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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하의 여론읽기] 휴대폰 여론조사, 샘플 대표성에 성패 달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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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여론조사가 쏟아지고 있다. 21일 오후 현재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에 등록된 여론조사만 440여 개다. 각 선거캠프는 여론조사를 토대로 전략을 짜고 공약을 만들고 후보 동선(動線)을 조정한다. 선거전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여론조사는 과연 얼마큼 정확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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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지방선거 땐 여론조사 역사에서 ‘세월호 침몰’에 비유할 만한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선거 직전인 5월 24~26일 실시된 미디어리서치·코리아리서치·TNS 조사는 한나라당의 완승을 예측했다. 서울에서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가 민주당 한명숙 후보에게 50.4% 대 32.6%로 크게 앞선 것을 비롯, 경기에선 한나라당 김문수 후보가 국민참여당 유시민 후보에게 44.7% 대 32.6%, 인천에선 한나라당 안상수 후보가 민주당 송영길 후보에게 44.2% 대 32.9%로 여유 있게 우위를 점했다. 다른 조사기관의 추세도 거의 비슷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서울은 오세훈 후보가 한명숙 후보를 고작 0.6%포인트 차로 따돌리는 초박빙 양상이었다. 진작부터 이런 여론조사가 나왔더라면 한 후보는 어떻게든 진보신당 노회찬 후보(3.3% 득표)와 후보단일화를 성사시켰을 가능성이 크다. 인천에선 아예 송영길 후보가 8.3%포인트 격차로 안상수 후보를 따돌렸고, 경기에서도 유시민 후보는 김문수 후보의 턱밑(4.4%포인트 격차)까지 쫓아갔다.

 당시 여론조사기관들이 망신을 당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째 유선전화 없이 휴대전화만 사용하는 가구가 갈수록 늘고 있는데도 기관들은 여전히 유선전화 조사에만 매달렸다. 둘째 유선전화 조사의 경우에도 표본 추출을 KT 전화번호부에만 의존하다보니 과거보다 비중이 증가한 KT전화번호부 비등재 가구가 조사 대상에서 빠졌다. 이런 요인들 때문에 많은 야당 지지층이 조사에서 원천적으로 배제됐다는 결론이다.

 이에 절치부심한 조사기관들은 ▶유선전화와 휴대전화 조사를 병행하고 ▶RDD(Random Digit Dialing·임의번호 걸기) 방식을 도입하는 등의 보완책을 마련했다. RDD는 컴퓨터가 임의로 생성한 전화번호로 조사를 하는 것이다. 조사 비용은 증가하지만 KT 비등재 가구까지 조사 대상에 포함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조사기관들은 이번엔 4년 전과 같은 오류는 없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인다. 리서치앤리서치 배종찬 본부장은 “표본의 대표성을 최대한 확보했고 진보적 성향이 강한 20, 30대의 의견도 휴대전화 조사로 반영하기 때문에 2010년 때의 예측불안정성은 극복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2년 대선 때 ‘유·무선 병행+RDD’ 방식을 도입한 조사는 상당히 정확히 결과를 예측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불안 요소는 남아있다. 휴대전화 RDD 조사는 대선처럼 전국 단위 조사에선 써먹기 쉽지만 조사 대상이 특정 지역으로 국한되면 시간과 비용과 너무 들어간다. 그 때문에 조사기관들은 각자 입수한 휴대전화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표본을 추출하는 ‘편법’을 활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데이터베이스가 과연 전체 유권자의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는 표집틀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게 문제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어떤 기관에선 휴대전화 조사에 응하겠다는 자원자들을 따로 뽑아 조사를 하는데 이런 경우엔 이미 표집틀 자체에 특정한 정치적 경향이 반영돼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또 인구가 적은 지역에선 휴대전화 조사의 경우 성별·연령별 할당치를 못 채워 애를 먹는 조사기관들이 많다고 한다. 그럴 경우 가중치를 부여해서 부족분을 메워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정확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일부에선 세월호 참사와 같은 압도적 이슈가 발생했을 때 자신이 소수자라고 생각하는 그룹이 의견 표명을 기피하는 ‘침묵의 나선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리얼미터 이택수 대표는 “최근 여러 기관의 여론조사를 비교해보면 야당 후보 지지율은 엇비슷한데 여당 후보 지지율은 상대적으로 편차가 크다”며 “세월호 사고로 정부가 대대적인 비판을 받게 되자 친여 성향의 유권자들이 여론조사를 꺼린다는 해석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여론조사기관들이 4년 전의 굴욕을 만회할지, 아니면 또다시 반성문을 쓰게 될지도 이번 지방선거의 관전 포인트다.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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