情문화 한국, 軍문화 일본

중앙선데이

입력 2014.05.25 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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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6호 31면

한국에 살다 보면 질문을 많이 받는다. 나이는 어떻게 되는지, 결혼은 했는지, 한국 음식을 먹는지가 대표적 질문이다. 필자가 한국에 오기 전 일본에 살았다고 얘기하면 한·일 비교에 관한 질문도 꼭 나온다. 내 답은 이렇다. “한국인은 낙천적이고 편하지만 질서의식이 좀 약하고, 일본인은 더 내성적이라 친해지기는 어렵지만 질서를 잘 지킨다.”

수 년간 위와 같이 답을 해온 나이지만 지난 연휴, 예전에 살았던 교토에 다시 가서 다시금 한·일 비교에 대해 깊게 생각했다. 한·일은 계속 변하기 때문에 쉽게 결론을 내릴 순 없지만 프랑스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1902~1985)의 ‘장기 지속’이론을 빌리면 어느 정도의 윤곽은 나온다.

브로델은 현대 역사학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에서 ‘장기 지속’이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특정 유명인이 아니라 지리적 요건처럼 오랜 시간 인간의 일상 삶 속에서 지속되는 요소들이 사회적, 경제적, 사상적 변화를 만들어낸다는 주장이다. 이에 비춰볼 때 한·일은 우선 지리적 요건부터가 다르다. 대륙의 끝인 한반도에 비해 일본은 섬나라다. 역사적으로 대륙과 교류가 용이했던 한국은 자연스럽게 대륙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외세의 침략도 반도라는 특성상 일본보다 더 많이 받았다.

차이점만 있는 건 아니다. 비슷한 점도 있다. 두 나라 모두 산이 많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이 좁은 편이며 주거가 가능한 땅도 한정적이라 인구밀도가 높다. 두 나라 모두 시차를 두긴 했지만 20세기에 급속한 도시화를 겪었고 수도에 인구가 집중돼 있다.

그러나 역시 한·일 양국은 다르다. 개인적으로 가장 큰 차이점은 군(軍)의 역사에서 찾고 싶다. 한국에도 내전은 있었지만 삼국시대 이후엔 규모가 작았고 외부의 침략을 더 많이 받았다. 반면 일본은 12세기부터 무사(武士)가 사회를 지배하면서 17세기 초, 에도 막부가 설립되기까지 크고 작은 내전이 계속됐다. 에도 시대에도 지역 세력 사이에 경쟁이 심했고 이는 19세기 중반 정치적 혼란을 야기하기에 이르러 이후 메이지유신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20세기, 일본은 서양의 기술과 공업을 받아들여 발전했고 제2차 세계대전의 주역이 돼 아시아 전역에 엄청난 피해를 줬다. 한국은 그 대표적 피해자다.

흥미로운 것은 천 년 이상 이어진 일본 특유 군사문화의 영향이다. 지금 일본에 가면 깨끗하고 질서 있으며 서비스가 친절한 나라라는 첫인상을 받게 된다. 그런데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 질서와 친절의 뿌리는 일본의 오랜 군사문화임을 알 수 있다. 군이 지배하는 문화 가치관에 따르면 외부엔 항상 깔끔하고 완벽한 모습을 보여줘야 공격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자기가 맡은 일은 이상 없이 잘 수행해야만 본인을 지킬 수 있다. 군의 문화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부터 대기업 샐러리맨까지 모두가 그런 가치관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경제를 중심으로 발전해 왔으나 군사문화는 새로운 사회적 구도 안에서 그대로 살아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가. 외부 침략은 많이 받았지만 내부적으론 군사문화가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았다. 대신 비교적 고립된 농업사회를 중심으로 문화가 발달했기에 공동체의식이 강하다. 어디에선가는 공동체에 소속되고 싶어 하며 공동체 안에서 안정감을 찾는다. 이런 인간관계를 조율하는 핵심이 정(情)이다.

문화란 상대적이다. 어느 쪽이 우수하다고 주장할 수 없다. 그래서 한·일 중 어느 나라가 더 좋으냐는 질문을 받을 때 난 “둘 다 좋다”고 답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한국이 이 복잡하고 변화가 빠른 시대에 더 적응력이 강한 것 같다”고. 앞으로도 이어질 수백, 수천 년의 시간 속에서 두 이웃 나라가 어떻게 발전해나갈지 궁금하다.

로버트 파우저 미국 미시간대에서 동양어문학 학사, 언어학 석사를, 아일랜드 트리니티대에서 언어학 박사를 했다. 일본 교토대를 거쳐 서울대로 부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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