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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줄이기 나선 대학들, 학과 통폐합 몸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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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수도권의 한 4년제 사립대 기획처장은 올 초부터 최근까지 동료 교수들과 마라톤회의를 하고 교육부에 낼 보고서를 준비하느라 야근을 밥 먹듯 하고 있다. 많게는 수백억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는 교육부의 재정지원사업 신청 마감일과 선정 발표가 줄줄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이 스스로 정원 감축 계획을 내면 교육부가 재정지원사업 선정 때 가산점을 주기로 하면서 눈치작전까지 펴야 한다. 이 처장은 “우리 대학은 대학특성화 사업에 신청하면서 당초 정원을 7% 줄이려고 했는데 경쟁 대학에서 10% 감축안을 써낸다는 얘기를 듣고 10%로 올렸다”고 털어놨다. 정원 감축과 병행해 학과 통폐합 안을 짜는 것은 더 골치다. 해당 학과 교수·학생의 거센 반발에 시달려야 해서다.

 대학가가 ‘잔인한 5월’을 거치고 있다. 정부가 지원하는 ‘3대 대학 재정지원사업’으로 꼽히는 대학특성화(CK)사업, 산학협력선도대학(LINC) 육성사업, 학부교육선도대학(ACE) 육성사업의 마감·선정이 4~6월에 집중되면서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앞으로 5년 동안 정부 예산 2조원이 대학에 투입되는 사업들이라 한 푼이 아쉬운 대학 입장에선 목숨줄이나 다를 바 없다”(강병수 충남대 기획처장)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대학 간 경쟁도 치열하다.

 3개 재정지원 사업 중 하나도 못 받게 되면 재정이 부실한 대학은 곧바로 빨간불이 켜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부실대학으로 지정된 전남의 한 사립대 기획처장은 “안 그래도 대학 구조조정 계획에 따라 입학정원을 줄이게 될 텐데 등록금 수입이 동시에 감소한다는 의미”라며 “올해 재정지원 사업을 따내지 못하면 생존이 위태롭다”고 말했다.

 대형 대학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 속출한다. 지난 8일 LINC 육성사업 신규 선정 대학이 발표된 데 따르면 국민대·중앙대·아주대는 환호성을 질렀지만 연세대는 탈락이라는 쓴잔을 마셔야 했다. 김영세 연세대 기획실장은 “황당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과”라며 “구체적인 실적과 수치로 평가받는 정량평가에 비해 사업 운영계획이나 산학협력 의지 등을 보는 정성평가 비중이 높아서인 것 같다”고 씁쓸해 했다.

 정원 감축에 따른 학과 통폐합을 둘러싼 갈등도 심각하다. 사회학과를 폐지하는 방안을 내놓은 청주대에선 학생들이 천막농성을 벌이는 중이다. 상명대는 불어교육과 폐지를 추진하다 학내 진통을 겪었다. 서원대는 학과 통폐합 통보를 받은 미술학과 학생들이 지난달 15일 총장실을 일시 점거하기도 했다. 서원대 송호열(지리교육) 교수는 “교육부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지 않고 연구 프로젝트 마감하듯 한 달 만에 구조조정안을 뚝딱 내놓으라고 하니 문제가 더 꼬이게 됐다”며 “통폐합되는 학과의 학생 입장에선 운명이 바뀌는 것인데 학교 측도 사업을 따내려고 학생들과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ACE 사업은 시행 계획 자체가 지난 3월 20일에야 발표됐다. 대학특성화 사업 등에서 정원 감축 시 가산점을 준다는 내용은 지난 1월에야 공개됐다. 경남의 한 사립대 기획처장은 “정부가 부실대학부터 퇴출할 제도는 마련하지 않고 재정지원 사업으로 정원부터 줄이고 보자는 정책을 펴는 바람에 전국 모든 대학이 몸살을 앓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 대학교육특별위원장을 지낸 민경찬 연세대 수학과 교수는 “아무리 좋은 재정지원 사업도 대학의 공감대를 얻지 못하면 성공적인 결과를 내기 어렵다”며 “현장의 목소리부터 듣고 대학들이 준비할 여유를 줘야 특성화나 산학협력 같은 사업 목적도 제대로 달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김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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