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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연금이 기초생활수급자를 울리다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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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강갑생 기자 중앙일보 교통전문기자
강갑생
JTBC 사회 1부장

내용은 다소 불만이었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싶었다. 우여곡절 끝에 기초연금 관련 법이 국회를 통과했을 때 든 생각이다. 7월부터 최대 20만원이 지급되면 형편이 어려운 노인들에게 분명 작게나마 보탬이 될 거라 믿었다. 그런데 최근 납득하기 어려운 경우를 하나 알게 됐다. 기초생활수급자인 노인들 얘기다. 이분들은 소득기준으로 따졌을 때 최하위다. 기초연금은 소득 하위 70%가 지급 대상이니 당연히 20만원씩을 받게 된다. 하지만 정부는 그 액수만큼 생계비 지원금을 깎을 거라고 한다. 기초연금이 소득으로 잡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기초연금 혜택을 단 한 푼도 못 보는 셈이다. 손에 쥐는 돈은 같은데 명목만 다를 뿐이다.

 최근 JTBC 뉴스 9에서 보도한 사례를 보자. 서울 서대문구의 단칸방에 홀로 사는 85세 할머니는 한 달 수입이 40만원가량이다. 대부분 정부가 주는 생계보조금이다. 기초연금 20만원 지급 소식은 할머니에겐 큰 기대였다. 형편에 비춰 20만원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어서다. 그러나 생계보조금이 20만원 줄어들 거란 설명에 허탈해한다. “20만원 깎고 20만원 주면 그게 주는 거냐”고 항변도 한다. 비슷한 처지의 노인이 40만 명에 달한다.

 어찌된 걸까.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 측 설명을 들었다. 현재 9만원 조금 넘는 기초노령연금 역시 소득으로 잡아 그만큼을 빼고 생계비를 준다고 했다. 일본·스웨덴 등 선진국도 유사한 방식을 쓴다는 설명이다. 기초수급자에게 생계비에다 기초연금까지 추가 지급하면 차상위 계층보다 소득이 많아져 형평에 어긋난다고도 했다. 단순 소득은 차상위계층이 더 많지만 기초수급자에게 주어지는 각종 혜택을 감안하면 그렇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기초수급자는 그에 맞는 맞춤형 지원으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의무부양자 기준을 낮추고 생계·의료·주거 등 각기 필요한 지원을 강화하는 내용의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해 놓았다고도 했다.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내용이다.

 하지만 정부가 간과하고 있는 게 있다. 더 큰 불공평과 소외감이다. 기초연금 수급자 400여만 명 가운데 90%가 최고액인 20만원을 받는다. 대부분 실제로 소득이 늘어난다. 심지어 소득이 상위 30%에 가까운 노인도 그렇다. 형편이 가장 어려운 노인들에게 이 불공평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기초수급자들을 위한 법 개정안은 지난해 정기국회에 제출됐지만 여태 계류 중이다. 9월 정기국회에서 통과된다고 해도 준비기간을 거치면 내년 10월에나 시행 가능하다. 반면 기초연금은 당장 7월부터 지급된다. 아무런 보완책도 없이 한 푼도 더 못 받는 노인들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까. 복지부는 홈페이지에 ‘기초연금은 상생연금’이라고 썼다. 적어도 지금은 아닌 것 같다. 원칙만 고집할 게 아니라 서둘러 보완책을 찾는 게 필요하다. 그게 진정 상생(相生)으로 가는 길일 듯싶다.

강갑생 JTBC 사회 1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