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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백성호의 현문우답

평소와 달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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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 기자 중앙일보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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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풍경1 : 1800년 6월 조선의 정조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기득권 세력이던 노론 벽파에 맞서 숱한 개혁을 추진하던 왕이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죽음에 ‘정조 독살설’이 퍼져나갔습니다. 한양의 관리와 사대부는 물론이고 지방까지 소문이 떠돌았습니다. 민심은 분노했습니다. 경상도 인동에서는 장시경 부자와 형제 등이 “국왕이 약을 잘못 써 승하했다. 장차 군사를 모아 상경해 일을 도모하고자 한다”며 사람들을 이끌고 관아를 습격했다고 합니다. 결국 실패한 장시경은 낙수암에서 투신 자살했습니다.

 #풍경2 : 1919년 1월 21일 고종 황제가 승하했습니다. “그날 이완용이 궁에 머물며 숙직을 했다” “궁의 나인 둘이 올린 식혜를 아침에 먹고 급사했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두 나인 중 한 명은 고종 승하 이틀 뒤에 숨지고, 나머지 나인은 한 달 뒤 심한 기침 끝에 숨졌다는 설도 있었습니다. 조선 백성은 분노했습니다. 장례식을 앞두고 덕수궁 대한문 앞에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습니다. 결국 고종 인산일(장례일, 3월 3일)에 맞춰 전국에서 들고 일어났습니다. 그게 3·1 운동입니다.

 #풍경3 : 1926년 4월 25일 조선의 마지막 임금, 순종이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때도 독살설이 퍼졌습니다. 조선 백성은 분하고 억울했습니다. 순종의 장례 행렬이 단성사 앞을 지날 때 수천 장의 격문과 함께 “대한독립만세” 함성이 터졌습니다. 그게 전국으로 퍼져간 6·10 만세운동의 시작이었습니다.

 #풍경4 :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검찰 수사로 인한 갑작스러운 죽음이었습니다. 보수와 진보, 진영에 따라 바라보는 시각은 다릅니다. 진보 진영은 촛불을 들었습니다. ‘억울한 국상’이라고 본 겁니다. 광화문에는 추모 인파가 몰렸습니다. ‘정치적 죽음’으로 해석하던 분노의 에너지는 정치적 창구인 지방선거를 통해 표출됐습니다.

 역사 속에는 이런저런 국상이 있었습니다. 참 묘합니다. 비극적인 국상을 당할 때마다 꼭 분노의 에너지가 모였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대한민국은 ‘상가(喪家)’가 됐습니다. 온갖 매체를 통해 세월호의 비극이 실시간으로 중계됐습니다. 국민이 상주가 되고 조문객이 됐습니다.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이덕일 소장은 “세월호 참사는 자발적 국상(國喪)이다. 거기에는 우리 민족 정서 중 하나인 한(恨)의 표출이 있다. 가해자는 뚜렷한데 응징할 힘이 부족할 때 나타나는 집단정서다”라고 진단하더군요.

 생각해 봅니다. 세월호 참사의 가해자는 누구인가. 크게는 국가와 관료와 청해진해운, 작게는 모든 개인입니다. 그럼 이 엄청난 분노의 에너지를 어디로 표출해야 하는가. 누구는 ‘구원파’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려 하고, 또 누구는 지방선거에서 세월호를 전략적 무기로 삼으려 들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세월호 희생자들을 다시 한번 죽이는 셈입니다.

 역사 속의 국상은 말합니다. 분노의 에너지는 늘 출구를 찾습니다. 저는 그 에너지에 주목합니다. 그건 세월호의 희생자들이 남긴 힘입니다. 그들의 유산입니다. 그걸 어떻게 쓸 것인가. 어디로 물꼬를 틀 것인가. 세월호 희생자들을 향한 진정한 위로와 조문이 거기에 달렸습니다.

고종 독살설이 퍼졌을 때 분노의 에너지는 3·1운동으로 분출했습니다. 세월호가 남긴 이 엄청난 분노의 에너지는 어디로 솟구쳐야 할까요. 저는 눈을 감습니다. ‘번뇌가 보리(菩提·지혜)다. 분노의 에너지가 생명의 에너지다. 그 분노가 나를 향하게끔 하자. 그 힘으로 나를 먼저 개조하자. 그리고 국가도 개조하자’. 퇴근길, 저는 횡단보도 앞 정지선에서 차를 세웁니다. 평소와 달리.

백성호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