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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회담장에 '코니' 데려간 푸틴, 개 공포증 메르켈 놀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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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조지 W 부시와 그가 재임 기간 행한 모든 일을 싫어하지만 이 사진만큼은 싫어할 수가 없네요. RIP(Rest In Peace, 명복을 빕니다).”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애완견 미스 비즐리의 죽음을 알리며 함께 게시한 사진에 달린 댓글이다. 스코티시테리어 품종인 미스 비즐리는 2004년 부시 전 대통령이 로라 여사의 58번째 생일에 선물한 개다. 수컷인 미스터 바니와 함께 부시 재임기의 상징 같은 존재다. 17일 미스 비즐리가 9세의 나이로 림프종을 치료하다 죽었다는 사실이 전해지자 미국인들은 당을 떠나 한목소리로 명복을 빌었다.

 세계 정상들의 애완동물은 주인만큼이나 주목을 받는다. 특히 미국인들의 ‘퍼스트 독’ ‘퍼스트 펫’에 대한 관심은 유난스럽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 당시 어떤 개가 ‘퍼스트 독’이 될지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오바마가 고심 끝에 잘 알려지지 않은 견종인 포르투갈 워터독 보를 택하자 많은 미국인이 이 종을 따라 길렀다.

 존 F 케네디 재임 시절 인기 ‘퍼스트 펫’은 조랑말 마카로니였다. 1962년 9월 케네디 대통령의 딸인 캐럴라인(현 주일 미국대사)이 마카로니를 타고 찍은 사진이 주간지 피플의 표지로 사용되면서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당시 무명가수였던 닐 다이아몬드는 피플 표지를 보고 ‘스위트 캐럴라인’ 곡을 작곡했다. 다이아몬드는 보스턴 레드삭스 응원가로도 유명한 이 노래 속 캐럴라인이 누구인지를 40년간 비밀로 간직했다. 언젠가는 직접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다이아몬드의 소원은 2007년 케네디 대사의 50세 생일 파티에서 이뤄졌다. 다이아몬드는 ‘스위트 캐럴라인’을 부르기 위해 연결된 위성 통화에서 “노래 속 캐럴라인은 바로 당신”이라고 깜짝 공개했고, 케네디 대사는 감격했다.

‘21세기 차르’로 불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매사에 강경하지만 자신의 래브라도 리트리버 코니에겐 한없이 약하다. 종종 푸틴의 해외 순방에 동행할 정도로 사랑을 받으며 12년간 푸틴과 함께해 온 코니는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전 소련 공산당 총서기장의 애견을 부계 쪽 조상으로 둔 ‘뼈대 있는’ 개다. 코니란 이름의 뜻에 대해 여러 해석이 있지만 푸틴이 자신과 사이가 나빴던 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 국무장관의 이름을 붙였다는 설이 있다.

 푸틴은 2007년 상트페테르부르크 경제포럼 기자회견 중 “나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기분이 좋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럴 때는 코니와 상의하는데, 좋은 의견을 제시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두고두고 시사 풍자 소재로 사용됐다. 2005년 러시아 청년 시민단체인 ‘또 다른 러시아’는 코니를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자는 이색 제안을 하기도 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어차피 뒤에는 푸틴이 있다”는 의미였다.

 코니에겐 크렘린에서도 성역이 없다. 보좌관 회의는 물론 세계 정상들과의 회담장에도 예고 없이 나타난다. 2007년 1월 러시아에서 열린 독일과의 정상회담장에도 코니가 어슬렁거리며 들어왔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어릴 때 개에 물린 적이 있어 개를 무서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모를 리 없는 푸틴은 “불편하지 않죠? 착한 개인 데다 얌전해요”라며 내보내지 않았다. 이에 메르켈은 “뭐, 기자들을 먹어버리진 않겠죠”라고 유창한 러시아어로 응수했다. 메르켈은 킁킁거리다 자신의 발치에 자리잡은 코니를 불편해했지만 푸틴은 은근히 이를 즐겼다는 후문이다.

