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란의 더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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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속바지 위에 고쟁이, 그 위에 단속곳, 그 위에 치마를 두르고, 허리를 여매는 띠 위에 적삼을 입고, 그 위에 저고리. 발에는 또 속버선에 솜버선을 겹으로 신고, 머리는 천금같이 무거운 쪽을 찌고, 비녀를 차고….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힌다. 그러나 이게 옛 여인들의 여름옷이었다. 나들이 갈 때에는 여기에 한 두 가지 더 몸에 걸치는 게 있었다. 남자도 별로 다를 게 없다. 단원의 풍속도를 보면 물놀이하는 인물들이 곁에 벗어놓은 옷들이 한 짐이 넘는다.
과연 양반 되기는 쉽지가 않았던 게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견디기 어려운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우선 옷들이 모두 요새처럼 화학섬유들이 아니다. 따라서 통풍도 좋고 땀받이에도 좋았다.
또 견뎌 버릇하면 조금은 다를 것이다. 더위를 잊게 하는 현대의 이기들도 없던 옛날이다.
이열치열의 훈련도 대단했다.
그러나 더위 자체가 요새처럼 심하지는 않았던 것도 같다. 수염이 석자라도 먹어야 양반이란 속담을 만들어낸 옛사람들이다. 연일 섭씨 30도가 넘는 더위였다면 그렇게 의복에 까다로왔을 턱이 없다.
어제 서울도 34.8도를 기록했다. 앞으로도 1주일은 더 더위가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관상대의예보다.
더위에 지친 사람들이 무슨 광란에 빠져들지 겁이 앞선다.
2년 전 「파리」가 1백년만에 34도의 혹서를 맞자 「루노」자동차공장에서 노무자들이 관리사무소를 점거하는 난동을 부렸다.
지방의 여러 공장에서는 또 집단적인 직장방기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신사의 나라 영국에서도 고장으로 잠시 갇힌 지하철 속에서 승객들이 폭동을 일으키고 창유리를 모조리 깨뜨렸다.
원래가 영국에서는 한참 더운 때를 「도그·데이즈」(Dog Days)라고 한다. 하도 더워서 신통한 기사거리도 생기지 않는 동안을 말한다. 그러나 영국인이 더워 못 견디겠다는 이때의 온도는 27도를 넘지 않는 게 보통이다.
사람이 견딜 수 있는 더위는 30도다. 이게 넘으면 일하기가 어렵게 된다. 35도가 넘으면 판단력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40도가 되는 더위 속에 한 시간이상을 버티면 정신이 몽롱해 지기 마련이다.
이래서 중동사람들은 한창 더운 낮에는 아예 밖에 나가지를 않는다. 그런 더위 속에서도 일손을 멈추지 않는 우리네 노무자들은 가히 초인간적이라 할만하다.
서울의 「샐러리맨」도 별로 뒤질 바는 없다. 「넥타이」를 단정히 매고 웃저고리를 입고. 그저 그래야 된다니까 그럴 뿐이다. 무슨 마련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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