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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원조 받는 나라' 공식 졸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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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어서린 커즌

“세계식량계획(WFP)에서 주는 식량으로 놀고 있는 농사꾼들에게 노임을 주고 간척사업에 투입하면, 그 가족들은 더 많은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됩니다. 이번에 식량을 지원해 준다면 장기적으로 한국의 만성적 기근 해결에 큰 보탬이 될 것입니다.”

 1964년 4월 농림수산부가 WFP에 보낸 원조신청서의 일부다. 보릿고개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WFP의 지원이 절실했던 정부는 간척사업이 한국 경제발전에 중요한 이유를 구구절절 써 보냈다. 이렇게 시작된 WFP 지원은 68년 ‘한-WFP 원조협정’을 통해 공식화됐고, 84년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50년이 지난 22일 한국은 WFP로부터 공식적인 ‘졸업장’을 받았다. 이날 외교부 청사에서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어서린 커즌 WFP 사무총장 사이에 한·WFP 기본협력협정 체결을 위한 서명식이 열렸다. 68년 원조협정을 공식 종료하고, 새로운 관계 정립을 선언하는 자리였다.

 한국이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벗어난 지는 이미 오래지만, 공식적 지위 변경은 이뤄지지 않았다. WFP는 한국에 더 높은 수준의 기여와 협력 확대를 기대했다. 정부의 WFP 출연금은 2010년 410만 달러에서 2013년 1578만 달러로 뛰었다. 2000년 이후 ODA(공적개발원조)를 통한 출연액은 1억5000만 달러다. 한국이 20년 동안 받은 원조액이 1억400만 달러인 것을 감안하면 졸업도 ‘수석 졸업’인 셈이다.

 커즌 사무총장은 서명식 이후 기자들과 만나 “오늘은 WFP에 중대한 순간(miles tone moment)”이라고 평했다. 커즌 사무총장은 이전에도 아프리카 국가 등을 방문했을 때 한국과 중국을 예로 들며 지금의 빈곤에서 충분히 벗어날 수 있다고 강조하곤 했다. 그는 “한때 굶주림에 허덕였던 한국이 지금은 세계의 배고픈 아이들을 돕는 나라가 됐다”며 “새로운 파트너십을 이번 협정을 통해 공식화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유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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