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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후순위채 5조 만기 … 갈 곳은 어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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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5년 전 국민은행 후순위채에 5000만원을 투자했던 김모(54)씨는 요즘 고민이 많다. 지난 10일 만기가 도래했지만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것이다. 김씨가 투자했던 후순위채 금리는 연 7% 수준. 요즘 은행에선 비슷한 수준의 수익을 얻을 만한 상품이 없다. 그는 “최근 증권사 프라이빗뱅커(PB)로부터 원금이 보장되는 주가연계파생결합사채(ELB)를 추천받았다”며 “다른 ELB와 달리 일정 조건을 만족하면 매 6개월마다 5%의 지급금을 준다는 게 마음에 들어 투자를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요 은행이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발행한 후순위채 만기가 도래하면서 뭉칫돈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 5~6월 두 달에만 5조원 이상이 만기가 된다. 올 전체로는 9조원이 넘는다. 금융투자업계에서도 다양한 상품을 내놓고 자금 끌어모으기에 한창이다.

 2008년 은행들은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연 7~9%의 고금리 후순위채를 대거 발행했다. 후순위채가 보완자본으로 인정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자기자본비율 기준에 관한 협정(바젤Ⅲ)이 시행되면서 후순위채가 더 이상 보완자본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은행이 후순위채를 더 이상 발행하지 않는 이유다.

 바빠진 건 증권가다. 예금 금리가 3%도 안 되는 상황이다 보니 투자자들이 증권가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증권사들이 가장 많이 추천하는 상품은 주가연계증권(ELS)이다. ELS 외엔 연 7~9% 수준의 수익을 제공하는 상품을 찾기 어렵다. 최근 첫 조기상환 조건을 낮추는 등 안정성을 높인 변형 ELS가 잇따라 나오면서 안정성을 중시하는 채권 투자자들의 관심도 늘었다. 은행에서도 증권사가 발행한 ELS를 신탁상품으로 만든 주가연계신탁(ELT)을 판매하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원금보장형 ELS로 불렸던 ELB를 채권과 유사하게 변형해 내놓기도 한다. 일정 조건을 만족하면 매 6개월마다 지급금을 주는 쿠폰 적립형 ELB가 예다. 신한금융투자 오경재 투자상품부 팀장은 “채권이 6개월~1년 단위로 이자를 지급한다는 점에 착안해 만든 채권투자자용 ELB”라고 설명했다.

 브라질 국채도 투자 대안으로 거론된다. 지난해 급락했던 헤알화 가치가 올해 들어 강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환 손실 위험이 줄면서 연 10%란 고금리와 비과세 상품이라는 점이 다시 부각돼, 고액자산가들 사이에서 인기다. 지금까지 한 번도 브라질 국채를 취급하지 않던 신영증권 같은 증권사들도 판매를 검토하고 있을 정도다.

 국내 기업이 해외에서 발행하는 채권인 코리안페이퍼나 주식으로 분류돼 채권이나 후순위채보다는 상환 순위가 낮지만 채권처럼 이자를 주고 만기도 존재하는 신종자본증권도 투자자들이 많이 찾는 상품이다. 하지만 발행량이 많지 않은 데다 기관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돼 있다 보니 개인이 투자 기회를 잡기란 쉽지 않다. 지방정부가 발행하는 지역개발채권이 대안이 될 수 있다. 미래에셋증권 최철식 WM강남파이낸스센터 수석 매니저는 “지방정부가 발행해 부도 위험이 적고 수익률도 연 3% 중반대 수준”이라며 “이 역시 발행량이 많진 않지만 코리안페이퍼나 신종자본증권보다는 투자 기회가 많다”고 말했다.

 자산운용사들도 후순위채 만기 자금을 타깃으로 한 상품을 내놓고 있다. 프랭클린템플턴은 지난달 말 미국 금리 연동 대출채권 펀드를 출시했다. 일명 뱅크론 펀드로 불리는 상품으로, 은행이 투자부적격 등급의 기업에 자금을 빌려주고 발행한 대출채권에 투자한다. 최철식 수석 매니저는 “일반 채권펀드는 3~4%의 수익을 내는 반면 하이일드 펀드류는 목표 수익률이 5~6% 수준이라 후순위채 투자자들에게 더 적합하다”며 “투자부적격 등급의 국내 기업은 부도 위험이 큰 만큼 선진국 기업에 투자하는 해외 펀드를 추천한다”고 말했다.

정선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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