 푸틴과 부시는 대립하기도 했지만 개를 좋아한다는 면에선 완전히 통하는 사이였다. 푸틴은 종종 “코니가 미스터 바니보다 크고, 터프하고, 세고, 빠르고, 영리하다”는 농담을 던지곤 했다. 부시의 보좌관들은 이를 “바늘을 감춘 친근함의 표현”으로 해석했다.

세계의 왕실도 애완동물과 인연이 많다. 왕실에선 혈통 좋은 개나 말·새를 많이 키운다. 하지만 태국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의 애견 통댕(구리라는 뜻)은 다른 왕실 애완동물과 다르다. 1998년 유기견보호센터를 방문한 국왕이 왕실로 데려와 키우며 팔자를 고쳤다. ‘살아 있는 부처’로 추앙받는 국왕이 무릎을 꿇고 통댕에게 약을 발라주는 사진은 태국 국민들에게 감동을 줬다.

 아버지와 달리 태국 왕세자 와찌랄롱꼰은 자신의 미니 푸들 푸푸 때문에 구설에 올랐다. 그는 푸푸를 사랑한 나머지 공군 대장으로 임명했고, 외교사절로 가득한 공식 만찬장에 대동하기도 했다. 폭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2011년 공개한 비밀 외교 전문에 따르면 푸푸는 성장을 하고 식탁에 앉았으며 헤드테이블 위로 뛰어올라 손님들의 물컵을 엎질렀다. 왕세자는 2009년 푸푸의 생일에 퇴폐적인 파티를 열어 빈축을 산 바 있다.

 세계 왕실의 애완동물을 논할 때 영국 왕실 애완견 웰시코기를 빼놓을 수 없다. 웰시코기는 여우를 닮은 외모에 몸통이 길고 다리가 짧은 웨일스산 개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웰시코기와 관련된 책이나 완구 등 수많은 상품이 출시돼 있다. 영국 왕실 견공들은 엘리자베스 2세의 어머니가 확립한 엄격한 수칙에 따라 사육된다. 각각 독립적인 바구니에서 생활해야 하며 전용 사료에 토끼고기·쇠고기 등이 섞인 식단을 지킨다. 여왕의 웰시코기들은 2012년 런던 올림픽 개막식 행사에서 제임스 본드(대니얼 크레이그 출연)가 여왕을 호위하는 장면에 깜짝 등장할 정도로 인기가 있다.

 동물을 좋아하는 엘리자베스 2세는 1933년 아버지 조지 6세에게 선물받은 두키를 시작으로 평생 30여 마리의 웰시코기를 키웠다. 18세 생일 선물로 받은 수전은 여왕의 신혼여행에 동행하기도 했다.

전영선 기자

김대중·이명박·박근혜 … 한국 대통령들의 진돗개 사랑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잉글리시 토이 스패니얼 종인 ‘해피’를 키운 것을 시작으로 역대 한국 대통령들도 대부분 애완동물을 키웠다. 박정희(스피츠·진돗개), 전두환(진돗개), 노태우(요크셔테리어), 김대중(풍산개·삽살개 ·진돗개), 이명박(진돗개) 전 대통령은 한두 마리씩 퍼스트 펫을 보유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청와대 시절엔 특별한 애완동물을 두지 않았지만 봉하마을에선 보더콜리종 ‘누리’를 키웠다.

 박근혜 대통령은 현재 청와대에서 진돗개 ‘새롬’과 ‘희망’을 키우고 있다. 이들은 삼성동 자택을 떠나올 때 선물받은 것이다. 지난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업무가 끝난 뒤 관저로 돌아가 무슨 일을 하는가”라는 질문에 박 대통령은 “따로 취미를 가질 시간이 없다”고 하면서 희망과 새롬을 언급했다. 박 대통령은 당시 “날씨가 따뜻해지면 같이 나와 인사하는 자리를 갖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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