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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대학생칼럼

'영혼 없는' 뉴스는 사절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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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윤주영
중앙대 신문방송학부 4학년

지난 화요일, 갑자기 휴강이 됐다. 예전 같았으면 휴강을 만끽했을 텐데 이날은 그러지 못했다. 대신 합동분향소를 찾았다. 학교에서 안산은 멀지 않았고 마침 검정색 옷을 입었다. 분향소 가는 길. 친오빠의 군 부대 면회를 자주 가서 익숙한 길이었지만 안산으로 향하는 버스 승객들의 표정은 이전과 사뭇 달리 무거웠다. 분향소에 가며 그간의 일을 반성했다. 중간고사라는 핑계를 대며 봉사 한번 가지 않았다. 그저 내가 했던 일은 뉴스를 본 것뿐이었다. 그마저도 계속 보니 우울해서 일부러 피했다. 사고 직후 실망스러운 보도들이 이어졌다. 한 인터넷언론은 통신사 긴급구호품이 ‘잘생겼다’며 말장난을 쳤다. 케이블 채널에선 영화 ‘타이타닉’을 방영했고, 심지어 지상파 방송사까지 사고보험에 주목하는 보도를 했다. 전원이 구조됐다는 오보는 오열로 이어졌다. 속보경쟁이 초래한 비극이었다. 언론에 피해자의 표정은 그저 보도대상일 뿐이었다.

 4년 전, 신문방송학부에 입학하고 배운 것은 재난 보도였다. 2010년 3월 발생한 천안함 사태 때문이었다. 당시 교수님은 언론윤리를 강조하며 재난보도준칙이 필요하다 말했지만 우리는 우리의 준칙을 배울 수 없었다. 대신 미국·일본의 가이드라인만을 배웠다.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 후에 한국기자협회는 당시 한국언론재단과 재난보도준칙 초안을 만들었지만 그 후 흐지부지됐다.

 가이드라인의 필요성은 사고 때마다 강조됐다. 하지만 준칙이 초안인 채로 있던 11년 동안 언론은 유언비어를 막지 못했고, 유족은 당연한 인터뷰 대상이었다. 피해자와 국민을 위한 보도가 아니라 언론을 위한 보도였다. SNS와 케이블 방송의 등장으로 준칙이 개정돼야 했지만 가이드라인조차 없다니. 꼭 4년 만에 같은 그림을 봤다. 또 부끄러웠다.

 지난달 15일은 보스턴테러 1주기였다. 테러 당시 미국 언론들 역시 갑작스러운 테러에 속보경쟁을 했고 오보를 냈다. 이때 ‘뉴욕타임스’의 대처가 빛났다. 경쟁사의 보도에도 침묵을 지키며 속보를 마다했다. 실시간을 포기한 대신 진실함을 얻은 것이다. 속보가 없으면 오보도 없다. 속보경쟁 속 ‘영혼 없는’ 뉴스를 국민들은 원치 않는다. 국민들이 JTBC의 ‘뉴스 9’에 열광했던 건 이번 사태에 대해 진솔한 사과로 시작했던 손석희 앵커의 진정성 덕분이 아닐까.

 사고가 났을 때 초기 대처가 핵심인 것처럼 언론 보도에서도 초기 보도가 가장 중요하다. 재난안전본부만큼 중요한 것은 재난보도준칙이다. 처음부터 잘 보도하기 위해선 적어도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안 해야 한다. 그래서 “추가 소식이 들어오는 대로 알려드리겠습니다”라는 기자의 한마디가 더 중요하다. 기사에 나오는 생존자 수에 가족들은 전부를 걸기 때문이다.

윤주영 중앙대 신문방송학부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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