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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째 친환경 농산물 싼값에 직거래…20~30분 반짝 개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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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장터에 빠지지 않는 김태수씨가 농장에서 막 수확한 채소를 들어 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채원상 기자

천안 지역 아파트 단지에선 22년째 이색 장터가 열리고 있다. 천안시 농산물유통농촌지도자회(이하 농촌지도자회)가 운영하는 ‘농산물 직거래 목요장터’(이하 목요장터)다. 이곳에서는 지역 농가들이 재배한 친환경 농산물과 과일을 싸게 판매한다. 그런데 하루 종일 열리는 다른 아파트와 달리 목요장터는 아파트별로 20~30분만 개설된다. 이동식 번개 장터인 셈이다. 그런데도 농산물을 사려는 주부들로 북적댈 정도로 인기가 많다.

지난 15일 오후 4시15분 천안시 서북구 신방동 현대향촌아파트 안 주차장 주변에 40여 명의 아파트 주민이 모여 있었다. 잠시 뒤 농산물을 가득 실은 10여 대의 트럭이 주차장에 자리 잡았다. 차 안과 바닥에는 신선한 채소·과일이 담긴 바구니가 쭉 놓여 있었다. 목요장터가 열린 것이다. 아파트 주민들은 익숙한 듯 필요한 물건을 산 뒤 장바구니에 담아 집으로 돌아갔다.

 장터 개설 시간은 오후 4시20분부터 30분간. 짧은 시간에 농산물 판매를 마친 농민들은 서둘러 박스를 정돈한 뒤 인근 한라동백 2차아파트로 가 다시 반짝(4시55분~5시25분) 장터를 열었다.

현대향촌아파트 주민 이선영(46·여)씨는 “대형 마트보다 신선하고 저렴해 가족이 일주일 먹을 채소와 과일을 항상 목요장터에서 구입한다”며 ”주민들이 장터 열리는 시간을 미리 알고 있는 데다 가격과 품질에 대한 믿음도 갖고 있어 필요한 것을 사는 데 10분이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22개 농가 농산물 31곳에서 팔아

목요장터가 시작된 것은 1993년. 당시 천안 지역 농가 8곳이 ‘주민에게는 신선한 농산물을 저렴하게, 농민에게는 안정적인 판로 확보’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아파트 단지를 대상으로 한 장터 개설을 생각해 냈다. 처음 6개 아파트 단지에서 장터를 열었으나 실패였다. 팔지 못해 버리는 농산물이 더 많을 정도로 장사가 안 됐다. ‘어떤 과정을 거쳐 생산되는지 모르겠다’는 아파트 주민들의 불신 때문이었다. 이를 딱하게 여긴 천안시농업기술센터가 장터 참여 농가를 지원하면서 점차 활기를 띠게 됐다.

농산물 직거래 판매를 희망하는 농가들을 하나로 묶어 천안시 농산물유통농촌지도자회를 결성했다. 농촌지도자회는 아파트 부녀회를 통해 직거래 판로를 개척하는 데 적극 나섰다. 또 회원 농가에서 재배하는 농산물의 품질을 철저히 관리하고 매년 4~5차례 교육을 실시해 판매 경쟁력 쌓기에 앞장섰다. 회원 농가도 질 좋은 농산물만 판매하기로 결의했다.

이동식 장터 특성상 ‘소비자와의 시간 약속은 생명’이라는 원칙 아래 장터 개장 시간을 정확하게 지켰다. 이 같은 회원 농가들의 노력은 서서히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산지에서 갓 재배한 질 좋은 농산물을 정해진 시간에 아파트 단지 안에서 값싸게 살 수 있다는 주부들의 입소문이 퍼지면서 장터 인기가 점점 높아졌다.

현재 회원 농가는 22곳으로 늘었고 장터가 개설되는 아파트 단지는 31곳으로 증가했다. 2개 조로 나눠 매년 4월부터 11월까지 목요일마다 아파트별로 오전·오후에 시간대를 정해 장터를 연다.

농촌지도자회 소속 농가에서 생산해 판매하는 농산물은 오이·상추·호박·고추 같은 채소류와 과일 등 40여 품목에 이른다. 저농약 친환경 농법으로 길러 곧장 팔기 때문에 싱싱한 농산물이라는 게 큰 장점이다. 생산자와 소비자 간 직거래로 중간 유통과정을 없애 가격도 대형 마트보다 평균 10~20% 저렴하다.

지난 한 해 4억여 원 매출 기록

장터 개설 뒤 22년째 참여하고 있는 김태수(60·여)씨는 “신선한 농산물을 제공하기 위해 수확하자마자 포장하느라 장터가 열리는 날이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아파트 주민들로부터 ‘신선해서 참 좋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피로가 싹 가신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엔 농산물을 사는 주부들의 눈이 농민 못지 않게 깐깐하기 때문에 신선도나 맛이 떨어지는 채소·과일을 내놓았다가는 목요장터도 오래 가지 못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농촌지도자회는 장터에서 판매되는 농산물이 어떻게 재배되는지 궁금해 하는 소비자를 위해 매년 아파트 부녀회원 100여 명을 생산 현장에 초청한다. 부녀회원들은 이날 농가에서 재배하고 수확하는 과정을 직접 보고 체험도 한다.

농촌지도자회 배경수 회장은 “지난해 한 해 동안 목요장터 매출액이 4억4100여만원에 달해 농가와 소비자 모두 좋은 성과를 얻고 있다”며 “천안 지역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만큼 목요장터도 확대해 더 많은 소비자와 농가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숙종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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