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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남부식 ‘집밥’과 새로 디자인한 요리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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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6호 26면

1 시금치 플랫브레드, 곱창 잠발라야, 에그 팬(아래부터 시계 반대순). 모두 독창적인 요리들이다. 어머니· 할머니가 만들 수 있는 음식처럼 느낌이 편안하다. 서빙도 이렇게 편한 모습으로 한다.

통섭(通涉). 여러 사물에 널리 통한다는 뜻이다. 통섭형 인재란 주로 한 가지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갖고 있으면서 그 전문성을 바탕으로 다른 분야에서도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 성취를 이루는 사람들이다. 고정 관념에 익숙해져 있는 기존의 해당 분야 전문가들과는 다른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을 하기 때문에 신선한 시도를 할 수 있게 되고 이것이 큰 성공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그 분야 전체가 새롭게 발전하게 되는 촉매가 되기도 한다.

주영욱의 이야기가 있는 맛집 <37> 이태원 테이스팅룸

음식점 사업의 경우에도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이 진출해 활약을 펼치는 경우가 꽤 있다. 내가 만났던 이러한 통섭형 인재들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분들은 ‘테이스팅룸(Tasting Room)’이라고 하는 레스토랑을 함께 운영하고 있는 안경두(43)·김주영(39) 부부다. 레스토랑을 오픈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사람들이 줄지어 찾는 유명한 곳이 되었고, 이제는 5개의 매장에 100여 명의 직원들이 일하는 곳으로 키워냈으니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셈이다.

안 대표는 건축가다. 미국에서 유학을 하고 오랜 경력을 쌓은 다음 귀국해 현재 활발하게 공간디자인 사업을 하고 있다. 김 대표 역시 미국에서 조명 디자인을 공부하고 현재 조명 디자이너로서 안 대표와 함께 일을 하고 있다.

이 분들이 본업 외에 레스토랑을 시작하게 된 데에는 나름 오랜 준비가 있었다. 안 대표는 워낙 요리하는 것을 좋아해서 미국에서 자신의 일을 하면서도 아예 요리학교까지 다녔다. 레스토랑들의 공간 디자인 작업들을 하게 되면서 결국은 자신만의 외식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그때부터 부부가 함께 이런저런 준비를 했고, 귀국하고 나서도 오랜 과정을 거쳐 2009년 청담동에 ‘테이스팅룸’을 오픈했다. 안 대표가 모든 메뉴의 개발과 기획 등을 맡고 김 대표는 운영을 책임졌다.

2, 3 이태원점 내 외부 모습. 사진 주영욱

이들의 특징은 철저하게 디자인의 관점에서 접근했다는 것이다. 내부 공간 설계나 브랜딩(Branding), 이미지 연출 같은 것들은 물론이고 메뉴 개발도 어떻게 하면 남들과 다르게 창조적인 ‘디자인’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다른 레스토랑에 없는 메뉴, 새로운 음식을 만들기 위해 셰프들과 머리를 맞대고 메뉴를 연구한 것이 거의 1년 동안이다.

일단 이탈리아 음식을 베이스로 한 편안한 가정식 같은 미국 남부 요리를 메인 컨셉트로 하고, ‘시금치 플랫브레드(Flat Bread)’ ‘곱창 잠발라야(Jambalaya)’ 같은 독창적 요리들을 개발해 메뉴판을 채웠다. 뭔가 새로운 것을 찾던 강남의 트렌드 세터(Trend setter)들은 바로 반응을 보였다.

이곳의 음식은 어렵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 조리하지 않는다.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쉬운 재료에 쉽게 만들 수 있는 음식들이다. 기존 재료와 요리 방식의 재조합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느낌의 음식을 만들어 낸 것이다. 창의적인 디자인적 접근 방법의 힘이다. 독창적인 음식이지만 요리 공부를 오래 해 온 안 대표의 내공 덕분에 맛도 좋다.

대표 메뉴인 ‘시금치 플랫브레드’의 경우는 얼핏 피자와 비슷하지만 새로운 맛이다. 밀가루를 얇게 펴서 구운 다음 소스를 바르고, 시금치·토마토·양파·베이컨 등을 얹고 파마산 치즈가루를 뿌려 마무리했다. 한 조각 잘라 잘 접어 입에 넣으면 바삭바삭한 도우와 함께 상큼한 시금치가 입 안에 가득 들어차면서 건강한 느낌으로 담백하게 씹힌다. 여기에 소스와 치즈 가루가 뒷받침을 하면서 풍부한 맛을 더해준다. ‘곱창 잠발라야’는 볶음밥 같은 느낌의 미국 남부 쌀 음식에 우리나라의 곱창구이를 결합했다. 매콤하고 바삭한 곱창 구이에 오징어 먹물로 끓인 걸쭉한 밥, 그리고 수란이 곁들여져서 완전히 새로운 느낌의 음식이 됐다.

남들과 똑같이 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음식점 사업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음식점을 개업한 사람 10명 중 9명은 망한다는 통계가 있는 것을 보면 이 말을 실천에 옮기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지가 않은 모양이다. 이 분들은 열심히 준비를 해서 실천에 옮겼다. 그리고 그 결과는 보시는 바와 같다. 역시 문제는 생각이 아니라 실천이다. 덕분에 다시 한번 새겨보는 성공학 개론이다.

**테이스팅룸 이태원점 :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744-29 전화 02-797-8202. 청담동, 서래마을, 갤러리아 백화점, 코엑스 등에도 매장이 있다. 각각 컨셉트와 메뉴가 조금씩 다르다. 쉬는 날 없이 영업한다.
시금치 플랫브래드 2만1900원, 곱창 잠발라야 2만4800원.



음식·사진·여행을 좋아하는 문화 유목민. 마음이 담긴 음식이 맛있다고 생각한다. 마케팅 전문가이자 여행전문가. 경영학 박사. 베스트레블 대표. yeongjyw@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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