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연휴 근신령 "걸리면 끝장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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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세월호 참사 이후 근로자의날·어린이날·석가탄신일로 이어지는 긴 5월 연휴기간에 공직자들의 부적절한 언행을 단속하기 위해 정부 내부에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에 따라 연휴기간 동안 애도 분위기에 반하는 음주가무와 골프를 비롯한 부적절한 언행, 해외 출장 및 외유성 여행 등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정부가 ‘연휴 근신령(謹愼令)’을 내려 집안 단속에 나선 것으로 2일 확인됐다.

 이에 따르면 안전행정부는 연휴를 앞둔 지난달 28일 전국 17개 광역 시·도와 227개 시·군·구와 신하기관에 ‘5월 연휴기간 중 공무원 복무기강 협조 요청’이란 공문을 보냈다. 정부 당국자는 “안행부 복무담당관실이 정부 모든 부처와 산하기관에 별도로 같은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고 전했다.

 중앙일보가 입수한 이 공문에서 안행부는 “세월호 사고와 관련해 국민적인 애도 분위기를 감안해 각 기관에서는 소속 공무원이 5월 연휴기간을 경건하고 차분한 가운데 보낼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럴 때 걸리면 죽는다’는 경고메시지가 담겼다. 안행부 고위 당국자는 “세월호 사고 이후 처음 맞는 연휴에 공무원들의 복무 기강을 단속하기 위해 공문을 보낸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정부는 세월호 사고 발생(4월 16일) 이후 모두 4회에 걸쳐 공직자의 언행을 단속하는 공문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4월 18일에는 정홍원 총리가 “여객선 침몰로 인한 국가 재난상황에서 모든 공직자가 공직 기강 확립에 더 만전을 기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따라 사고대책 관련 부서의 필수 인원은 24시간 비상근무를 해 왔고, 기타 부서도 주말에 국별로 한 명씩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비상근무를 해 왔다. 그 와중에 안행부 송모 국장이 진도 팽목항에서 지난달 20일 기념사진 촬영 논란을 일으켜 직위해제된 뒤 사표가 수리됐다.

 이에 따라 안행부는 지난달 21일 또다시 언행 조심, 이벤트 행사 자제, 연가 사용 자제 등을 담은 ‘공무원 근무기강 확립 재강조’ 공문을 발송했다. 22일에는 사고 초기에 구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지적이 일자 “해경이 80명을 구했으면 대단한 것”이라고 부적절한 발언을 한 목포해양경찰서 소속 모 과장이 직위해제됐다.

안행부는 지난달 23일 공무라도 국외 여행을 자제하라는 공문을 별도로 보냈다. 경북 포항시청, 충북 청주시청, 전북 장수군청, 인천시 옹진군청, 대구·경북 경제자유구역청 등에 소속된 공직자들이 세월호 참사 와중에 줄줄이 해외 여행을 떠나 비판을 받은 데 따른 뒷북 조치였다.

 정부가 모든 공직자에게 ‘연휴 근신령’을 내린 데 대해 당연한 조치라는 시각도 있지만 일각에서는 책임을 회피하는 과도한 몸 사리기와 복지부동(伏地不動)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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