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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다 25세 캡틴 '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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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주장감으로 꼽히는 선수로는 박주영·기성용·이청용 등이 있다. 홍 감독의 선택은 이번에도 구자철이었다. 강력한 리더는 아니지만 자신을 희생할 줄 알고, 주변을 더 빛나게 만드는 스타일이다. [파주=김진경 기자]

“넌 내 눈을 팔아서 키웠다.”

 구자철(25·마인츠) 부친 구광회(54)씨가 아들이 느슨해질 때면 건네는 농담이다. 구씨는 24년간 공군 주력기 F-16 정비사로 복무하다 2002년 의가사 제대했다. 최근 유성 자택에서 만난 구씨는 “총을 분해하다 사고로 파편이 오른쪽 눈에 들어가 실명했다. 당시 중3이던 자철이는 축구로 꼭 성공해 효도하겠다고 했다”며 “난 요즘도 자철이에게 ‘국가대표는 국가를 위해 모든걸 바쳐야 한다. 생명까지 걸려 있다고 생각해라. 나도 군대에 있을 때 국민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고 강조한다”고 말했다. 21일 브라질 월드컵에서 태극전사를 이끌 주장으로 선임된 구자철은 어려서부터 ‘FM(야전교범·Field Manual)’으로 자랐다.

 홍명보 감독은 21일 파주NFC에서 가진 선수단 미팅을 통해 주장 구자철, 부주장 이청용(26)을 선임했다. 홍 감독은 “선배들과 관계가 두루 원만하고 선수단 중심 역할을 잘했다. 청소년 대표 시절에는 같은 연령대 선수들보다 한 살이 많아 형으로서 역할을 했다. 책임감이 강하고 리더다운 모습을 보여준다”고 구자철에게 주장 완장을 채운 이유를 설명했다.

 홍명보(2002년)-이운재(2006년)-박지성(2010년)에 이어 월드컵 주장을 맡게 된 구자철은 “감독님이 날 믿고 시켜줬다고 생각한다. 월드컵을 향해 가는 대표팀인 만큼 좀 더 진중하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1989년 2월 27일 태어난 구자철은 역대 한국 축구 월드컵 대표팀 주장 가운데 최연소(25세) 기록을 세웠다. 이전 기록은 29세에 주장을 맡았던 박지성이었다. 공격수로 분류된 선수가 월드컵에서 팀을 지휘하는 주장이 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매일 우유 1L씩 먹던 아이=구자철은 충주 중앙초 5학년 때 축구를 시작했다. 구씨는 “자철이는 세 가지 약속을 했다. ‘축구화를 신었으면 죽을 때까지 벗지 마라, 숙소 이탈은 금지다, 학교 공부는 반 15등 안에 들어라’였다”며 “마지막 약속만 못 지켰지만 유럽 진출을 꿈꾸며 영어 공부를 꾸준히 했다”고 말했다.

축구부의 훈련이 고돼 책만 잡으면 잠이 온다는 고민이 담긴 초등학교 5학년때 일기. 10등을 목표로 세우고 공부에도 욕심을 보였다. [사진 구자철 가족]

 구자철은 청주 대성중 입학 당시 키가 1m46㎝에 불과했다. 키 크기 위해 중학교 때부터 매일 우유 1L를 마셨다. 구씨는 “난 어릴 적 모유 대신 쌀뜨물을 먹고 커서 키가 작다. 자철이는 동료들이 먹기 싫어 사물함에 숨겨 둔 우유까지 모아 마셨다. 훈련 때 아이스박스에 우유를 챙겨가 물 대신 마셨다”며 “죽순처럼 크더니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1m80㎝(1m82㎝)가 넘었다”고 대견해했다.

