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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금 5000만원 신창원·유영철·이학만 … 결국 제보로 붙잡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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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25년째 5000만원 현상금 제자리 왜  현상금(신고보상금)은 범죄자에게 붙는 가격표다. 이 가격표에는 한 사회가 범죄를 바라보는 시각과 분노가 반영된다. 세월호의 실질적 소유주인 유병언 청해진해운 회장에게는 5000만원의 현상금이 걸렸다. 1990년 화성연쇄살인범에게 걸린 이 금액은 25년째 제자리다. 죄질에 비해 너무 싸게 책정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에 비해 미국은 2001년 9·11 테러를 주도한 오사마 빈 라덴에게 2500만 달러(약 290억원·당시 환율)를 내걸었다. 유 회장의 현상수배를 계기로 ‘현상금의 사회학’을 들여다봤다.

‘전봉준을 잡거나 행적을 신고하는 자에게 현상금 1000냥과 군수 자리를 주겠다’.

 1895년(고종 32년) 한양을 비롯한 조선 곳곳에 이런 내용의 방(榜)이 붙었다. ‘민란’을 주도한 동학농민운동 지도자 전봉준(1855~1895)을 신고하는 사람에게 포상하겠다는 조정의 방침이었다. 전봉준은 결국 현상금을 노린 옛 부하 김경천의 밀고로 체포됐다. 당시 조정과 일본군 입장에서 전봉준은 A급 범죄자였다. 국사학자들에 따르면 현상금 1000냥은 현재 가치로 따졌을 때 약 1억원에 이른다. 당시로선 최고 액수에 해당하는 현상금이 내걸렸던 셈이다.

 시대가 변하고 사회가 발전하면서 지명수배자에게 매겨지는 현상금 액수도 달라졌을까. ‘전봉준 현상수배’로부터 한 세기가 훌쩍 지난 대한민국에서 현재 A급 수배자에게 매길 수 있는 최고 현상금은 5000만원이다. 돈 가치로만 따지면 100여 년 전에 비해 현상금 최고액이 오히려 줄어든 셈이다.

2004년 개정된 경찰청 훈령 ‘범죄 신고자 등 보호 및 보상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3인 이상 살해자나 범죄단체 수괴 등 흉악범에 대한 현상금은 최고 5000만원으로 돼 있다. 하지만 그전에도 중대 사건의 경우 경찰청장 등의 의지로 5000만원의 현상금을 건 사례가 있다.

 22일 현상수배가 내려진 청해진해운 유병언(73) 회장도 이 같은 기준에 따라 5000만원의 현상금이 내걸렸다. 중앙대 사회학과 신광영 교수는 “현상금은 검거 대상자가 심각한 범죄자라는 것을 화폐가치로 환산해 보여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사회가 특정 범죄를 바라보는 시각이나 분노 등이 반영된 일종의 ‘범죄 가격표’라는 얘기다. 이 때문에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낸 세월호 사건의 실질적 책임자인 유 회장에게 걸린 현상금이 지나치게 낮은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하지만 검찰과 경찰은 “현행 규정상 최고 액수가 유 회장에 대한 현상금으로 책정된 것”이라며 “이번 사건을 흉악범죄와 같은 수준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지금까지 국내에서 5000만원의 현상금이 걸린 사건은 5건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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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적 인물은 2년6개월간 도피생활을 한 ‘탈옥수’ 신창원이다. 신창원은 강도치사죄로 수감된 뒤 1997년 1월 부산교도소를 탈출했다. 도주기간 중에도 144번이나 돈을 훔쳐 피해액이 9억8000여만원에 달했다. 신창원에게 걸린 최초 현상금은 500만원이었다. 하지만 그가 98년 경찰의 총을 빼앗아 달아났을 때 금액이 5000만원으로 올랐다. 신창원은 99년 동거녀 집을 다녀간 가전제품 수리공의 신고로 결국 검거됐다.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부유층 노인 및 여성 20명을 살해한 ‘희대의 살인범’ 유영철에게도 5000만원의 현상금이 걸렸다. 당시 경찰은 물증 부족 등으로 사건이 영구 미제로 남게 될까 우려했다. 용의자의 뒷모습이 찍힌 폐쇄회로TV(CCTV) 화면 사진과 함께 현상금이 내걸린 수배전단을 전국에 배포했다. 결국 유영철은 마사지업소 업주의 제보로 검거됐다. 2008년 8월 여자친구 살해 혐의로 추적받다 검거에 나선 경찰관 2명을 살해한 이학만에게도 같은 금액이 걸렸다. 이씨도 시민 제보로 검거됐다.

장기 미제사건으로 남은 ‘화성 연쇄살인사건’ 범인(특정 안 됨)에게도 5000만원의 현상금이 걸려 있다. 경찰은 범인이 잡히지 않자 현상금을 최초 3000만원에서 5000만원까지 올렸다. 이 밖에 2010년 여중생을 성폭행하고 살해했던 김길태에겐 2000만원 현상금이 걸렸었다.

 이처럼 현상금 액수로만 보면 ‘신창원=유영철=이학만=유병언’이라는 등식도 가능하다. 검·경이 유 회장의 죄질을 그만큼 무겁게 보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90년 이후 25년째 현상금 최고액이 여전히 5000만원에 머물러 있는 건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흉악범의 경우 신고 후 보복 가능성 등을 고려할 때 현상금 최고 액수를 더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실제 정치·선거사범의 경우 내부고발자의 신고를 독려해야 한다는 지적에 따라 2006년 최고 5억원까지 줄 수 있도록 훈령이 개정되기도 했다.

 한 경찰 관계자는 "불법 정치자금 등에 대한 신고 보상금이 최고 5억원”이라며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이때 다른 부분과 형평성에 맞춰 현재 기준이 타당한지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고 보상금은 ‘소득세법 시행령 제18조’에 따라 ‘비과세되는 기타소득’으로 분류돼 별도의 세금을 제하지 않고 현금으로 지급된다. 신고 내용이 정확하지 않더라도 범인 검거에 도움이 됐다고 판단되면 전체 보상금의 일정 비율을 지급하기도 한다. 신창원이 검거된 99년 제보자 강모(당시 30세·여)씨는 신씨의 소재를 신고하고도 경찰이 놓치는 바람에 현상금을 받지 못했다가 이듬해 대법원에서 확정승소 판결을 받으면서 돈을 되찾기도 했다.

 올해 배정된 신고 보상금 예산은 12억원이다. 경찰 전체 예산(8조8346억원)의 0.01%에 불과하다. 경찰청 관계자는 “시대가 변해 신고 보상금을 올려야 할 필요성은 있다”면서도 “예산이 한정돼 있어 쉽게 증액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경찰서 형사과장은 “현상금은 사람에게 걸리는 돈이기 때문에 물가상승률 등과 연동시켜 기계적으로 금액을 올리는 것은 윤리 문제 등을 일으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채승기·장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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