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위기의 박 대통령 승부수 … 새 총리와 ‘불가근불가원’ 전망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76호 06면

2012년 12월 14일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당시 대선후보)과 함께 선 안대희 총리 후보자(당시 정치쇄신특위 위원장). 리얼미터가 24일 전국 성인 남녀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박 대통령의 안 후보자 지명에 대해 ‘적절’이 46.8%, ‘부적절’이 20.2%. ‘잘 모르겠다’가 33%로 집계됐다. [중앙포토]

#1 “(대통령이)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유력 여론조사업체 간부는 지난달 16일 세월호 참사가 터진 직후 다급한 목소리로 이렇게 묻는 청와대 관계자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대통령의 신속한 사과가 답”이라고 응답했다. 청와대의 문의전화는 그 뒤로도 4~5차례 이어졌다. 여론조사업체 간부는 “지난 19일 대통령 담화 등 중요한 고비마다 청와대 측이 ‘어떻게 봤나’ ‘여론의 반응은 어떻나’고 문의해 오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여론조사 기관 관계자도 “세월호 참사 직후 청와대에서 우리 업체가 해 온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과 정당 지지율 일일 조사결과를 매일 넣어달라고 요청해 비공식적으로 제공하고 있다”며 “청와대 측은 내게 박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곡선이 어떤 형태인지, 또 2010년 천안함 폭침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 패턴과 반등 시점도 문의했다”고 전했다. 청와대는 그동안 대통령 지지율 조사를 따로 해오지 않았다. 그랬던 청와대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이후 민심이반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며 적극적인 대응에 나선 것을 뜻한다고 여권 인사들은 분석했다.

안대희 신임 총리 지명과 향후 정국

#2 자천타천으로 10명 넘는 인사들이 총리 하마평에 오르내린 끝에 지난 주말부터 “안대희 전 대법관과 김문수 경기지사 등이 최종 리스트에 올랐다”는 설이 돌기 시작했다. 결국 박 대통령은 지난 22일 안대희 전 대법관을 신임 총리 후보자로 공식 발표했다. 박 대통령은 민정수석실의 총리 후보군 신상 검증 결과와 최측근인 이른바 ‘3인방’ 보좌진(이재만·정호성·안봉근 비서관)의 조언 등을 참고해 최종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여권 인사는 “다급히 여론조사 챙기기에 들어간 청와대 행보에서 드러나듯 세월호 참사로 집권 이래 최대 위기에 몰린 박 대통령이 6·4 지방선거와 7·30 재·보선을 앞두고 던진 정치적 승부수”라고 분석했다. ‘안대희 카드’는 박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에 비춰 파격적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평소 취향이라면 ‘안대희 카드’가 나오기 어려웠다는 게 여권의 지배적인 의견이다. 그만큼 최근 정국에 대한 박 대통령의 위기 의식을 읽을 수 있는 인사라는 의미다. 한 여권 인사는 “정홍원 초대 총리 카드는 실패로 끝났다”며 “따라서 두 번째 총리는 2003년 대선자금 수사로 유명해진 안 후보자를 택해야 민심이 조기에 수습될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복수의 여권 소식통에 따르면 총리 후보군을 좁혀 가는 과정엔 세 가지 기준이 작용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신임 총리는 ▶이반된 민심을 수습할 대중적 인기가 있어야 하고 ▶청문회를 무난하게 통과해야 하며 ▶대통령에게 직언할 줄 아는 인물이란 이미지를 지녀야 한다는 게 박 대통령의 생각이었다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저울질된 것으로 알려진 김문수·안대희 카드는 둘 다 그 기준에 부합한다는 게 여권 인사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최종 단계에선 ‘박 대통령이 언젠가 자기 색을 분명히 할지도 모를 정치인에 비해 법조인의 궤도 이탈 가능성을 낮게 봤다’는 관측이 나온다. 물론 “또 법조인이냐”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청와대 소식에 밝은 여권 인사들은 다른 분석을 내놓는다. 청와대는 ‘안 후보자 정도만 돼도 고분고분한 기존의 모범생 법조인과는 확실히 다른 이미지를 줄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한다.

