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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연장, 근로시간 단축, 통상임금 … 한꺼번에 쏟아진 산업현장 뇌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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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현대중공업 노사 대표가 14일 올해 임금·단체협상에 앞서 상견례를 가졌다. 12년 만에 출범한 강성노조(위원장 정병모) 체제에서 첫 노사협상의 막이 오른 것이다. 이날 상견례는 예년과 달리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노사가 사전에 쟁점을 조율하며 어느 정도 공감대를 형성한 뒤 열린 예전의 상견례와 딴판이었다. 노조와 사측의 생각이 완전히 달라서다. 노조는 2002년 이후 가장 높은 임금인상 요구안을 냈다. 노조업무만 보는 전임자에 대한 임금지급, 사내하청 근로자에 대한 장학금 지급과 같은 복지혜택 확대, 임금삭감 없는 정년연장,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노조의 작업중지권 확보, 신규채용 확대도 요구했다. 정부의 정책이나 법원의 판결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 많다. 이렇다 보니 사측은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안 받아들일 수도 없고, 받아들이자니 부담이 만만찮아서다. 사측은 “인사경영권을 침해하는 것은 거부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미 법제화된 정년연장이나 통상임금 확대, 비정규직 차별금지 제도를 모른 척할 수도 없다. 사측은 최근 “통상임금 확대에 따른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하계휴가비, 희망퇴직자 위로금, 출산전후 휴가급여, 잔업수당은 정기상여금을 뺀 약정임금으로 계산하자”며 역제안을 했다. 통상임금을 기업 사정에 맞게 변형해서 적용하자는 것이다. 노조가 반발하는 것은 물론이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올해 노사협상은 오래 끌 것 같다”고 말했다. 19년 무분규 타결이란 궤도가 20년 만에 탈선할지도 모른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런 사정은 현대중공업뿐이 아니다. 상당수 기업의 노사가 통상임금 확대, 정년연장, 근로시간 단축과 같은 굵직한 정책 현안과 맞물린 협상을 진행 중이다. 한꺼번에 쏟아진 정책에 사측은 부담을 호소하고, 노조는 법에 따른 권리를 주장하며 충돌하는 양상이다.

 금속노조 현대차 지부도 통상임금에 정기상여금은 물론 복리후생비, 휴가비까지 포함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년 60세 보장에다 근로시간 단축과 관련해 주간2교대제인 ‘8(1조)+8(2조)’ 근무체제에서 전 사원 완전월급제를 요구안에 포함시켰다. 기아차나 한국GM도 마찬가지다.

 이렇다 보니 올해 임금·단체협상은 예년에 비해 상당히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노사 갈등 요인은 많고, 현안마다 뚜렷한 기준이 없어 갈피를 못 잡아서다. 고용노동부 임금근로시간 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올 3월 말 현재 타결률은 1.9%에 불과하다. 전년(3.0%)에 비해 1.1%포인트 낮다. 익명을 요구한 기업체 임원은 “올해 노조 요구안을 보면 정부 정책과 연결된 게 수두룩하다”며 “정확한 가이드라인이 없어 혼란만 예고되는 노사협상을 하긴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민간부문은 1.9%의 타결진척률을 보이는 데 비해 공공부문은 1.2%에 불과하다. 공공부문 개혁에 대한 노조의 저항이 만만찮다는 얘기다.

 특히 정치권이나 정부의 향후 움직임에 따라 노사협상이 엉뚱한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 근로시간 단축과 관련된 법 개정이 6월 이후 이뤄지면 임금과 단체협상을 처음부터 다시 진행하거나 추가 협상을 해야 하는 부담을 안을 수 있어서다. 고용부 임무송 노사협력정책관은 “올해는 민간과 공공부문을 막론하고 전 사업장에서 노사 간 상당한 갈등이 예상된다”며 “경제에 주름이 지지 않도록 원만한 협상이 될 수 있도록 지도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김기찬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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