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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관광대국 가는 길, 세계 1위 ICT에 물어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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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한 관광객이 증강현실 기반으로 만들어진 ‘내 손안의 경복궁’ 앱을 실행시켜 근정전에 대한 영상과 설명을 듣고 있다. [최승식 기자]

지난 주말 경복궁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 리멍(43·여)은 따로 관광가이드를 두지 않고도 경복궁과 관련한 각종 역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내 손안의 경복궁’이라는 애플리케이션(앱)을 설치한 덕이다. 그가 궐 안으로 들어서자 스마트폰에는 중국어로 ‘근정전’이라는 단어가 뜨고, ‘왕이 정사를 보며 새해 인사를 받던 곳’이라는 내용이 소개됐다. 자경전에 스마트폰을 비추자 화면에선 꽃담에 꽃이 피어나고 나비가 날아다녔다. 리멍은 “‘임금의 행차’ ‘왕세자의 하루’라는 스토리의 주인공이 돼 조선시대 임금의 하루를 간접 체험해볼 수도 있었다”며 “다양한 영상과 설명도 맘에 들었지만 이런 앱을 구현시키는 기술력이 더욱 놀랍다”고 말했다.

 다양한 정보통신기술(ICT)을 기반으로 하는 ‘스마트 관광’이 한국 관광 및 레저산업을 발전시키는 ‘성장엔진’으로 떠오르고 있다. 19일 KT경제경영연구소가 ‘트래블&투어리즘’의 ‘2013년 140개국 관광경쟁력 평가’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25위를 차지했다. 2011년보다 7계단이 올랐다. 자연경관 등 관광자원이 부족하고(관광자원 89위), 가격·물가가 비싸다는(가격경쟁력 96위) 점이 전체 점수를 깎아먹었다. 하지만 문화적 가치는 우수하다는(문화자원 10위) 평가를 받았고, 무엇보다 첨단 ICT 기반의 인프라를 갖췄다는(ICT 인프라 1위) 점이 순위를 끌어올렸다. 세계 최고 수준의 ICT 인프라가 한국 관광 경쟁력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KT경제경영연구소 김은지 연구원은 “최근 관광 트렌드가 단체여행이 아닌 개별 자유여행 위주로 바뀌면서 관련 서비스·기술에 대한 수요도 늘어나고 있다”며 “한국이 비교우위에 있는 문화자원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ICT 관광 인프라를 더욱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 동대문에 마련된 K팝 홀로그램 전용공연장 ‘클라이브(Klive)’에서 가수 싸이의 공연이 홀로그램으로 상영되고 있다.

 예컨대 동대문에 자리 잡은 세계 최초 홀로그램 전용관 ‘클라이브(Klive)’는 ICT로 외국인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여기에서는 싸이·빅뱅·2NE1 등 YG 소속 가수들의 홀로그램 콘서트가 시연된다. 홀로그램 콘서트는 실제와 가상의 구분이 어려울 정도의 실사감을 자랑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절로 감탄을 자아낸다. 클라이브는 지난 1월 시험 기간 동안 한 회 평균 150명, 총 3만 명의 관객을 모으는 데 성공했고, 2월부터는 3만원을 받고 유료공연을 시작했다. SM엔터테인먼트도 올해 하반기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 소속 가수들이 등장하는 홀로그램 공연장을 개장할 예정이다. 미래창조과학부 이충원 디지털콘텐츠과장은 “1세대 한류의 성공이 한국의 연예인과 개성 있는 콘텐트에 기인했다면 2세대 한류의 성공 여부는 ICT를 활용한 차별화된 콘텐트 제공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아리아호텔 객실 모습. 스마트기기를 통해 객실의 주요 기능을 조정할 수 있다. [사진 KT경제경영연구소]

 공공정보를 활용해 병원 정보를 알려주는 앱인 ‘메디라떼’로 유명한 에이디벤처스는 중국인 관광객을 위한 의료관광 플랫폼을 구축해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주요 병원과 의료진 정보, 가격 및 각종 할인 이벤트 등을 모아볼 수 있고, 상담·예약까지 대행해주고 있어 한국을 찾는 의료관광객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중소기업청은 전국 23개 전통시장을 문화관광형 시장으로 육성하는 등 전통시장과 ICT의 접목도 이뤄지고 있다. 전통시장에 와이파이존을 설치하거나 QR코드를 연동한 앱을 개발해 관광객의 쇼핑 편의를 높인다.

 황진욱 에이디벤처스 대표는 “스마트폰을 가지고 다니며 인터넷에서 최신 정보를 얻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여행 경험을 공유하는 게 요즘의 트렌드”라며 “어디서나 무선 인터넷이 터지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만으로도 해외 관광객들과 젊은 층의 유입이 보다 촉진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관광산업의 고(高)부가가치화를 위해서도 스마트 관광은 필요하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한국 관광·레저산업이 국내총생산(GDP)에 기여하는 총효과는 5.9%다. 전 세계 평균 관광·레저산업의 GDP 기여도(9.2%)를 크게 밑돈다. 고용에 기여하는 효과 역시 세계 평균(8.7%)보다 낮은 6.4%에 머물렀다. 현대경제연구원 안중기 연구원은 “관광에 ICT와 아이디어를 접목하는 게 스마트관광의 핵심”이라며 “전통과 기술이라는 이종 간 결합을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고 조언했다. 실제 ‘내 손안의 경복궁’에 앞서 서비스를 시작한 ‘내 손안의 덕수궁’의 경우 인근 지역의 먹거리와 볼거리가 함께 소개돼 주변 지역 상권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클라이브 역시 전시장 주변에 한류 스타들의 음반·의류·액세서리 등을 파는 ‘기프트 숍’을 함께 운영해 수익을 늘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을 앞둔 만큼 ICT 관광 인프라를 더욱 확장시킬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빅데이터 분석에 기초해 관광객의 유형에 맞는 쇼핑몰·음식점·할인쿠폰 등의 정보를 제공하거나 스마트폰 기반의 숙박·예약 서비스를 만드는 게 그 예다.

 KT경제경영연구소에 따르면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아리아호텔은 객실에 고객이 들어서면 자동으로 커튼이 열리면서 멋진 풍경을 보여주고, 조명·음악을 켠다. 스마트기기를 통해 객실의 주요 기능을 조종할 수 있고, 저장만 해두면 다음에 다시 호텔을 찾을 때 이를 그대로 재현할 수 있다. 호텔 주변의 레스토랑을 들어가면 맞춤형 할인 쿠폰 등을 전송해주기도 한다. 이런 스마트 서비스를 도입하면서 이 호텔의 매출은 2011년 8억9000만 달러에서 지난해 9억5000만 달러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미국 뉴욕 맨해튼의 ‘요텔’이라는 호텔에선 로비에 설치된 컴퓨터로 체크인·체크아웃을 하고 24시간 내내 카드열쇠 하나로 식사까지 모두 해결할 수 있다. 미국의 호텔체인 ‘스타우드 호텔스 앤드 리조트 월드와이드’는 스마트폰으로 작동되는 디지털키를 선보였다. 온라인 숙박 중개 벤처기업 ‘코자자’의 조산구 대표는 “미국에는 ‘트래블 테크(Travel Tech)’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터넷·모바일 관광 콘텐트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며 “스마트관광이 제대로 자리 잡히면 서울에 집중된 관광객을 지방으로 유도해 관광산업을 더 키울 수 있다”고 조언했다.

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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