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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계 이슈] 중국에 추월당한 위기의 한국바둑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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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마지막 세계대회 결승이었던 삼성화재배 결승 3번기 2국. 이세돌 9단이 중국의 탕웨이싱 3단(당시·오른쪽)에게 패하며 우승을 넘긴 순간, 한국바둑은 18년 만에 무관으로 전락했다.


국력은 하루아침에 비약할 수 없다. 바둑 실력도 마찬가지다. 오랜 시간 축적된 전문가들의 노력과, 바둑을 애호하는 국민적 지지와 후원이 그 토대다. 한중 바둑 대결은 동아시아 문화 주도권을 둘러싼 양국 간 경쟁의 한 국면이다. 바둑의 보편적 가치가 확산돼야 창조적 천재가 탄생하는데, 그 저변 확보를 위한 한중 바둑계의 반상(盤上) 전쟁은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2013년은 한국바둑에 있어 치욕의 한 해였다. 지난 몇 년간 중국바둑의 위협이 가시화되면서 한국바둑의 위기설이 심심찮게 부각되었는데 그나마 2012년까지는 한국과 중국이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그 균형의 본질은 단지 한중 양국 기사의 세계대회 우승 횟수를 따지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좀 더 세밀하게 세계대회 본선 진출자 현황을 살피는 것으로 들어가면 이미 중국이 한국을 한참 앞지르고 있다.

한국바둑은 이세돌 9단을 필두로 한 최정상급 기사들의 선전으로 중국바둑과의 줄다리기에서 근근이 버텨왔다. 그 방파제가 2013년 마침내 와르르 무너져 내린 것이다. 한국바둑은 백령배·LG배·응씨배·춘란배·몽백합배·삼성화재배를 중국에, TV바둑아시아선수권대회를 일본에 넘기면서 2013년 개인전으로 치러진 7개의 세계대회 우승을 모두 놓치는 악몽의 해를 보냈다. 1996년부터 2012년까지 매년 한 차례 이상씩 17년간 이어온 우승 행진도 막을 내렸다.

2013년 한국바둑이 이처럼 최악으로 비틀거린 데는 그동안 한국바둑의 지주로 굳건히 자리하던 이세돌 9단의 개인적인 부진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2000년부터 타이틀 홀더로 데뷔해 매년 하나 이상, 한해 6개 이상의 우승컵을 들어올리기도 했던 그가 2013년에는 5개의 국내외 결승전에서 모두 준우승에 머물렀다. 이세돌 9단의 어깨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던 한국바둑 역시 함께 침몰하는 형국이 됐다.

그렇다면 몇 년 사이 중국바둑이 이처럼 눈부시게 약진한 이유는 뭘까? 첫째로 국가 차원의 적극적인 후원을 등에 업은 폭넓은 저변을 들 수 있다. 과거 한국과의 경쟁에 밀리면서 자존심을 구긴 중국은 이후 ‘타도한국’을 외치며 바둑계에 정책적·문화적 지원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지금은 중국 33개 성시(省市) 체육국 산하의 엄청난 지원금을 비롯해 중앙정부 차원에서도 정책적으로 바둑을 적극 장려하고 있다. 바둑대회 성적에 따라 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교 진학에까지 높은 가산점을 부여하고 있다. 은행이나 공공기관에서도 축구에 이어 바둑이 스카우트 조건 2순위에 꼽힐 정도다. 또한 프로기사에게는 성적에 따라 한국 돈으로 몇 십만 원에서 몇 백만 원까지의 종신연금을 지급하고 있다.

프로기사에게 종신연금 주는 중국바둑계

지난해 6월 한중 정상회담 때 시진핑 주석이 창하오 9단을 “석불(石佛·이창호 9단)을 이긴 기사”라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친히 소개한 것만 봐도 중국에서 바둑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렇다 보니 매년 입단대회 참가자 80명(이들은 전년도 시드 20명과 함께 입단대회를 치러 16등까지 프로로 뽑힌다)을 가려내는 선발전에도 수백 명의 참가자가 몰려 프로입단에 도전한다. 반드시 입단을 목표로 하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중국에서 바둑은 금기서화(琴棄書?: 속세를 떠난 경지에서 거문고·바둑·글씨·그림을 즐기는 것을 다룬 동양화의 화제)의 한 덕목으로서 기본적인 교양이자 필수 취미로 인식되고 있다.

또한 집중력과 학습능력이 향상되는 효과와 더불어 바둑대회 성적이 좋을 시 상급학교 입학 가산점까지 부여되니 바둑을 배우는 어린이의 수가 우후죽순처럼 늘어난다. 그만큼 중국바둑계는 기저에서부터 풍부한 저변을 확보하고 있다는 얘기다. 폭넓은 저변을 바탕으로 이들 중에서도 가리고 가린 우수한 인재가 매년 프로기사로 배출되니 중국바둑은 그 층이 두터울 수밖에 없다.

