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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서소문 포럼

한·미·일 삼각동맹 시대에 생각하는 자주국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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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채인택
논설위원

BBC방송을 보니 영국은 올해 제1차 세계대전 100주년의 해를 맞아 20일 특별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전국의 모든 중등학교에서 학생 대표를 2명씩 뽑아 순차적으로 벨기에와 프랑스에 있는 1차대전 당시 전쟁터에 데리고 가는 현장학습 프로그램이다. 첫 행사에서 학생들은 독가스로 유명한 이프레 등을 방문하고 1만1000여 명의 전사자가 묻힌 벨기에의 묘역을 찾아 전쟁사 전문가들의 해설을 들었다. 이렇게 공부한 세대는 앞으로 국제갈등을 무력으로 해결하려 드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잘 알고 행동하게 될 것이다.

 이들은 1차대전의 교훈을 곱씹으면서 무력의존의 어리석음과 함께 동맹의존의 문제와 한계도 함께 배우게 되지 않을까 싶다. 당시 영국·프랑스·러시아를 한 축으로, 독일·오스트리아·터키·불가리아를 다른 축으로 하는 동맹이 서로 얽어매는 바람에 원하지도, 이익도 되지 않는 벅찬 전쟁을 무리하게 벌였다 공멸했다는 게 많은 학자의 평가다. 동맹이 족쇄가 된 역사에서 이기적 교훈을 얻어서일까? 지금부터 75년 전인 1939년 서방 강대국들은 약소 동맹국인 폴란드를 ‘배신’했다. 당시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동맹국인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에 개전선언만 했을 뿐 실질적이고 적극적인 군사 개입은 유보했던 것이다. 동맹국을 위해 ‘문서로만’ 움직였다는 평가가 있다. 폴란드가 ‘적의 적’으로 여겼던 소련까지 나치 독일에 가세해 폴란드는 결국 일시 사라졌다. 영원한 동맹국도 적도 없다는 뼈저린 교훈이다.

 한국은 굳건한 한·미동맹에 따라 동맹의 힘을 활용해 안보를 강화하고 있다. 지난달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방한으로 전시작전권 반환이 연기될 것으로 기대되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서방의 일원이 되려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파상공세를 막을 외교력과 군사력이 과연 오바마의 손에 있기라도 한 것인지 의심하는 목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다. 미국을 믿고 러시아에 ‘덤볐던’ 우크라이나는 앞으로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서방의 일원이 된 발트 3국과 동유럽 국가들이 앞으로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도 관심거리다.

 게다가 동맹에는 공짜도 없다. 주한미군 주둔 분담금도 문제지만 동맹의 동맹인 일본과의 관계는 이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정치적 비용’일 것이다. 미국이 한·미·일 삼각동맹으로 동북아시아에서 중국에 대항하는 집단방위체제를 만들려고 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때문에 한국의 고민은 끝이 없다. 헌법해석을 통한 집단적 자위권 확보로 평화국가를 포기하고 전쟁할 수 있는 나라를 추구하는 아베 정권의 일본과 군사적으로 손잡을 것을 요구하는 동맹국 미국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일본과의 자존심 싸움에서 밀리는 것은 한국 정치인에게 재앙과도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미국이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한국이 이런 다중 동맹체제에서 얻을 이해득실 계산서는 더욱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자칫 대북정책에서 유연성과 자기주도권을 잃을 가능성이 커지는 건 아닐까? 최대의 교역 상대국이자 대북정책에서 핵심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는 중국과의 관계가 껄끄러워진다면 어떻게 될까? 이런 상황에서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회의(CICA) 정상회의’에선 20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푸틴과 뜨겁게 손을 잡았다. 북한의 핵과 대륙간탄도탄이라는 대량살상무기 앞에 노출된 대한민국이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스스로 설 힘을 길러야 한다. 우리가 힘이 있으면 동맹도 무리한 요구를 하지 못하고 이웃 국가도 우리 입장에 더욱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를 위해 지금 당장 필요한 게 전작권 반환 연기에 맞춰 추진할 전력증강 프로젝트일 것이다. 그런 계획을 세워야 북한 도발 이야기만 나오면 화들짝 놀라는 국민도 안심시킬 수 있다. 자주국방과 이를 뒷받침할 경제력은 햇볕정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물론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해서라도 필수적이다.

채인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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