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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비즈 칼럼

나쁜 규제 만드는 공무원 순환보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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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김태유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세월호 참사 열흘 만에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가 있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소시민에서부터 대통령까지 어느 누구라도 이런 어처구니없는 참사의 희생자들에게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규제공백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지난 정부에서 선박운행 연한을 30년으로 규제완화함으로써 무고한 시민의 생명이 위험에 노출된 것이다. 그런데 불과 한 달 남짓 전에 TV로 생중계된 규제개혁 끝장토론에 대다수의 국민이 박수를 보냈었다. 그렇다면 규제는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규제란 꼭 필요하고 좋은 것”이라는 데 의문의 여지가 없다. 왜냐하면 규제는 공직자가 국민과 국가의 안전을 지키기 위하여 만든 법적·제도적 조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규제가 암 덩어리에 비유될 만큼 지탄받게 된 원인은 과연 무엇 때문일까?

 규제에는 적절한 수준의 좋은 규제가 있고, 또 꼭 필요한 규제를 안 하는 과소 규제나 필요 이상의 과잉 규제 또는 잘못된 규제처럼 나쁜 규제가 있다. 암 덩어리 같은 규제란 바로 이런 것들이다. 그런데 공직자는 왜 나쁜 규제를 하게 되는 것일까? 일부 공직자의 비리나 유착에 의한 범법행위는 단죄되어야 한다. 그러나 밥을 먹다가 돌을 씹었다고 돌이 더 많은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과소규제, 과잉규제, 잘못된 규제 역시 대개는 공직자가 좋은 의도로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왜 공직자들은 좋은 의도로 나쁜 규제를 하게 되는 것일까? 역대 정권이 공무원을 윽박질러도 보고 애국심에 호소도 해봤지만 백약이 무효가 아니었던가. 그 이유는 처방이 잘못돼서가 아니라 진단이 틀렸기 때문이다. 공무원은 이마에 뿔이 난 사람도 아니고 사리사욕에 눈이 먼 사람도 아니다. 그런데 이들이 어떻게 과소규제로 참사를 초래하거나 과잉규제로 경제를 옭아매는 사람으로 변해버렸을까?

 문제의 핵심은 공무원의 ‘순환보직’ 제도에 있다. 일 년이 멀다 하고 자리가 바뀌는 공직인사제도하에서 공무원이 생소한 보직을 새로 맡게 되면 의욕적으로 기존 규제를 완화하든가 또는 업무가 파악될 때까지 사고가 터지지 않도록 규제를 강화하게 된다. 과소규제든 과잉규제든 잘못된 규제든 공직자가 좋은 뜻으로 만든 나쁜 규제는 결국 업무를 잘 몰라서 생긴 일이다. 그런데 업무가 채 파악되기도 전에 또다시 순환보직제도로 인해 자리를 옮기게 된다. 이것이 바로 나쁜 규제의 악순환이다. 결국 이 악순환은 비전문가 제너럴리스트 공무원을 양산하는 현 공직인사제도가 만들어낸 셈이다.

 한때 엘리트 공무원이 한강의 기적을 선도할 수 있었던 것은 모방경제시대에 가장 적합한 관료집단이 제너럴리스트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창조경제시대는 새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전문가 정책관료집단을 요구한다. 시대환경은 급변하는데 기마군단을 전차군단으로 바꾸지 않으면 곧 돈키호테의 모습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미래지향적 전문가 정책관료집단을 육성하는 새로운 공직인사제도를 하루빨리 도입하자. 이것만이 세월호 참사나 규제개혁 끝장토론을 근본적으로 끝내는 유일한 방책이기 때문이다.

김태유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