 학창 시절 구자철의 롤모델은 축구 대표팀 공격수 박주영(29·왓퍼드)이었다. 구씨는 “자철이는 2004년 박주영이 19세 이하(U-19) 아시아선수권 결승에서 중국 수비 4명을 농락하며 골 넣는 장면을 봤다. 자철이는 ‘주영이 형처럼 청소년 대표에 발탁돼 주장을 할 거다’고 말했다. 매일 전술이 적힌 축구일기를 쓰며 반성했다”고 말했다.

 시련은 있었다. 구자철은 고교 시절 빈혈로 한 달간 병원에 입원했다. 악바리 구자철은 철분제를 먹고 뛰며 이겨냈다.

 구자철은 프로 초창기 부상이 잦았지만 성실함으로 극복했다. 구씨는 “자철이는 휴가 때 집에 오면 경남 함양 산속에 있는 지인을 찾아가 개인 훈련을 했다. 얼음 같은 계곡물에 들어가 수양을 했다. 갈 때 헐렁헐렁했던 청바지가 돌아올 땐 터질 듯했다”며 “젊은 시절 추억을 위해 친구들과 술을 마시라고 하면 ‘아빠 맞아? 난 아빠와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절제된 생활을 했다”고 전했다.

 구자철은 2010년부터 훨훨 날아 올랐다. 그해 5골·12도움을 올리며 K리그 중위권팀 제주를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이듬해 카타르 아시안컵 득점왕(5골)에 올라 독일 분데스리가 볼프스부르크로 이적했고, 2011년 독일 아우크스부르크로 임대돼 2시즌 연속 1부리그 잔류를 이끌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주장 완장을 차고 동메달 획득을 이끌었고, 지난 1월 500만 유로(약 72억원)에 독일 마인츠로 이적했다.

 2012년 후방십자인대 파열로 9개월간 독일 구자철 집에 머물며 재활한 홍정호(25·아우크스부르크)는 탄산음료와 커피를 입에 대지도 않고, 쉬는 날 집에만 있는 구자철의 철저한 몸관리를 보고 배웠다. 박경훈 제주 감독은 “축구선수는 자철이처럼 축구밖에 몰라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구씨는 “자철이는 효자가 되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부모가 이혼해 많이 돌봐준 고모에게 아파트를 선물했다. 오는 12월 결혼하는 ROTC 중위 출신 형의 제과점 창업비도 보태줬다”고 귀띔했다.

◆홍명보의 페르소나=구자철은 홍 감독의 ‘페르소나(Persona)’다. 페르소나는 영화계에서 감독의 속뜻을 가장 잘 파악하고 표현해내는 단짝 배우다. 마틴 스코세이지-로버트 드니로, 봉준호-송강호 등이 대표적이다. 축구계에서는 알렉스 퍼거슨 전 맨유 감독-라이언 긱스 등이 있다.

 구자철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직전 오스트리아 전지훈련까지 갔다가 최종 엔트리에 탈락해 실의에 빠져 있었다. 홍 감독은 쓸쓸하게 인천공항에 도착한 구자철에게 전화를 걸어 “넌 우리나라 최고가 될 수 있다. 한 번의 실패로 좌절하지 말라”고 위로해줬다. 홍 감독은 자신이 지휘한 2009년 이집트 U-20 월드컵과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2012 올림픽 모두 구자철에게 주장을 맡겼다.

 구자철은 리더로서 조직력과 콤비네이션, 전방 압박 등 홍 감독의 축구철학을 가장 잘 구현한다. 홍 감독이 추구하는 ‘원 팀(one team)’을 만들 수 있는 적임자다. 구자철은 아줌마처럼 주변을 세심하게 챙긴다고 해서 별명이 ‘구줌마(구자철+아줌마)’다.

 구자철은 ‘기부천사’ 홍 감독과 사생활도 비슷하다. 구자철은 지난해 언론에 알리지 않고 3000만원을 기부했고 대표팀 경기 때 자비를 들여 여러 차례 난치병 아동들을 초청했다. 홍 감독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1억원 이상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다.

박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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