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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쇄 된 보금자리 지구 … 무너지는 집도 못 고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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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울산시 울주군 외사마을의 흙으로 만든 시골집이 무너져 내릴 듯해도 보수공사를 못 해 주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송봉근 기자]

12일 울산시 울주군 범서읍 서사리 외사마을의 한 농가. 나무 기둥과 흙벽 위에 기와를 올린 집이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롭다. 기와 아래로 썩은 서까래가 보이고 무너진 기와 탓에 방안에는 빗물이 스며든 흔적이 가득했다. 집 옆 축사는 더 심각했다. 2011년 여름 태풍에 축사 지붕이 날아가고 벽이 무너졌지만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집주인 서진순(89·여)씨는 “여름이면 집과 축사가 폭삭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이라며 “동네가 LH의 보금자리주택지구로 지정돼 있어 집을 새로 짓거나 고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인근 조춘재(69)씨 집도 마찬가지다. 나무 기둥과 기와로 된 조씨 집은 사랑채를 제외하고는 사람이 살 수 없다. 본채 안방은 서까래가 무너져 내려 각목으로 받쳐놓았다. 부엌 천장은 무너져 비만 오면 세탁기·냉장고 위로 흙탕물이 떨어진다. 본채 기둥은 왼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었다. 조씨는 “집을 고치려 해도 건축허가가 나지 않아 사랑채 방 한 칸에서 아내와 함께 생활한다”고 하소연했다.

 울주군 서사리 74가구(주민 140여 명)를 포함한 범서읍 척과리, 중구 다운동 일대 186만3000㎡는 2009년 12월 ‘다운 2지구 보금자리주택지구’로 지정됐다. 정부 정책에 따라 1만929가구(공동 1만640가구·단독 289가구)의 주거단지를 만들기 위해서다.

 토지·건물 보상금을 포함해 총 1조5000억원의 사업비가 드는 이곳은 원래 계획대로라면 2007년 보상이 시작돼 2012년 12월 주택단지가 들어서야 한다.

 하지만 지구지정 4년5개월이 지나도록 사업이 이뤄지지 않아 주민들만 고통을 받고 있다. 특히 서사리 농촌지역이 심하다. 주민들은 낡은 집을 손볼 수 없는 것은 물론 농사용 비닐하우스조차 마음대로 지을 수 없다. 보금자리지구에서는 주민 재산권을 제한하는 법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2009년 이후 LH가 자금난에 시달리면서 전국 보금자리주택지구를 구조조정한 때문이다. 울산 다운2지구가 2011년 ‘사업시기 조정지역’으로 분류돼 언제 공사가 이뤄질지 모르는 지구가 된 것이다.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이 떠안게 됐다. 이사를 하고 싶어도 주택 매매가 이뤄지지 않아 무너질 듯한 집에 그대로 살 수밖에 없다.

 문제는 사업 재개도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정문수 LH 부산울산본부 단지사업부 부장은 “최근 다운2지구의 사업성이 ‘낮음’으로 재평가돼 사업계획을 다시 변경하고 있다”며 “사업 재개 시기는 현재로선 알 수 없다”고 말했다. 2010년 보금자리지구로 지정된 광명·시흥 지구는 주택 과잉공급으로 최근 지구 지정에서 해제됐다.

 서사리 박태환 이장은 “새 집을 지으면 LH가 주민들에게 지급해야 할 보상금이 늘어나게 돼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고 직원이 증개축 등을 막기 위해 하루 한 번씩 마을을 순찰한다”며 “지구 지정이 해제되면 그동안의 피해는 누가 보상하느냐”고 불만을 털어놨다. 주민들은 ‘보금자리지구 지정한 공무원 XXX’ ‘LH 규탄’ 등이 적힌 펼침막을 마을 곳곳에 걸어놓고 항의하고 있다.

글=차상은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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