둘째로는 활성화된 공동연구 풍토다. 스포츠처럼 국가대표 시스템을 도입한 중국은 공동연구를 통해 실력을 키웠고 꾸준히 바둑영재들을 키워냈다. 위기의식을 느낀 한국 역시 2013년 후반기부터 국가대표상비군 제도를 신설해 운영하고 있지만 아직 초기 단계다.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중국의 공동연구 풍토에는 그들만이 내세울 수 있는 장점이 많다. 가령 세계기전 결승과 같은 중요한 경기를 중국기사가 앞두고 있을 경우 국가대표팀 감독은 맞붙을 상대국 선수와 비슷한 기풍의 중국선수들을 동원해 집중스파링을 시키고, 함께 모여 상대 선수에 대해 철저히 분석하고 연구한다.

2013년 LG배 세계기왕전에 스웨 9단이 결승에 올라 원성진 9단과 일전을 앞두고 있었을 때도 그랬고, 올해 구리 9단이 이세돌 9단과 진행 중인 10번기에서도 마찬가지다. 구리의 10번기 우승을 위해 구리가 지정한 3명이 이세돌의 최근 기보를 같이 분석해주고 구리의 컨디션 조절과 스파링 대국까지 도와준다고 한다.

아무리 공동연구라 하더라도 승부를 가리는 반상을 마주한 자리에서는 적이자 라이벌이 되어야 하는 상황에서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비기(秘技)’를 모두 공개할 수만은 없는 한국바둑의 현실과는 사뭇 다르다. 자신의 몸을 내던져서라도 한국바둑에 밀리는 것만은 기필코 막아내리라는 중국바둑의 공동체의식이 돋보인다. 여기에 공동연구 풍토와 맞물려 가파른 실력 향상을 이끌어내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셋째로는 중국이 주최하는 국내외 대회가 많아지면서 프로기사들이 풍부한 실전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중국 경제가 활성화되고 바둑 열기가 커지면서 자연히 바둑대회의 수효가 점진적으로 늘어났다. 2013년 중국이 개최한 세계대회는 총 6개로 한국의 3개를 훌쩍 넘어섰다. 세계대회 총 우승상금 규모에서도 총 525만 위안(한화 약 9억 1700만 원)으로 한국의 8억원을 뛰어넘어 처음으로 총 우승상금 역전을 기록했다.

근래 국내 랭킹 1위 독주 체제를 갖추고 올해 중국바둑의 맹렬한 기세에 제동을 걸 것으로 기대되는 박정환 9단.

세계바둑 평정하는 1990년대 생 중국 프로기사

프로들은 실전을 통해 그간의 공부와 연구를 확실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나갈 수 있다. 공동연구와 풍부한 실전 대국의 기회가 상보효과를 일으키면서 중국기사들의 지속적인 실력 향상을 이끌어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일찌감치 바둑영재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지금까지 다수의 영재 입단자를 배출해낸 점이다. 중국은 2007년부터 15세 이하에서 4명을 우선 선발하는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바둑영재들이 일찍 입단해 하루빨리 프로무대에서 성장해나갈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1990년 생 이후 세대들이 세계무대를 주름잡으며 중국바둑의 비약적 성장을 이끌었다.

1991년생인 퉈자시(LG배)와 저우루이양(백령배), 스웨(LG배)를 비롯해 1993년생인 탕웨이싱(삼성화재배), 1996년생인 판팅위(응씨배)와 미위팅(몽백합배) 등이 세계대회에서 우승하며 18년 만에 한국을 세계대회 무관으로 끌어내리는 주역들로 우뚝 섰다.

한국의 경우 1990년생 이후 세대 중에서 세계대회 우승컵을 들어올린 기사는 1993년생인 박정환 9단이 유일하다.

그렇다면 한국바둑은 이대로 중국바둑에 속수무책 밀릴 수밖에 없는 것일까? 세계바둑 최강국으로서의 위상을 다시는 찾지 못하고 일본바둑처럼 쇠락의 길을 걷게 될까? 뾰족한 대책과 변화를 강구하지 못하고 지금처럼 답보 국면을 이어간다면 십중팔구 그렇다고 봐야 한다. 벼랑끝에 몰린 한국바둑이 위기를 극복하고 나아가 다시 세계바둑의 정상에 우뚝 서는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서는 현 한국바둑의 문제점을 명확히 파악하고 이에 따른 적절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근래 한국바둑 부진의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바둑계 내에서도 다소 이견이 있다.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내세우는 대책도 다르지만 그중 공통적으로 공감하는 몇 가지를 꼽아 본다.

