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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한국인의 에너지, 그 밑에는 성공 향한 불안감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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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트리플 패키지
에이미 추아·제드 러벤펠드 지음
이영아 옮김, 와이즈베리
436쪽, 1만6000원

5월초 출간된 『트리플 패키지 (Triple Package)』가 미국 지식사회를 달구고 있다. 예일대 로스쿨의 부부 석좌교수인 에이미 추아와 제드 러벤펠드가 함께 성공의 동력을 분석한 책이다. 부모의 경제력, 교육 수준, 지능, 제도 등과 무관하게 높은 학업성취와 물질적 성공을 거둔 그룹들을 분석해 공통점을 뽑아냈다.

 책 제목의 ‘Triple’은 3부, 3중, 3배라는 뜻이다. 성공은 3가지가 결합돼야 한다는 주장을 담았다. 첫째는 우월감이다. 하지만 우월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둘째는 불안감이다. ‘너는 못난 놈이야’라는 말을 듣지 않을까 하는 감정을 가리킨다. 셋째는 미래를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노력이다. 이 세 요소가 결합된 패키지가 성공의 조건이라는 것을 논증하기 위해 두 교수는 방대한 사례와 문헌을 섭렵했다. 한글판 기준으로 주석이 128페이지에 달한다.

 외교전문지 ‘포린폴린시’가 선정한 ‘세계 100대 지성’인 추아 교수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그는 『타이거 마더』(2011)라는 책으로 세계적인 양육 논쟁을 불러 일으켰고 타임의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러벤펠드 교수는 성공한 법학자이면서 동시에 『살인의 해석』(2007)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중국계 미국인들의 양육법을 담은 ?타이거 마더?로 유명한 에이미 추아 미 예일대 교수. 그는 우월감과 불안감을 잘 활용하면 인생을 바꾸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 성공을 위한 세 요소를 간략히 요약한다면.

 “성공하기 위해선 첫째로 ‘나는 특별하다’는 긍지(pride)가 필요하다. 긍지는 우월감이다. 그 다음엔 긍지를 증명해야 한다. ‘아직은 사람들로부터 충분히 인정받지 못했다’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품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 생각 없이 우월감만 지니고 있으면 게으르게 된다. 이 두 가지를 완성하는 것은 열심히 노력하는 일이다.”

 - 이 이론은 집단·국가에도 적용할 수 있나.

 “그렇다. 한국은 완벽한 사례다. 나는 한국인 친구도 많고 한국에 대한 책도 많이 읽었다. 한국은 ‘우리 민족은 특별하다’는 민족 정체성, 예외주의(exceptionalism)가 강한 나라다. 하지만 한국은 일본 강점기 등을 거치며 ‘불안감’(insecurity, anxiety)도 겪게 됐다. 가난한 신생 한국에는 아직은 세계에 보여줄 것이 없다는 불안감이 있었다. 한국의 민족 자긍심과 불안감이 합쳐졌을 때 놀라운 에너지가 분출했다. 이는 한국에서 말하는 ‘한(恨)’을 승화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러한 성공 메커니즘은 현대 중국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미국의 아시아계 이민자들도 이러한 과정을 거쳤다. 모국인 한국과 중국에 대한 긍지와 그들이 처한 현실 사이에는 간격이 있었다. 미국 땅에서 아시아계 이민자들은 서툰 영어 억양이 웃음거리가 됐고 차별도 겪었다. 하지만 긍지로 무장한 그들에겐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의지와 실천이 있었다. 우리 아버지는 성공하려면 백인들보다 두 배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 『트리플 패키지』는 아시아계·나이지리아계·쿠바계 미국인, 유대인들의 성공을 분석했기 때문에 인종주의적인 주장을 펼치고 있다는 비판도 받는다. 하지만 책 내용을 보면 오히려 ‘반인종주의 선언’으로 볼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지도 않고 인종주의 운운한다. 읽은 사람들은 이 책이 인종주의에 반대한다는 것을 안다. 아시아계의 성공은 인종과는 무관하다. 사실 이민 3세대 이후부터는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우수한 성취가 점점 떨어지기 시작한다. 미국 사회에 동화돼 일반 미국인들처럼 돼버리기 때문이다.”

에이미 추아와 남편 제드 러벤펠드

 - 조기 교육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과 피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동양과 서양의 장점을 취합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과 중국이 공유하는 전통문화적 가치들, 특히 유교문화의 특징인 근면성, 어른 공경, 선생님에 대한 존경, 포기하지 않고 목표를 추구하는 의지를 어린이들에게 반드시 가르쳐야 한다. 하지만 21세기에는 ‘고정관념의 틀에서 벗어나는 것(thinking outside of the box)’, 즉 창의성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다. 미국의 경우에는 어린이들에게 규율과 근면성을 가르치지 않는 게 문제다. 동아시아의 경우에는 아이들에게 권위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법을 충분히 가르치지 않는 게 문제다. 쉽지는 않겠지만 동양과 서양의 교육·육아 전통을 합치면 완벽한 조합이 이뤄질 수 있다.”

 -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다.

 “성공은 매우 복잡하다. 성공에는 대가가 있다. 성공하는 대신 덜 행복해질 수도 있다. 또한 돈이나 명예만이 성공의 잣대는 아니다. 종교나 봉사가 삶의 목표라면 그 안에도 성공이 있다. 무엇이든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 속에 성공이 있다. K- 팝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지만, 자녀가 음악가가 되는 것을 반대하며 자녀가 교수나 의사가 되길 바라는 한국 부모도 있을 것이다. 성공의 정의를 확장할 필요가 있다.”

 - 『타이거 마더』 『트리플 패키지』 등 내놓는 책마다 베스트셀러가 되는데 그 비결은.

 “진정으로 믿는 것, 자랑스러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말하는 게 비결이다. 내 책에 대해 상당수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정직하고 용감하게 내 견해를 표명한다.”

김환영 기자

“맞다” “역겹다” 들끓는 미국

신간 『트리플 패키지』에 대해 미국의 주요 언론들이 관심을 보이며 서평을 게재하는 가운데 상당수 ‘적대적’인 서평도 보인다. 5월 1일자 시카고트리뷴에 실린 서평의 제목은 “『트리플 패키지는 3중으로 역겹다”이다. 미국 독립선언문에 나오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됐다”는 미국의 근본 가치에 도전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반응이 나온다.

 『트리플 패키지』에 따르면 사회적 평등 관념보다는 개인적 우월감이 성공의 제1 조건이다. 인종·성별·장애, 성적 취향 등 모든 인간의 조건에서 차별·편견·불평등을 제거하려는 관점, 즉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중시하는 미국 지성계, 특히 리버럴 지식인들이 들고 일어날만하다.

 추아 교수에 따르면 『트리플 패키지』는 한국이라는 나라에도 적용된다. 왠지 공감이 가는 주장이다. 가난했던 시절 버팀목이 됐던 것은 ‘나는 뼈대있는 가문 출신이다’라는 ‘우월감’이었다. 비록 가난했지만 모두 ‘양반의 자손’이었다. 또한 ‘일본은 고구려·백제·신라 우리 선조의 가르침 속에 성장한 나라다’라는 민족적 긍지도 있었다.

 『트리플 패키지』에는 시효가 있다. 살만해지면, 긍지의 근거를 입증하려는 ‘헝그리 정신’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 히딩크 감독의 “나는 아직 배가 고프다”, 스티브 잡스의 “허기진 상태를 유지하라(Stay hungry)”는 말에 답이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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