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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곱창 골목엔 원조가 없다 … 이유는 첫 주인이 이사 가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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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곱창식당 51곳이 영업 중인 안지랑 곱창 골목 전경. 식당 앞 도로변에 연탄 화덕이 설치된 드럼통 테이블이 줄지어 놓여 있다. 곱창을 구울 때 나는 연기 때문에 눈이 맵지 않고 운치도 있어 실내 테이블보다 먼저 자리가 동난다. [프리랜서 공정식]

대구시 남구 대명동 안지랑네거리 옆 골목길. 차량 한 대가 다닐 수 있는 좁은 골목 양쪽에 식당이 늘어서 있다. 하나같이 ‘○○곱창’이란 간판이 붙어 있다. 곱창집은 500m에 걸쳐 이어진다. 대구의 토속음식인 돼지곱창을 맛볼 수 있는 ‘안지랑 곱창 골목’이다. ‘안지랑’은 왕건이 후백제의 견훤과 대구 팔공산에서 싸우다 패배한 뒤 이곳으로 도망쳐 안전하게 피신했다는 의미의 안좌령(安座嶺)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곱창 골목 남쪽에 위치한 앞산 계곡의 물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안지랑 곱창 골목의 곱창집은 51곳. 이들 식당이 하루에 사용하는 돼지곱창만 800㎏에 이른다. 하지만 골목 어디에도 ‘원조’ ‘원조 할머니집’ 같은 간판이 없다. 골목의 원조는 충북곱창 주인이었던 김순옥(75)씨다. 이곳에서 생선구이집을 하던 김씨는 1979년 우연히 곱창구이를 개발했다. 한 손님의 말을 듣고 시도한 것이 ‘대구식 곱창구이’의 시초였다.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부근 시장에서 구입하던 곱창이 모자라 도축장에까지 가 사올 정도였다고 한다. 당시 거들떠보지도 않던 돼지곱창이 훌륭한 먹거리로 변신한 것이다. 김씨는 10여 년간 이 골목에서 혼자 장사를 했다. 그러다 90년대 들어 가게가 하나둘 생겨났고,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맛 골목으로 자리를 잡았다. 싼 가격에 술을 마시려는 손님이 늘어나서다. 김씨는 건강 문제로 지난해 가게를 팔고 이 골목을 떠났다.

 그렇게 원조집이 사라졌다. 하지만 사소한 해프닝은 있었다. 충북식당을 인수한 주인이 ‘원조’라는 간판을 달았고, 이 골목에서 두 번째로 문을 연 식당도 가세했다. 결국 상인회가 나섰다. 둘 다 원조가 아니라는 점을 조목조목 설명하고 회원의 화합을 위해서라도 원조 간판을 떼라고 설득했다. 두 식당은 순순히 받아들였다.

 호객행위와 바가지요금이 없는 것도 눈에 띈다. 이 골목에서 호객행위를 하다 적발되면 한 번에 벌금 20만원을 내야 한다. 앞서 회원들은 이를 따르겠다는 동의서를 작성했고, 지금까지 벌금을 문 식당은 없다. 바가지요금이 없는 것은 상인회가 곱창을 공동으로 구매해 식당마다 공급하기 때문이다. 곱창의 원가가 같아 가격을 많이 올려 받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골목은 원조 논쟁, 호객행위, 바가지요금이 없는 ‘3무(無)’ 골목이 됐다.

 곡절도 많았다. 곱창을 씻고 삶는 과정에 냄새가 많이 나 주민들의 항의가 이어졌다. 길가에 무질서하게 테이블을 내놓는 집이 늘어나면서 구청과 경찰의 단속도 심해졌다. 이 같은 문제는 이곳 토박이이자 구의원을 지낸 우만환(66)씨가 안지랑 곱창 골목 상인회 회장을 맡으면서 해결됐다. 우씨는 구청과 경찰서를 찾아다니며 설득한 끝에 길가에 노상 테이블을 설치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곱창 가공을 외부 업체에 맡겨 악취 민원도 없앴다. 고질적 문제였던 주차난을 없애기 위해 골목 두 곳에 주차장을 만들었다. 안지랑 곱창 골목은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전국 5대 음식테마거리로 뽑혔다.

연탄불에 곱창이 노릇노릇하게 익는 모습(사진 위쪽). 곱창을 시키면 바가지로 떠 접시에 담아준다.

 곱창 골목에는 오후 6시쯤이면 사람들이 몰려든다. 단골이 많은 집부터 손님이 차기 시작한다. 오후 7시쯤이면 식당마다 빈자리를 찾기 어렵다. 골목길엔 곱창 굽는 연기와 고소한 냄새가 피어오른다. 골목길 자체도 구경거리다. 남쪽 150m 구간의 식당 앞 도로변에는 드럼통 테이블이 줄지어 놓여 있다. 드럼통 안의 연탄 화덕에 석쇠를 올려놓고 구워 먹는다. 1970, 80년대 선술집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곳곳을 대낮처럼 비추는 LED 가로등도 곱창 골목의 명물로 꼽힌다. 이 골목의 단골이라는 유호정(27·회사원)씨는 “싸고 맛있는 곱창집이 널려 있어 퇴근길 소주 한잔 하기엔 그만”이라고 자랑했다.

 흥미롭게도 곱창을 주문하는 단위는 바가지다. 플라스틱 바가지로 곱창을 퍼 접시나 양푼(알루미늄 그릇)에 담아 준다. 한 바가지는 500g으로 1만2000원이다. 두 바가지면 4명의 술안주로 충분하다. 옛날 바가지로 떠 주던 것이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곱창집들은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일부 식당은 곱창·막창·볼살 등으로 구성된 모둠 메뉴를 선보인다. 조금씩 맛보며 골라서 주문하라는 뜻에서다. 또 깊은 맛을 내기 위해 참숯으로 훈제를 한 뒤 내놓기도 한다. 마당곱창 식당은 연기가 빠져나가도록 하면서 밤하늘도 구경할 수 있도록 식당 안 천장을 틔웠다. 이 식당 주인 최원목(48)씨는 “외지 관광객은 물론 외국인까지 찾아온다. 먹을거리도 중요하지만 볼거리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이런 노력 덕에 평일의 경우 2000~3000명, 휴일엔 5000여 명이 곱창 골목을 찾는다. 70%가 대학생 등 20, 30대이지만 가족 손님이나 미식가들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상인회의 우만환 회장은 “지난해 곱창 골목 식당들이 올린 전체 매출액이 280억원에 이른다”고 귀띔했다.

 곱창 골목 식당 중 그린(053-246-2897)·또또(053-622-1531)·마당(053-654-0007)·안지(053-622-3086)·영생(053-629-7308)이 유명하다. 동대구역에서 지하철 1호선을 타면 안지랑역까지 17분 걸린다. 3번 출구로 나오면 200m 거리에 곱창 골목이 있다.

  대구=홍권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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