한국바둑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첫손에 꼽는 것은 바로 빈약한 저변이다. 앞서 중국바둑이 국가의 제도적·정책적인 지원 아래 지속적으로 성장해왔음을 밝혔는데 그 대목에서 한국바둑계의 현실은 훨씬 열악하다. 그렇다고 한국 역시 중국처럼 국가 차원의 대대적인 지원이 이루어질 때만을 앉아서 기다릴 수만은 없다. 바둑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제고된다면 자연적으로 정책적·제도적인 지원도 뒤따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바둑의 저변을 넓히기 위해서는 바둑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제고하는 것이 급선무다.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에게 바둑은 어려운 것, 중장년층의 취미라는 인식이 강하다. 혹자는 담배연기 가득한 옛날 기원이나 내기바둑 등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기도 하는데 이를 건전하고 긍정적인 이미지로 바꿀 바둑의 유익한 특성은 얼마든지 있다.

우선 집중력·사고력·판단력·창의력 증진 등의 두뇌계발과 학습 능력 향상, 침착성 배양 등의 직접적인 장점이 있다. 거기에 바둑의 이치는 우리의 삶과 상통하는 측면이 많아 바둑을 통해 살아가는 요령과 깨달음, 교훈 등을 얻는다는 바둑 예찬론자들도 있다.

8억7천만 원의 상금을 걸고 매월 1국씩 10번기의 대승부를 벌이고 있는 이세돌 9단과 중국 구리 9단. 3월 말 현재 이 9단이 2승1패로 앞서 있다.

장기간 바둑훈련은 두뇌 기능 발달시켜

한편 바둑계의 ‘스타 시스템’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것도 많은 사람이 문제로 꼽는다. 1945년 조남철 9단이 한성기원을 세워 한국에 현대바둑을 보급하기 시작한 이래 한국바둑의 부흥은 30여 년 전 조치훈 9단의 일본에서의 활약, 1990년 조훈현 9단의 응씨배 우승, 이후 이창호 9단의 등장으로 정점에 달했다.

1980년 일본바둑계를 평정하며 한국인의 명예를 드높인 조치훈 9단에게 한국정부가 은관문화훈장을 수여했는데 이것이 한국정부가 프로기사에게 수여한 최초의 훈장이었다. 바둑에 대한 정부 차원의 인식 제고를 보여준 첫 번째 사례로 의미가 컸다.

또한 1989년에는 제1회 응씨배에서 중국의 네웨이핑(?衛平) 9단을 3대 2로 꺾는 대역전극을 펼치며 우승을 차지한 조훈현 9단이 그 공로를 인정받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고, 같은 해 한국바둑보급과 발전에 크게 기여한 조남철 9단에게도 은관문화훈장이 수여됐다. 1996년에는 이창호 9단이 국내외 대회에서 뛰어난 성적으로 국위를 선양하고 건전문화를 보급한 공로를 인정받아 네 번째로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한편 1941년 한국 최초 프로기사가 된 이래 한국바둑의 개척자로 일생 동안 바둑의 보급과 발전에 공헌한 조남철 9단이 2006년 타계하자 노무현 대통령은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해 그의 공적을 기렸다.

문화훈장은 문화예술 발전에 공을 세워 국민문화향상과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하는 훈장이다. 프로기사들이 이 같은 문화훈장을 받게 된 것은 바둑이 문화 향상과 국위 선양에 도움이 된다는 정부의 인식 제고가 이루어진 면도 있었다. 거기에 바둑계가 이들 프로기사를 띄우고 스타로 만들어냄으로써 국민적인 관심과 성원을 이끌어낸 영향도 작지 않았다.

하지만 이창호 이후 한국바둑계는 스타 마케팅에 너무 소홀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2000년 들어 이세돌 9단이 세계바둑계의 1인자로 올라섰지만 한국바둑계는 그동안의 위상에 도취해 세계바둑 최강국의 면모를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1990년대는 중반까지 ‘이창호 키드’로 불리는 어린이들이 우후죽순 늘어나면서 전국에 바둑교실이 성행하고 바둑붐도 정점에 달했다. 이후 IMF한파를 겪으면서 차츰 간판을 내리는 바둑교실과 기원이 속출하고 현재는 극소수만이 남아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한국바둑의 빈약한 저변과 고전의 양상을 실감하면서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이세돌 9단이 한창 성적을 내고 한국바둑이 세계정상에 군림하고 있을 무렵, 이를 잘 활용해 제2의 바둑붐을 조성했어야 한다는 자성론도 있다. 이미 지난 일을 탓하기에는 때가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주목받는 기사들의 스타마케팅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기전의 ‘속기화’ 역시 한국바둑의 위기를 초래한 주범으로 인식된다. 국내 바둑기전이 점차 속기화됨에 따라 프로기사들 역시 이에 맞춰 속기에만 적응하게 된 것이 실력 향상의 저해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바둑TV 등 영상매체의 등장으로 바둑이 ‘두는’ 것에서 ‘보는’ 것으로 초점이 옮겨가기 시작하면서 관전의 긴장감과 집중성을 위해 제한시간이 대폭 줄어드는 추세다. 지금은 국내종합기전 중 국수전만이 제한시간 3시간을 유지하고 있고 olleh배와 천원전이 제한시간 1시간, 나머지 기전은 대부분 제한시간 10분에 40초 초읽기를 적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속기바둑은 장고바둑에 비해 생각할 시간이 짧으므로 깊고 신중한 수읽기보다는 감각과 심리에 의존하는 플레이를 펼치게 된다. 또한 안정된 포석을 기반으로 한 긴 승부보다는 중반 전투나 승부처에서의 수읽기와 실수가 승부에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프로기사들이 포석 연구에 소홀해지는 경향이 생긴다.

