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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꿔야제, 대구 이라믄 다 떠날끼다” 긴 경기침체에 흔들리는 TK의 고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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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6호 01면

6·4 지방선거가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24일 주말을 맞아 시민들이 나들이 나온 서울 삼청동 길에 입후보자들의 선거벽보가 붙어 있다. 최정동 기자

“바꿔야제, 대구 이라믄 다 떠날끼다. 박근혜 믿고 까부는 것들 싹을 짤라뿌야 돼.”

[6·4 지방선거] 요동치는 대구 민심 르포

대구가 요동치고 있다. 40여 년간 이어온 보수 독주체제가 흔들리고 있다. “인자 박근혜한테 빚진 거 없어. 니들이 우리한테 해 준 게 뭔데”라며 새누리당을 향해 쓴소리를 내뱉고 있다. “빨갱이 자슥들”이란 눈총 속에, 그간 숨 죽인 채 눈치 보던 야권은 “해볼 만하다”며 잔뜩 고무된 상태다. “이러다 진짜 판 엎어지는 거 아니야”라는 기류도 적지 않다. 새누리당 깃발만 꽂으면 100% 당선되던 과거와는 천양지차다.

이런 분위기는 중앙SUNDAY가 21일부터 사흘간 대구 지역 20여 곳에서 만난 50여 시민의 말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이들은 정치적 성향을 떠나 “살기 뻑뻑하다. 대구는 바뀌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서구 엑스코에서 만난 김정엽(45)씨는 “기호 1번(새누리당 후보)만 아니라면 누구라도 찍을 겁니다. 버르장머리를 고쳐야죠”라고 했다. 서문시장 상인 박모(52·여)씨도 “나는 아예 빨간색(새누리당 색깔)이라면 쳐다보지도 않아. 징글징글해”라고 했다.

대구의 달라진 인심은 새누리당 대구시장 경선에서 예견됐다. 네 명이 치른 최종 경선에서 친박 핵심이자 대구 정가의 터줏대감인 서상기(북구을·3선), 조원진(달서구병) 의원이 고배를 마셨다. 최종 승리자는 2000년대 후반 오세훈 서울시장 시절 정무부시장을 지냈던 권영진(52) 후보였다. 그는 고교(청구고)를 대구에서 다닌 것 말고는 대구와 연고가 없다. 지난해 12월 대구로 내려온 권 후보는 4개월간 전력투구한 끝에 극적으로 승리했다. 서구 비산동 식당에서 만난 한 택시기사는 “기존 정치인은 꼴 보기 싫거든. 늘상 보던 사람이 아니고, 참신해서 됐을 끼야”라고 했다. 권 후보도 “나야말로 대구 혁신의 적임자”라고 강조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내세운 대구시장 후보는 김부겸(56) 전 의원이다. 2년 전 18대 총선에서 대구 수성구갑에 출마해 야권 후보로는 이례적으로 40% 넘는 득표율을 얻었다. 이번 선거에서도 인지도 면에선 여당 후보를 크게 앞서고 있다. 대구에서 초·중고를 나왔고, 경북고-서울대라는 ‘정통’ 코스를 밟은 점도 점수를 따고 있다. 달서구 월성동에서 만난 박중오(64)씨는 “김부겸이라서 이런 기야, 딴 놈이라면 택도 없지. 김부겸이 그래도 야당치곤 근본이 있잖아”라고 했다. 옆에 있던 정모(66)씨는 “물건은 쓸만한데, 공장(새정치연합)이 영 시원치 않아”라며 “무소속이면 무조건 되지”라고 거들었다.

대구의 이 같은 정치적 격변의 배경엔 경제사정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대구의 1인당 지역총생산(GRDP)은 전국 광역단체 중 19년째 최하위다. 인구도 2000년대 중반 이후 매년 평균 1만 명씩 줄고 있다. 중구 계산동에서 만난 40대 직장인은 이렇게 말했다.

“5명의 대통령(박정희·전두환·노태우·이명박·박근혜)을 배출한 TK(대구·경북)의 자존심요? 요즘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멀쩡한 4년제 대학 나와 여기서 직장 다니는 제 또래들, 한 달에 300만원 못 받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생활이 되겠어요. 솔직히 요즘은 대구에 남아 있다는 게 자괴감이 듭니다.”

이런 정서를 파고든 게 김부겸 후보의 ‘야당 시장 대박론’이다. “너무 한쪽의 정치 세력이 편식하다 보니 지역이 망가졌다. 내가 시장이 돼야 집권 여당이 정신 번쩍 든다”고 호소하고 있다. 반면 권 후보는 “김 후보도 대구 정치권의 기득권(경북고-서울대) 세력 아닌가. 내가 돼야 진정한 세대교체요, 리더십의 교체다. 썩어빠진 새누리당을 고쳐 놓겠다”며 맞불을 놓고 있다.

두 후보의 지지율 격차는 10%포인트 내외(리서치앤리서치 20일 발표·권영진 41.3%, 김부겸 29.7%)로 추정되고 있다. 하지만 김 후보 측은 “유선전화 위주의 여론조사인 탓에 바닥 민심을 제대로 짚어내지 못하고 있다. 젊은 층의 결집력이 높아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새누리당 여의도연구소는 대구를 ‘위기 지역’으로 분류한다. 과연 보수의 심장부에서 이변의 드라마는 완성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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