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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불났다, 물 싸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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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지난 3월 말 주주총회를 맞이하는 광동제약과 농심 경영진의 얼굴 표정이 엇갈렸다.

 광동제약의 지난해 매출이 3326억4100만원에서 4683억8500만원으로 40.8% 증가한 반면 농심은 2조1757억1100만원에서 2조866억5100만원으로 4.1% 감소했기 때문이다. 영업이익 역시 광동제약은 22.2%나 늘어났지만 농심은 4.4% 줄었다.

 두 회사의 희비를 가른 건 ‘물’이었다. 광동제약은 1998년부터 농심이 갖고 있던 ‘제주 삼다수’의 유통사업권을 2012년 말 확보하고 지난해부터 생수시장에 진출했다. 삼다수가 이 회사에 준 변화는 엄청났다.

 광동제약은 지난해 매출 기준으로 전체 제약사 중 7위를 기록했다. 1963년 창업 이후 50년 만에 첫 10위권에 진입한 것이다. 매출 증가는 삼다수가 이끌었다. 전체 매출 중 26.9%인 1256억8000만원이나 됐다. 광동제약은 2016년까지 대형마트와 기업형수퍼마켓(SSM)을 제외한 소매채널에 삼다수를 유통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한 상태다.

 광동제약이 새로 창출한 매출은 농심에는 놓친 손실로 다가왔다. 2012년 농심은 삼다수 매출 2000억원을 달성하며 주가를 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삼다수 유통권을 놓쳤지만 농심은 바로 대안을 찾았다. 삼다수의 ‘한라산 물’ 대신 ‘백두산 물’을 내세우는 맞수를 뒀다. 이름도 백두산을 강조하기 위해 ‘백두산 백산수’라 지었다. 백산수는 지난해 생수 판매 순위 4위(매출 약 250억원)를 기록했다. 하지만 시장점유율은 3.3%로 1위 삼다수(42.3%)에 크게 뒤졌다. 농심 최성호 상무는 “출시 초기라 소비자에게 브랜드를 알릴 시간이 필요하다”며 “생산능력과 마케팅을 계속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농심은 지난해 8월 중국 옌볜 지역에서 운영 중인 생수 생산 공장 근처의 30만㎡ 규모 부지를 사들였다. 현재 연간 10만t 규모인 생수 생산 능력을 올해 말까지 2배 이상 늘리고 판매가 늘면 공장도 더 키운다는 복안이다.

 농심은 대형마트 시음행사는 물론 새 TV CF방송, 야구장 홍보 등 다양한 마케팅을 이어가고 있다.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올 1분기 백산수 판매개수(페트병 마개 기준)가 전년 동기보다 55% 증가했다. 가정에서 주로 마시는 2L짜리의 성장세가 26.7%, 휴대하며 마실 수 있는 500mL짜리는 105.9%나 늘었다. 올해 매출 목표를 지난해 두 배인 500억원으로 잡았다. 2017년까지는 2000억원으로 올려 삼다수를 앞서겠다는 의욕을 보였다. 특히 1998년부터 삼다수를 14년 동안 유통했던 경험을 내세우고 있다.

 삼다수를 생산·유통하는 제주도개발공사와 광동제약은 ‘10-10-10 운동’으로 1위를 확고히 한다는 전략이다. 판매량과 매출액, 순이익을 모두 10% 늘리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공사는 지난해에 취수량을 월간 기준 6만3000t에서 11만1000t으로 늘릴 수 있게 허가받았다.

지난해 1분기 음료 순위 4위서 1위로

 두 생수 브랜드의 치열한 기싸움 못지않게 곳곳에서 ‘물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롯데칠성은 최근 ‘아이시스8.0’을 대표 제품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 생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핑크색을 테마로 ‘물 한 잔으로 느껴지는 건강함’이란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하이트진로의 생수업체인 석수와 퓨리스 역시 최근 탄생 33주년을 맞은 ‘석수’에 대한 리뉴얼을 실시했다. 200억원 규모의 설비 투자를 통해 충북 청원의 제품생산라인을 교체하고 제품 디자인까지 소백산맥을 모티브로 해 바꿨다. 손봉수 대표는 “리뉴얼을 계기로 본격적인 시장점유율 확대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석수의 올해 매출 목표는 1000억원이다.