‘청문회 공포’를 해소해줄 수 있는 전력도 안 후보자의 낙점 이유라고 한다. 2006년 대법관에 지명된 안 후보자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전신인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칭찬 속에 무난히 청문회를 마쳤다. 법조계 출신 여권 인사는 “안 후보자는 오랫동안 서울 홍은동의 40평대 아파트에서 살아왔고, 술자리에서 2차를 하더라도 치킨집에서 맥주로 마무리하는 스타일”이라며 “청문회를 무난히 통과할 것”이라 말했다. 다만 안 후보자가 지난해 7~12월 서울 용산에서 변호사로 재직하면서 재산을 세전 기준으로 16억원 늘린 점은 야권의 공격 대상이 될 전망이다.

박 대통령이 안 후보자를 총리로 지명한 세 번째 이유는 그의 ‘소신’ 때문이다. 안 후보자는 2012년 11월 박근혜 당시 대선 후보가 민주당 출신의 한광옥씨를 국민대통합위원장으로 영입하려 하자 “비리 전력 인사를 중용하는 건 쇄신에 역행하는 조치”라고 반발했다. 결국 박 후보는 자신이 직접 위원장을 맡고 한씨를 부위원장에 앉히는 타협안을 내야 했다. 이렇게 보스에게 직언할 수 있다는 이미지가 ‘책임총리’를 원하는 민심에 맞아떨어진다는 게 박 대통령의 판단이었을 것이란 얘기다.

하지만 박 대통령과 안 후보자의 관계에 대해서 걱정하는 시선도 적지 않다. 청와대 사정에 밝은 또 다른 여권 인사는 둘의 사이가 ‘불가근불가원’이 될 공산이 크다고 진단했다. 그는 “박 대통령은 도전적·공격적인 인사보다 온건하고 지시를 잘 따르는 관료형 인사를 선호한다. 따라서 세월호 참사만 아니었다면 결코 안 후보자를 총리에 지명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럼에도 박 대통령이 평소 스타일과 다른 선택을 한 것은 그만큼 세월호 정국을 비상하게 보고 있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안 후보자의 기용은 그런 인식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평가다. 그는 “안 후보자가 총리가 되면 ‘관피아 척결’처럼 박 대통령이 지정한 영역에서만 실권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며 “안 후보자가 그 이상의 권한을 요구한다면 박 대통령과 충돌할 우려가 있다”고 전망했다.

이와 함께 박 대통령이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을 유임시킨 건 경질 시 정치적 부담이 워낙 클 것이란 판단이 작용했다고 또 다른 여권 인사는 분석했다. 정무·교육문화·미래·고용복지 분야 등의 비서진에 대한 대폭적인 개편 수요가 커진 상황에서 김 실장부터 경질한다면 박 대통령은 홀로 비서진 전체를 수술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여권 인사도 “김 실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부터 2대에 걸쳐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보필하고 있고 ‘노회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정세를 꿰뚫어 보는 능력이 있어 박 대통령의 신임이 두텁다”며 당분간 실장직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김 실장(75)은 나이가 13세나 적은 박 대통령(62)을 항상 ‘어른’이라 부르며 깍듯이 대한다”고 전했다.

새누리당은 박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담화 이후 지지율이 상승세로 돌아섰고 안대희 카드에 대한 반응이 나쁘지 않다는 판단 아래 지방선거 완패는 피하지 않겠나 하며 조심스럽게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청와대의 여당 장악력이다. 당초 청와대 일각에선 “민심 수습 총리엔 정무능력을 갖춘 정치인이 필요하다”는 새누리당 일각의 천거에 따라 김무성 의원의 총리 기용을 한때 검토했지만 김 의원의 반발로 무산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의원 측은 7월 14일 치러질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노리는 서청원 의원 측이 라이벌인 김 의원을 밀어내기 위해 청와대에 총리 후보로 천거했고, 청와대도 동조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서 의원은 지난해 친박 실세로 국회에 진입하면서 당내에서 상당한 지지를 얻은 바 있다. 하지만 김 의원 측이 꾸준히 물밑작업을 해 온 결과 최근엔 경쟁이 팽팽한 상태라는 관측도 당내에 퍼진 상태다. 게다가 새누리당 지방선거 후보 경선과 국회의장 후보자 경선에서 친박계가 잇따라 패배했다. 청와대 사정에 밝은 한 여권 인사는 “이런 가운데 지방선거 성적까지 저조할 경우 청와대의 당 장악력은 급격히 약화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