개인전에선 중국에 연속 패배했으나 2013 스포츠어코드 단체전에선 금메달을 따낸 한국 남자팀. 우승 단상 왼쪽부터 김지석 9단, 조한승 9단, 박정환 9단.

입단제도의 ‘창조적 혁신’ 필요하다

최근에는 한국바둑도 이 같은 속기바둑의 폐해를 차츰 인식하고 장고와 속기바둑을 적절히 병립해나가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최근 개막한 2014 KB리그도 매 라운드 기존 속기(초읽기 40초 3회) 4판, 장고 1판(제한시간 1시간)이던 대국방식을 올해는 장고 3판(제한시간 1시간 30분)과 속기 2판(제한시간 10분)으로 변경해 속기 편중에서 벗어났다.

입단제도도 한국바둑계의 문제점으로 자주 꼽히는 대목인데 이에 대해서는 관점에 따라 의견이 다르다. 입단의 관문이 너무 좁아 강자들의 병목현상이 심하니 입단자 수를 더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반면 그만그만한 실력으로는 어차피 프로가 되더라도 정상급 기사로 성장하기 어려우니 아예 입단대회 참가 연령의 상한선을 15세로 낮춰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후자의 경우는 15세 이전에 입단을 해야 정상급 기사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고, 또 중도에 입단을 포기하더라도 다른 분야로 돌아설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다는 논리인데 나름 일리가 있다. 입단제도 개혁 방향은 앞으로 한국바둑이 신중히 더 고민해야 할 중대한 과제로 떠올랐다.

제도적인 문제 외에도 한국바둑의 교육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 입단지망생들의 교육이 너무 결과를 중시하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다 보니 최선을 다하는 바둑보다 이기는 바둑으로, 자유롭고 독창적인 발상보다 틀에 박힌 익숙한 발상으로, 변화의 시도보다 안정 지향적인 바둑으로 바뀌어가고 있다는 것. 이래서는 입단의 관문은 통과할 수 있을지언정 대기사로 성장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향후 한·중바둑의 대결구도는 어떻게 될까? 사실상 올해도 한·중바둑 힘겨루기의 전망은 그리 밝지 못하다. 오히려 지난해에 비해 더 밀릴 수도 있다는 우려감이 크다. 하지만 한국바둑에도 전혀 희망이 없지는 않다. 우선 중국의 2013년 세계대회 우승자 6명이 모두 첫 우승이고 아직까지 두 번째 우승을 기록한 기사가 없다는 점이 중국바둑의 맹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예전의 이창호·이세돌처럼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준 기사가 아직 중국에 없다는 점이 한국바둑계로서는 하나의 위안거리란 얘기다. 그런 점에서 근래 국내 랭킹 1위 독주체제를 갖추고 꿈의 랭킹포인트 1만점 돌파에 바짝 근접해 있는 박정환에 거는 기대감이 크다. 중국의 인해전술에 대항해 박정환이 과거 이창호·이세돌처럼 일당백의 수문장 역할로 한국바둑의 흐름을 리드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박정환보다 두 살 더 어린 나현(1995)의 괄목할 성장에도 주목한다. 얼마 전 초상부동산배에서 중국의 세계타이틀 보유자인 천야오예와 판팅위를 연이어 꺾고 한국 우승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나현은 최근 개막한 2014 KB리그에서도 정관장 팀의 주장을 맡아 활약을 예고하고 있다.

한편 최근 들어 승강제 도입, 포상금 지급 등으로 참여 기사들의 의욕을 고취시키며 더욱 활발히 운영되고 있는 국가상비군 제도도 한국기사들의 실력 향상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한국바둑이 직면한 다양한 문제점에 따른 적절한 대책을 강구하고 추진해나가면서 한국바둑이 과거의 헝그리정신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똘똘 뭉쳐 중국바둑에 대항한다면 올해는 중국바둑에 통쾌하게 반격하는 기분 좋은 한 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이세나 월간바둑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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