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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용직의 바둑 산책] '고고재팬' 1년 … 이 눈빛이 세계대회 우승 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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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본 바둑의 차세대 주자로 주목받고 있는 이치리키 료의 매서운 눈빛. 한국과 중국에 밀렸던 일본 바둑의 중흥을 노리고 있다. [사진 일본기원]
제1회 글로비스배에서 우승한 이치리키 료 7단(오른쪽)과 패자 쉬자위안 2단(왼쪽)이 복기하는 장면. 세계대회에서 17년 만에 일본 기사끼리 맞붙어 관심을 모았다. [사진 일본기원]

일본은 일어서는가.

 일본이 세계대회에서 우승했다. 11일 일본 도쿄 글로비스 경영대학원에서 열린 제1회 ‘글로비스배 세계바둑U-20’ 결승(단판)에서 이치리키 료(一力遼·17) 7단이 쉬자위안(許家元·17) 2단을 꺾고 세계 정상에 우뚝 섰다. 쉬자위안은 대만 국적의 일본기원 기사다.

 2000년대 들어 조치훈(58)의 삼성화재배 우승(2003), 장쉬(34) 9단의 ‘LG배’ ‘TV바둑아시아’ 우승(2005), 이야마 유타(井山裕太·25) 9단의 ‘TV바둑아시아’ 우승(2013)에 이은 다섯 번째 일본 우승이다. 일본 바둑을 부흥시키고자 국가대표팀 ‘고고재팬(Go·碁·Japan)’을 출범시킨 이후 1년 만의 성과라 일본은 고무되고 있다. 벌써 내년에 일본 주최 세계 기전이 하나 더 탄생하리라는 예고도 나오고 있다.

 ‘글로비스배’는 ‘한 수 30초’의 속기전이고 16명만이 참가한 신예기전이기에 일본의 우승을 가볍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일본이 만든 대회이기에 꼭 우승하고 싶었다”는 이치리키 7단의 소감처럼 일본의 기백과 실력은 예전과 달랐다.

 조(組) 예선을 거쳐 만난 8강전에서 이치리키 7단은 한국의 나현(19) 5단을 이겼고 쉬자위안 2단은 중국의 리친청(李欽城·16) 초단을 눌렀다. 리친청은 중국의 차세대를 대표하는 신예다. 4강전에서도 이치리키 7단은 중국의 강자 롄사오(連笑·20) 4단을, 쉬자위안 2단은 샤천쿤(夏晨琨·20) 2단을 꺾었다. 8강전 이후 일본은 중국과의 세 판을 모두 이겼고 한국도 한 판 꺾었다.

 일본 우승은 우연인가, 아니면 길고 긴 침체의 터널에서 이제 막 벗어나고 있다는 신호인가.

 일본은 20세기 내내 세계 바둑계를 이끌었다. 한국과 중국은 일본에서 배웠다. 그러나 지난 15년 일본은 쇠퇴일로를 걸었다. 세계대회 우승은커녕 8강 진출도 힘겨워했다. 하지만 지난해 ‘TV바둑아시아’ 우승에 이어 올해도 정상을 밟았다. 한국과 중국을 누르고 결승에서 일본끼리 만난 것은 1997년 제10회 후지쓰배 이후 17년 만에 처음이다.

 침체된 일본 바둑계지만 요즘엔 옛 영광을 되찾자는 분위기가 일고 있다. “신예들이 세계무대를 주름잡게 하고 싶다. 20~30년 뒤를 기대하면서 뒷받침한다”는 대회 후원사 글로비스 회장 호리 요시토(堀義人·52)와 같은 후원자들이 늘고 있다.

 한·중·일 삼국의 잠재력은 큰 차이가 없다. 요즘같이 인터넷으로 정보가 순식간에 확산되고 또 공유하는 세상에서 정보 부족으로 실력이 떨어지는 경우는 없다. 재능 있는 기사가 노력만 한다면 국가라는 장벽에 갇힐 일도 없다.

 일본 우승이 침체된 한국 바둑에 주는 메시지는 크다. 일본이 과연 부흥의 길로 들어섰는가 여부는 두고 봐야겠지만 이제 국내 바둑계는 중국만이 아니라 일본에서도 배워야 할 상황이다. 특히 신예들의 부진은 가벼운 일이 아니다. 4월의 ‘리민배 세계대회’에서도 예선 통과 12명에 한국은 한 명도 들어가지 못했다.

 20년간 세계대회 우승에 도취됐던 한국의 안일함은 이제 바닥을 친 느낌이다. 미래는 준비하는 자의 몫이다. 공자는 『논어』에서 “멀리 내다보지 못하면 가까운 장래에 근심이 생긴다”고 했다.

문용직 객원기자

◆이치리키 료=1997년 일본 미야기(宮城)현 출생. 2010년 입단. 2013년 제4회 오카게배와 제8회 히로시마 알루미늄배에서 우승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2014년 제39기 기성전(棋聖戰) 본선리그에 사상 최연소(16세9개월)로 진입한 후 일본의 희망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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