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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한 명까지'…잠수사 거친 호흡, 바지선 위까지 들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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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세월호 사고 현장에서 작업을 하고 올라오는 잠수부. [진도=최승식 기자]

14일 오후 2시 세월호 구조·수색 잠수사들이 있는 전남 진도 앞바다 바지선. 취재진이 경비정에서 옮겨타려 하자 누군가 소리쳤다. “절대 공기 호스 밟지 마세요. 생명줄이니 절대 건드리면 안 됩니다.” 바닷속 잠수사가 공기 호스를 통해 숨을 쉬고 있다는 얘기였다.

 순간 한쪽에서 ‘풍덩’ 소리가 들렸다. 물살이 약해지는 ‘정조기’에 맞춰 해군 해난구조대(SSU) 대원 1명이 뛰어든 거였다. 이어 팀을 이루는 1명이 더 뛰어들었다. 바지선 위에서 6명이 이들에게 연결된 공기 호스를 잡았다. 하나당 3명씩이었다. 이들은 줄이 꼬이지 않도록 조심조심 내려보내며 기계 앞에서 수심과 수압, 잠수사의 호흡 상태를 점검했다. 처음엔 “쉬익~ 쉬익” 숨쉬는 소리가 들리더니 수심이 깊어지자 호흡 간격이 짧아지고 거칠어졌다.

 30분 뒤 작업을 마치고 올라온 잠수사는 헬멧을 벗자마자 거친 숨을 내쉬었다. 바지선 위에 주저앉더니 어지러운 듯 머리를 몇 차례 흔들었다. 눈은 초점이 흐려져 있었다. 깊은 바닷속 잠수의 영향이었다. 잠수에서 시신은 찾아오지 못했다.

 해양경찰은 이날 취재진에게 사고 후 약 한 달을 맞은 구조·수색 현장을 공개했다. 오후 2시를 전후한 정조기에는 민·관·군 잠수사 40명이 투입됐다. 동시에 바다에 들어가는 건 2인 4개 조, 3인 1개 조로 모두 11명이다. 바지선 한쪽 상황판에는 투입될 잠수사 명단이 있고 그 아래에는 ‘마지막 한 명까지’라고 적혀 있었다. 실종자를 전부 찾아내겠다는 각오였다.

잠수부 뛰어드는 모습. 이들은 한 달 가까이 계속된 잠수로 “심신이 지쳐가고 있지만 실종자 가족들을 생각하면 잠수를 멈출 수 없다”고 말했다. [진도=최승식 기자]

민간잠수사 전광근(40)씨는 “물이 흐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데다 장애물이 많아 손으로 더듬어 수색하고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또다른 민간잠수사 이만호(49)씨는 “시신을 발견했을 때 정신적 충격을 받지 않느냐”는 질문에 “SSU에서도 이런 일을 했었고 천안함 인양에도 참여해 그리 문제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해군구조지원본부 군의관 이동건(28) 중위는 “잠수사들이 체력적으로 몹시 힘들어하면서도 ‘한 명이라도 더 찾겠다’며 물에 뛰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잠수사는 “꿈에 시신이 나타난다”는 등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이에 정부는 이날부터 잠수사들의 심리치료 지원에 나섰다. 심리검사를 해 필요한 잠수사에게는 정신과 상담과 치료를 실시한다. 구조단은 이날 시신 5구를 인양했다. 지난 9일 2구를 수습한 뒤 나흘 만의 성과다. 이로써 세월호 사고 희생자는 281명, 실종자는 23명이 됐다.

 진도에 남은 실종자 가족 40여 명은 이날 0시쯤 팽목항 방파제에 모여 실종자들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돌아오라”고 외쳤다. 한 어머니는 난간을 잡은 채 “○○아 엄마가 미안해. 지켜주지 못해서…”라며 눈물을 흘렸다. 또 다른 어머니는 “제발 꺼내만 달라고요. 안아볼 수 있게라도 해줘요”라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땅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하는 어머니도 있었다. 여성 경찰관이 “기운 내세요”라며 부축해 일으키려 했지만 다리 사이에 얼굴을 묻고 어깨를 들썩거릴 뿐이었다. 잠시 후 가족들은 서로 “힘내자”면서 부둥켜안았다. 그래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한 어머니는 울다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다. 가족들은 모두 손을 잡고 “용기와 희망을 잃지 말자”며 임시 숙소인 천막으로 향했다.

진도=권철암·최종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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