 업체들이 기업의 명운을 걸면서까지 생수시장에 역량을 집중하는 이유는 ‘돈’이 보이기 때문이다. 2000년 1562억원 규모였던 생수 시장은 2012년 5000억원, 지난해에는 5400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업계는 올해는 6000억원 규모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특히 여름이 길어지고 있고 야외활동 인구가 늘고 있는 게 주요한 원인으로 꼽힌다. 실제 대형마트인 이마트의 1분기 생수 판매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5.3% 증가했다. 지난 2년간 1분기 음료 순위에서 4위였던 생수가 올해는 1위로 올라섰다. 이마트 음료담당 배병빈 부장은 “미세먼지의 증가와 ‘물을 많이 마셔야 건강하다’는 건강상식이 전파되면서 생수 소비가 더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장이 커지자 대형마트와 편의점들도 자체브랜드(PB)를 강화하고 나섰다. 생수 제조업체 브랜드보다 20~30% 싼 가격이 강점이다. 이마트는 ‘샘물블루’와 ‘봉평샘물’을, 롯데마트는 ‘초이스’를 선보이고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이마트의 PB제품은 지난해 전체 생수 매출의 28%를 차지했다. 롯데마트도 2011년 24%에서 지난해 28%로 PB생수의 점유율을 올렸다. 편의점들도 PB생수제품에 주목하고 있다. CU생수가 ‘미네랄워터’ ‘블루드래곤’, 세븐일레븐이 ‘옹달샘물’을 매장에서 팔고 있다. PB생수들은 지난해 판매 성장률이 24.4%에 달했다.

 생수의 생산지역과 더불어 생수업체들이 강조하는 건 물의 성분이다. 하나같이 “이 물을 마셔야 더 몸에 좋고 상쾌하다”는 것을 어필하고 있다.

 농심은 아예 대형마트에서 판매되는 생수 17개 제품을 수질분석 전문가인 공주대 신호상 교수에게 맡겨 그 결과를 공개했다. 백산수에 포함된 주요 미네랄 성분이 프랑스 생수 ‘볼빅’과 함께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필수미네랄인 마그네슘과 칼슘의 농도비(Mg/Ca), 치매 현상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실리카(silica)는 가장 높게 측정됐다. 삼다수는 제주도의 다공질 화산 현무암층을 통해 물이 정화된다는 점을 특징으로 한다. 미국 식품의약국과 일본 후생노동성에서 매년 실시하는 수질 검사 테스트를 통과했으며 미국 국립과학재단인 NSF와 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인 HACCP 인증을 획득했다.

 롯데칠성은 ‘8.0’이란 숫자를 브랜드에 붙여 아이시스8.0을 대표 생수로 내세웠다. 8.0은 평균pH(용액의 산성도 )가 8.0인 약알칼리성 물이란 의미 다. 이 회사 김천덕 매니저는 “알칼리수는 물 분자가 작아 체내 흡수 및 배출이 빠른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탄산수, 프리미엄 생수도 전열 재정비

 탄산수와 고급 생수들도 커지는 시장을 바라보고만 있지는 않는다. 국내 탄산수 시장은 2010년 75억원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195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특히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천송이(전지현 역)가 숙취 해소를 위해 탄산수를 마시는 장면이 나오고, 삼성전자가 탄산수를 제조하는 냉장고를 출시하면서 탄산수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지난해엔 일화 ‘초정탄산수’가 42%, 프랑스산 ‘페리에’ 37%, 롯데 ‘트레비’가 13%의 점유율을 보였다. 업계에서는 국내 탄산수 시장 규모가 매년 30% 안팎의 성장을 보이며 올해는 약 350억원대까지 시장이 성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에 따라 업체들은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일화는 지난 12일 출시 13년 만에 신제품 ‘초정탄산수 라임’을 선보였다. 앞서 초정탄산수의 3종 패키지를 전면 리뉴얼했다. 트레비를 생산하고 있는 롯데칠성은 지난 3월 가정에 두고 마실 수 있는 1.2L대용량 페트병을 내놨다. 하이트진로음료(디아망)와 동원F&B(디톡)도 잇따라 탄산수 제품 출시에 나섰다.

 수입에 주로 의존하던 프리미엄 생수시장도 노크하는 기업이 생겼다. 동원 F&B는 최근 480mL 한 병에 1500원짜리 ‘브리즈에이’를 출시했다. 현재 국내 프리미엄 생수는 70여 종이 있으며 프랑스산 에비앙이 5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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