도의회 교육의원에 선출됐다.

 이번 선거에서 당선된 전교조 출신 교육감은 8명. 이들 중 7명은 ‘전교조 결성 참여→해직→복직→전교조 지부장(지회장)→교육위원(의원) 또는 시민단체 활동’의 경로를 밟았다.

 김지철 충남교육감 당선자는 89년 초대 전교조 충남지부장을 지내다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이후 복직해 충남 전교조를 이끌다 2006, 2010년 두 차례 도 교육위원(의원)에 당선됐다. 첫 진보 성향 충북교육감이 된 김병우 당선자도 해직교사 출신이다.

 교수 출신 진보 교육감은 조희연(서울)·김석준(부산)·김승환(전북)·장만채(전남) 당선자 등 4명. 이들은 ‘민주사회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의 임원·회원으로 활동한 경험이 있다. 특히 조희연·김석준 당선자는 서울대 사회학과 75학번 동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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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교조 출신이 교육감에 대거 선출되자 일부에선 “전교조가 국민으로부터 재평가받았다”는 말도 나온다. 초대 전교조 위원장인 이수호 한국갈등해결센터 상임이사는 “혁신학교를 중심으로 교육개혁 운동을 펼쳐온 전교조 교사를 인정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교조에 대한 긍정적 평가로 해석하기에는 이르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이번 선거 결과는 유권자가 전교조나 진보 세력을 높게 평가해서라기보다는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교육계와 교육정책이 바뀌어야 한다는 국민의 바람이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교조 내부도 조심스럽다. 하병수 전교조 대변인은 “경쟁 위주 교육에 대한 피로감, 교육의 기본가치 복원을 호소하는 국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전교조에 대한 신임으로 단순화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올해로 창립 25년을 맞은 전교조는 사실 최근 몇 년째 위기를 맞고 있다. 한때 10만여 명이던 조합원은 6만 명(2013년) 이하로 줄었다. 지난해 10월 고용노동부가 ‘법외노조’ 통보를 함에 따라 노동조합으로서 법적 지위를 잃을 뻔하기도 했다.

 학부모와 교육계의 공감을 얻지 못했던 과도한 대정부 투쟁이 전교조 침체 원인으로 꼽힌다. 교육정보시스템(NEIS) 도입을 놓고 벌인 연가 투쟁(2003년), 교원평가 반대를 위한 성과급 반납 투쟁(2006), ‘일제고사’(학업성취도평가) 폐지 투쟁(2008) 등이 대표적이다. 정진곤 한양대 교육학과 교수는 “전교조는 출범 초기 ‘참교육’으로 신망을 얻었지만 합법화 이후 과격 투쟁, 집단 이기주의, 편향교육으로 혼란을 초래했다”며 “교장·교감, 동료 교사는 물론 학부모의 신뢰를 상당 부분 잃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이번 선거 결과가 곧바로 전교조의 ‘부흥’으로 연결되긴 쉽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진보 교육감과 전교조가 현행 교육 시스템을 급격하게 뜯어고치려 하면 학교·학부모가 냉소할 것”이라며 “잦은 정책 변화에 염증을 느끼는 교육계와 학부모를 염두에 두고 소통과 공감 속에 차분히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천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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