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이 21일 북한 개성공단 방문 일정을 마치고 귀환했다. 천주교 추기경이 북한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염 추기경을 포함한 천주교 사제 6명과 서울대교구 관계자 2명 등 8명의 방북단은 이날 개성공단을 둘러보고 남한 기업의 신자를 만나 한반도 평화와 화해를 기원했다.
현지 사정을 고려해 미사는 하지 않았다.
이날 오후 5시15분 경기도 파주시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를 통해 귀환한 염 추기경은 “남과 북이 함께 화합하는 개성공단을 방문하고 아픔과 슬픔을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을 보았다”며 “선의의 뜻을 가진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진실로 노력한다면 평화가 정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방북 소감을 밝혔다. 그는 “서울에서 개성공단까지 60㎞ 남짓한 짧은 거리를 얼마나 멀게 살고 있는가 하는 걸 느꼈다”며 “모두가 한마음으로 함께 해주길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염 추기경은 현재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겸 평양교구장 서리직을 맡고 있다. 2012년 5월 서울대교구장에 임명된 뒤 북한 방문을 추진해 왔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염 추기경은 지난해 8월 개성공단 내 천주교신자공동체(로사리오회)를 만나 개성공단 정상화 이후 방문을 약속했다고 한다.
성탄절에도 개성공단 방문을 추진했지만 장성택 처형 등으로 북한 분위기가 악화되며 성사되지 않았다. 이후 올해 초부터 다시 방북을 추진해 지난 19일 북한이 동의했다.
천주교 방북단에 따르면 염 추기경은 8시간가량 북한에 머물며 현지 기업인들의 고충도 들었다. 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허영엽 신부는 “남북협력의 상징인 개성공단에서 남북의 화해와 일치, 평화로운 통일 가능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며 “평화통일은 개성공단의 활성화에서 출발해 어려움을 극복해나갈 때 가능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천주교 방북단 측은 이번 방북이 8월 한국을 방문하는 프란치스코 교황과는 무관하며 개성공단 내 천주교신자공동체의 요청에 따른 방문이라고 설명했다.
허 신부는 “북측 인사와는 전혀 접촉이 없었다”며 “교황의 방한과도 무관하다”고 밝혔다. 비공개로 추진된 이번 방북이 교황의 북한 방문을 추진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 아니냐는 전망이 일각에서 나온 걸 염두에 둔 발언이다. 천주교 방북단은 향후 북측과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싶다는 뜻을 피력했다. 허 신부는 “추기경께서 향후에도 개성공단뿐 아니라 평양 방문을 희망하고 있기에 대화 분위기가 이어지기를 기대한다”며 “가능하다면 북한의 천주교와도 교류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번 염 추기경의 방북을 남북관계 개선의 긍정적 신호로 보고 있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위협과 무인기 사건 등으로 긴장이 높아진 시점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다.
파주=정원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