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일 서울 통의동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홍성태(49) 상지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연구자로서 회한이 든다”고 말했다.
[세월호 침몰] ‘위험사회’전문가 처방전
홍 교수는 1997년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베크의 『위험사회』를 처음 국내에 번역해 소개했다. 선진사회가 고도의 기술 발달로 ‘위험을 체계적으로 생산’하는 ‘위험사회(Risk Society)’라는 베크의 주장은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홍 교수는 베크의 이론을 바탕으로 한국적 현실을 연구해 2007년 『대한민국 위험사회』라는 책을 펴냈다. 고위험 기술을 사용하면서도 사회가 투명하게 작동하는 독일과 달리 고위험 기술과 부정부패가 결합된 한국 사회는 ‘악성·후진적 위험사회’라는 경고였다.
그는 “세월호 참사는 규제 완화라는 이름으로 비리를 제도화하고 과학의 얼굴을 빌려 비리를 합법화하는 우리 사회의 모순적·기형적 구조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홍 교수는 “대한민국이 위험사회를 넘어 ‘사고사회(Accidental Society)’로 진입했다”고 진단했다.
-한국 사회가 ‘악성·후진적 위험사회’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뭔가.
“울리히 베크의 위험사회는 투명하고 합리적인 독일 사회를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사회의 질이 높은 나라에서도 고위험 기술을 사용함으로써 위험사회의 속성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베크의 이론만으론 우리 사회를 설명하기 힘들다. 사회의 질이 독일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제시한 분석 틀은 기술이 발전 정도와 사회의 정비도를 함께 비교하는 것이다. 독일이 고위험 기술을 사용하지만 잘 정비된 사회라면, 한국은 같은 고위험 기술을 사용하면서 사회의 정비도는 떨어지는 사회다. 이 같은 ‘악성·후진적 위험사회’에선 기술 발전으로 인한 위험성이 증폭될 수 있다.”
-구성원의 안전을 책임지고 사고를 예방해야 할 사회가 오히려 위험을 부추긴다는 건가.
“베크의 위험사회에 등장하는 ‘위험’의 개념은 사실 그가 창안해 낸 건 아니다. 우주왕복선 챌린저호의 폭발사고를 조사한 미국 학자 찰스 패로는 복잡한 현대사회의 재난을 ‘정상사고(Normal Accident)’라고 분석했다. 사고란 비정상적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현대사회의 사고는 정상적으로, 시스템적으로 발생한다는 의미다. 가족사회학을 전공했던 베크는 이를 좀 더 쉽게 풀어냈다. 고도기술에 내재된 위험의 속성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한국의 사례로 돌아와 보자. 만연해 있는 비리구조가 사회의 위험성을 어떻게 증폭시키나.
“이른바 ‘이중질서’ 개념이다. 모든 사회는 공식적·표면적 질서가 있고 실제 살아가는 이면의 비공식적 질서가 있다. 이 괴리가 클수록 비리사회가 되는 것이고, 작을수록 투명사회가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극단적인 이중질서 사회다. 통상 민간 기업이 비리를 주도하고 관(官)이 여기 호응하면서 비리 구조가 만들어지는데, 우리나라는 오랜 개발주의 관행 때문에 관이 우위에 있는, 관료 비리 구조가 만들어졌다. 재난대책을 만들면 공무원에게 새로운 권한이 주어지고, 이 권한으로 퇴직 전에 전관(前官) 유착이 가능한 구조를 만든다. ‘국가의 사유화’가 확대되는 것이다. 이런 구조 속에선 어떤 재난대책이나 제도를 만들더라도 작동할 수가 없다. 오히려 사고를 생산하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세월호 침몰사고에도 이런 설명이 가능한가.
“선령(船齡) 규제 완화가 대표적이다. 규제 완화라는 이름으로 비리를 제도화·합법화했다. 과학자들은 비리 구조에 부역했다. 배의 사용연한이란 게 과학적인 기준이 나올 수 있는 것인데 과학자·전문가 집단이 비리의 합법화에 일조한 셈이다. 한국선급·해운조합 등에 관리·감독 권한을 넘긴 것도 마찬가지다. 국민을 보호하고 위험을 회피해야 할 국가가 사실상 위험을 부추긴 것이다. 국가를 한 축으로 만들어진 비리세력이 재난대책, 제도를 무력화시켰다고 본다. 비리와 무능이 결합되면 어떤 제도도 작동하지 않는다.”
-세월호 침몰사고의 수습 과정, 앞으로의 재난대책은 어떻게 이뤄져야 하나.
“이번 사고를 계기로 재난대책과 비리대책 두 축으로 개혁이 이뤄져야 하는데 현재는 재난대책에 너무 초점이 맞춰진 것 같다. 앞서 말했듯, 비리대책이 제시되지 않으면 어떤 재난대책도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 조선 후기 실학자 성호 이익(1681~1763) 선생은 ‘인정론’을 주장했었다. 우리나라만큼 뇌물이 잘 먹히는 나라가 없다는 한탄이었다. 고 김진균 서울대 교수도 한국 사회를 ‘연줄결속체’라고 진단했었다. 비리로 인한 이익이 그로 인해 치러야 할 대가보다 크다면 비리는 없어질 수 없다. 마지막으로 또 다른 비리의 합법화·제도화는 없는지 면밀히 살펴야 한다. 어마어마한 원전 부품 비리가 있지 않았나. 아파트 수직 증축 허용은 문제가 없는 것이었나. 또 다른 대형사고가 발생할까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