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뉴스 클립] 뉴스 인 뉴스 <242> 사건 속 종교, 종교 속 사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0면

심새롬 기자

세월호 참사로 기독교복음침례회(세칭 구원파)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32명이 집단자살한 ‘오대양 사건’으로 그 존재가 세간에 알려진 지 27년 만입니다.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전직 검찰 간부는 오대양 사건을 “휴거 종말론에 영향을 받은 집단자살극”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성과 광기 사이를 넘나들며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종교 관련 사건들을 되짚어봅니다.

심새롬 기자

다미선교회 시한부종말론 사건 (1992년)

 “오늘 밤 자정 예수님이 세상으로 오시고 우리는 하늘로 들림을 받게 됩니다.”

 1992년 10월 28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 다미선교회에 흰 옷을 입은 신도 1000여 명이 모였다. 선교회를 이끌던 이장림 목사가 남긴 계시에 따라 열광적인 집단 기도가 이어졌다. 모두가 손꼽아 기다리던 운명의 날이었다. 신도들은 심판의 날 세계가 종말하고 예수님이 구원받는 자들을 하늘로 들어올릴 것이라는 ‘휴거’를 믿었다. 지상을 떠나 천상으로 가는 마당에 세속의 물질 따위가 필요할 리 만무했다. 선택받았다고 믿은 자들은 집과 차, 부동산과 퇴직금까지 모두 교회에 아낌없이 헌납했다. 그리고 드디어 운명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십, 구, 팔, 칠....삼, 이, 일, 땡!”

 아뿔싸.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찬송가와 기도소리마저 사라진 교회당에는 적막감만 가득했다. 신도들은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일부는 실망감에 자살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검찰은 이 목사를 사기 및 외환관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신도 4명으로부터 6억5000만원을 빼앗은 혐의 등이었다. 그가 개인적으로 사용한 34억원의 내역을 적은 장부도 발견됐다. 1000만원 이상을 헌납한 신도만 30여 명에 달했다. 하늘로 들려 올라갈 것이라던 그는 일곱 달 뒤인 93년 5월 22일에 만기되는 환매채 3억원어치를 사들인 사실이 발각됐다. 법원은 그에게 징역 1년에 2만6000달러 몰수형을 확정 선고했다.

아가동산 사건(1996년)

 96년 12월1일 수원지검 여주지청에 피해자 30여 명 명의로 된 진정서가 한 통 접수됐다. “아가동산은 사이비 종교집단이다. 지난 87, 88년 신도 2명을 무참히 살해했고 이 중 한 명은 암매장했다”는 내용이었다. 검찰은 진정 접수 8일 만에 아가동산을 압수수색했고 김기순(여) 교주의 실체가 세상에 알려졌다.

430만㎡(13만 평)에 달했던 경기도 이천 아가동산 입구 모습. ‘아가(雅歌)’는 ‘우아한 노래’라는 뜻으로 김기순 교주의 아호에서 따왔다. [중앙포토]

 김씨는 78년 전북 이리시의 한 교회에서 만들어진 신흥 종교 ‘삭발교’의 신도였다. 그는 82년 경기도 이천에 4000여 평의 임야를 사들여 ‘아가농장’을 세웠다. ‘우아한 노래’를 뜻하는 본인의 아호인 ‘아가’를 따서 지은 이름이었다. 김씨는 농장 안을 ‘신나라’라고 이름 붙인 뒤 지상천국이라고 선전하며 새로운 사이비 종교 ‘아가동산’을 만들어나갔다. 당시 피해자 중 한 명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인구가 늘고 공장이 많아져 갈수록 살기 힘들어지니 새로 농장을 만들고 마음 편하게 한번 잘 살아보자’는 김씨의 말에 마음이 솔깃했다”고 털어놓았다.

 교주 행세를 하기 시작한 김씨는 성경과 찬송가에 나오는 ‘예수’를 모두 ‘아가’로 바꾸고 기성종교를 강하게 비난했다. 철저한 생활공동체를 운영해 신도들은 오전 6시부터 밤 12시까지 낮에는 농장, 밤에는 공장에서 일하며 강제 노동과 집단 성폭행에 시달렸다. 휴일은 1년에 단 4일(신정·광복절·성탄절·교주생일)뿐이었다. TV시청과 신문구독은 물론 외부출입과 가족면회, 부부생활도 금지했다. 아가동산은 6년 만에 13만여 평으로 불어났다. 김씨는 신도들의 땀으로 레코드 유통업체인 신나라레코드를 설립·운영했다.

 검찰은 김씨를 살인 등 혐의로 구속기소해 사형을 구형했다. 하지만 암매장된 시신을 끝내 찾지 못했다. 법원은 시신 없는 살인사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조세포탈·횡령·폭행 등 여섯 가지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4년에 벌금 56억원을 선고했다.

