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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보균 칼럼

관료 개조의 긴급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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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박보균
박보균 기자 중앙일보
박보균
대기자

관료사회의 실체가 드러났다. 그 내면은 무책임과 무능이다. 비리와 결탁으로 엉켜 있다. 관료집단은 이익단체로 변했다. 관피아(관료 마피아)는 번창한다. 세월호 참사는 그에 따른 관재(官災)다.

 박근혜 정권의 인사는 관료우선이다. 내각과 청와대는 공무원들로 채워졌다. 퇴직 관료의 공기업 낙하산 투하는 성공한다. 관료전성시대가 열렸다. 대통령의 관료 신임 덕분일 것이다. 그 믿음은 배신으로 돌아왔다. 고약한 역설이다. 세월호 참변은 공직사회의 집단실패다.

 공직 집단은 울분의 대상이다. 29일 박 대통령은 합동 분향소에서 조문했다. 희생자 가족들은 절규했다. “해수부부터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아 달라”-. 관료 공화국의 기세는 추락했다. 그들에겐 잔인한 반전이다. 그 상실은 자업자득이다. 국민에 대한 배신의 대가다.

 국민은 공무원을 뒷받침한다. 봉급은 국민 세금이다. 퇴직 관료의 공기업 경영은 대체로 부실하다. 적자는 국민 세금으로 메운다. 공무원 연금은 퇴직 특혜다. 그들의 품위는 보장된다. 그만큼 적자투성이다. 서민 세금은 그걸 채우는 데 쓰인다. 국민은 관료 인생 이모작도 챙겨준다. 반대급부는 미약하다. 관료집단은 국민 기대를 저버렸다. 염치없는 배반이다.

 박근혜 정부의 관료 득세는 유별났다. 아버지 시대의 성취 기억 때문일까. 1970년대 박정희 시대의 관료상은 독특한 경험이다. (‘박정희의 공무원, 박근혜의 공무원’ 2013년 10월 23일자 칼럼) 그 시대 공직사회는 목표의식, 애국심으로 충만했다. 오늘의 관료사회는 변질됐다. 공복(公僕)의 전통은 흐릿하다.

 박 대통령의 관료 믿음은 헝클어졌다. 그것은 과잉 기대, 과도한 집착이었다. 박 대통령은 “적폐를 바로잡지 못해 한스럽다”고 했다. 적폐만이 아니다. ‘박근혜 어젠다’의 현장 실천은 더디다. 창조 경제는 국정의 간판 과제다. 창조의 언어는 관료의 문법과 다르다. 관료 체질과 충돌한다. 하지만 창조 국정의 지휘탑은 공무원들이다. 성과가 미흡할 수밖에 없다.

 ‘정부 3.0’은 작동하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에서 확인됐다. ‘정부 3.0’은 박근혜 정부의 차별화된 의욕이다. 그것은 정보 개방·공유와 협업이다. 공무원 성향과 맞지 않는다. 그들은 칸막이와 관할 다툼엔 익숙하다. 그렇게 단련돼 왔다. 그 폐쇄의 행태는 외부 충격으로 바꿔야 한다. 하지만 3.0 추진 사령탑은 관료다. 성공하기 힘든 집행 구조다.

 규제는 ‘공무원 하는 재미’다. 규제는 민간인을 통제한다. 인·허가부터 국민은 고개를 숙인다. 공직 권력의 쾌감이다.

규제는 관피아의 기반이다. 규제는 줄지 않는다. 그럴수록 관피아는 득세한다. 전관예우는 가동된다. 규제혁파는 잘못된 권한의 포기다. 공무원은 저항한다. 규제 완화는 어렵다. 규제완화는 비장한 결단을 요구한다.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느슨하다. 공직 인생을 걸려는 결의는 희미하다. 규제개혁의 실행 전망은 불길하다.

 박 대통령은 디테일을 중시한다. 장관과 청와대 참모들은 받아 적는다. 그것은 만기친람(萬機親覽) 논쟁을 일으킨다. 관료는 그 논란을 활용한다. 그들은 앞장서지 않는다. 논쟁 뒤편에서 눈치로 처신한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물세례를 맞았다. 그는 참사 현장에서 “책임 있게 하겠다”고 했다. ‘책임’은 그에겐 어색하다. 평판은 신뢰를 낳는다. 그의 평가는 ‘존재감 없는 총리’다. 때문에 그 말은 순간모면으로 들린다. 물병이 날아든다. 책임이란 언어의 기묘함이다.

 공직사회는 미스터리다. 국민의 분노는 전례 드물다. 이쯤 되면 내부에서 혁신의 소리가 나와야 한다. 그들은 엎드려만 있다. 변명을 퍼뜨린다. “관료는 야단치면 위축되고, 격려해야 열심히 한다”-. 그것은 유아적 발상이다. 국민에게 통하지 않는다. 대다수 국민은 관료 체질을 간파했다.

 관료 개조는 긴급명령이다. 국민적 요구다. 박 대통령은 “관피아, 관료 철밥통의 부끄러운 용어를 추방하겠다”고 했다. 그 다짐은 어려운 작업이다. 관료사회는 철옹성이다. 외곽에서 역포위해야 한다. 국민의 감시 독려가 그 수단이다. 민간의 비전과 열정을 주입해야 한다.

 공직 혁신의 자발적인 궐기가 절실하다. 공복(公僕) 자세는 복원해야 한다. 그런 의지로 무장한 공무원도 많다. 그들은 솔선수범의 상상력을 키워 왔다. 공직 서비스 역량을 다듬어 왔다. 그들의 창의와 활력은 저지당한다. 배타적 집단주의 때문이다. 그 고질병을 퍼뜨리는 관료들이 존재한다. 박 대통령이 언급한 “자리 보전을 위해 눈치만 보는 공무원”이다. 공공의 적이다. 그들을 분리, 퇴출시켜야 한다.

 관료개조에 정권 성패가 달렸다. 그것은 시대정신이 됐다. 박근혜 정부의 운명이다.

박보균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