영생교회 집단소사 사건(1998년)

 맑은 10월의 어느 가을날. 강원도 양양군에 살던 40대 공무원 김병천씨는 조깅을 하던 중 건설현장 부근에서 불타고 있는 승합차를 목격해 급히 119에 신고했다. 차 안에서는 불에 탄 시신 7구가 발견됐다. 경찰 조사 결과 숨진 사람들은 서울 중랑구 소재 영생교회 목사 우종진씨와 부인, 아들 및 신도 4명으로 밝혀졌다. 우씨의 여동생은 “오빠가 영생교회 신도들과 함께 오래전부터 집단생활을 해왔으며 지난 7월 말 순교를 위해 강원도로 떠났다” 고 진술했다. 서울에서 신학교를 졸업한 우씨는 한때 신도 수 100여 명에 이르는 교회를 운영했지만 유일신 사상을 부정하고 본인을 신격화하면서 세상과 멀어졌다. 자살 직전까지 극소수 신도들과 폐쇄적인 신앙 생활을 하던 그의 집에서는 ‘하나님’ ‘인간’ ‘짐승의 차이’ ‘영생할 수 있는 길’ 등 비상식적인 교리를 적은 도화지 50여 장이 발견됐다. 경찰은 부검 결과를 종합해 이들이 집단 자살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 외환위기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로 가정 해체가 속출하고 세기말 종말론이 고개를 들던 당시 사회에서는 한동안 모방 범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천존회 사건(2000년)

 “나는 천존이니라. 나는 대라천에 있으며 많은 천신을 거느리고 있느니라. 너희 땅에서는 나를 하나님이요, 옥황상제요, 천주라 부르고 있으나 앞으로는 오로지 천존이라고만 불릴 것이며 그날은 임박해 있느니라.”

 천존회 사건은 서울지검 강력부가 수사한 희대의 대출사기 사건이다. 고교 졸업 후 사업실패를 계속하던 교주 모행룡씨는 39세가 되던 해 108일 산중기도를 하던 중 ‘천존의 계시’를 받았다고 한다. 계시를 따라 15세 연하 무속인 박귀달씨를 새 아내로 맞은 그는 84년 ‘동서문화협회’라는 단체를 정식 등록하고 ‘천존의 집’을 개설했다. 92년에는 ‘사단법인 천존회’ 명의로 종교법인 설립허가를 받고 재단을 세우기에 이르렀다. 기 수련을 빌미로 제자들을 모집해 신도로 만들었다.

 모씨 부부 역시 종말론을 내세웠다. “천기 15년이 종료되는 2000년 1월 15일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氣) 고갈 등으로 죽게 되지만 대라천궁에 가면 산다”는 논리였다. 세뇌된 신도들은 전 재산도 모자라 빚까지 내 재단에 헌납했다. 모씨는 전국 20개 지부 신도들을 동원해 금융기관에서 맞보증 방식으로 380여억원을 대출받도록 했다.

 검찰 조사결과 피해 신도들 중에는 신용대출이 쉬운 공무원, 경찰관, 교사, 변호사, 의사, 은행원, 기업인 등 사회적 지위가 있는 지식인 상당수가 포함됐다. 전체 신도 수는 드러난 것만 1500여 명에 달했다. 당시 검찰 관계자는 “전체 사기 액수가 1500억원 이상으로 추정되고, 피해 금융기관 점포가 5000곳에 이르는 등 종교집단 관련 사건 중 최대 규모” 라고 말했다. 모씨 부부는 끌어모은 돈으로 호화 주택 생활을 하며 3억원을 들여 해외여행을 다니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모씨 부부 등 교단 간부 42명을 구속기소했다. 대법원에서 각각 징역 8년과 5년을 선고받은 부부는 출소 후인 2008년 교단 재건을 시도하기도 했다.

JMS사건(2007년)

 2008년 2월. 국제크리스찬연합(JMS) 총재 정명석씨가 베이징에서 체포돼 국내로 송환됐다. 한 방송사가 그가 운영해 온 ‘JMS교’를 세상에 알린 지 9년 만이었다. 그는 구원을 빌미로 수많은 여성신도와 성관계를 맺고 금품을 착취해 왔다는 의혹의 중심에 있었다. JMS 피해자 모임인 ‘엑소더스’ 회원들은 정씨에게 불려가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수사에 착수한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는 정씨가 2001년부터 2006년까지 말레이시아·홍콩·중국 등지에서 한국인 여신도 5명을 성폭행한 혐의를 입증하는 데 성공했다. 대법원은 강간치상, 준강제추행 등의 혐의로 정씨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종교적 광기, 감시망 촘촘히 짜야

 위 사건들은 한결같이 ‘비이성’을 토대로 벌어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어쩜 저렇게 터무니없는 말을 믿고 당했을까’란 생각이 절로 들지만 종교 관련 사건들은 주기적으로 발생하며 반복적으로 피해자를 대거 양산해낸다. 실제 한 특수통 검사는 “뒤끝이 가장 나쁜 수사분야가 종교계다. 집단자살, 학살이나 신변위협에 휘말릴까봐 쉽게 (수사에) 들어가지 못하는 관행이 있다”고 고백했다. 사정기관의 중추인 검찰도 사이비나 이단 종교 수사는 잘 나서지 않는다. 촘촘한 사회적 감시망 구축이 필요한 이유다.

독자와 함께 만듭니다  뉴스클립은 시사뉴스를 바탕으로 만드는 지식 창고이자 상식 백과사전입니다.

* 모아 두었습니다. www.joongang.co.kr에서 뉴스클립을 누르세요.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