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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지게꾼 진정문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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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밑천 없이 할 수 있어 잡았던 지게와 벌써 23년을 벗하게 되었욥죠.』추위를 이기려고 털모자를 눌러 쓴 서울역 토박이 지게꾼 진정문씨(52·서울영등포구 시흥2동89)는 주름진 얼굴에 멋 적은 웃음을 띄운다.
찐빵 장사를 하다 잘 안돼 시작한 지겟 벌이가 평생의 직업이 돼버렸지만 그는 지게를 원해본 적은 한번도 없다고 했다.
진씨의 하루일과는 새벽4시「버스」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 4시35분에 도착하는 목포발 보통급행 손님들의 짐 보따리를 운반하면서 시작된다. 새벽같이 나오는 것은 다른 지게꾼이 나오기 전에 한번이라도 더 물건을 운반하기 위한 것.
진씨의 고객은 대부분 남대문 시장을 거래하는 상인들이다.
하루 벌이는 1천5백∼2천원선.
이중 진씨가 쓰는 용돈은 1백40원짜리 국밥 2그릇 값과 40원짜리 새마을 담배 한갑 값, 모두 3백20원이다.
낮에 이삿짐 손님이라도 있어 벌이가 좋은 날이면 어린이들에게 즐 과자 50원 어치와 동태 1마리를 사 지게에 매달고 집에 들어간다. 이때가 진씨에게는 제일 즐거운 날.
그러나 「택시」용달차의 등장으로 점차 지게를 부르는 손님이 줄어 올해 들어 서너번 밖에 그런 즐거움을 가져보지 못했단다. 지게꾼 진씨에게는 용달차가 가장 원망스럽다.
지난 추석 때도 용달차 때문에 벌이가 시원찮아 국민학교에 다니는 외동아들(14)의 옷 한벌도 못 사주고 홀로 눈시울을 적셨다는 것.
세상은 갈수록 각박해지고 2∼3년 전까지는 20여명밖에 안되던 서울역 앞 지게꾼이 최근에는 50여명으로 늘어 그만큼 경쟁이 심해져 돈벌이가 어려워졌다는 것이 진씨의 말이다.
지게1개의 수명은 6개월∼1년. 진씨는 23년간 50여개의 지게를 갈았다.
지금 쓰고 있는 등대가 반쯤 닳아 없어진 지게는 2년전 목재와 멜빵을 사 손수 만든 것.
진씨의 마음을 울려주는 것은 손님들이『어이 지게』『어이 지게꾼』하며 막말로 자신을 부를 때. 진씨는 가꿈 『지게꾼 아저씨』라고 불러주는 사람도 있지만 20∼30대의 젊은 층일수록 말이 거친 경향이라고 서운해했다.
막벌이로. 밑바닥생활을 하는 지게꾼들이지만 이들에게는 훈훈한 인정과 보람을 느낄 때도 많다.
진씨는 연초 어느 눈오는 날 여수에서 올라온 한 아주머니가 많은 짐과 세 어린이를 데리고 열차에서 소매치기를 당해 오도가도 못하는 막한 사정을 들었다. 진씨는 자기 집에 그 아주머니를 데려가 남편이 살고 있는 동두천까지의 차비를 마련해 주었다.
이 부인은 그후 진씨에게 쌀1가마를 보내주었다.
이 일은 진씨가 올해 가장 흐뭇하게 여기는 일 중의 하나.
내년은 하나밖에 없는 14세 짜리 아들이 중학에 입학하는 해.
남매 중 큰딸은 진학을 시킬 수 없어 공장에 내보내고 있지만 아들만은 꼭 등록금을 마련, 중학공부를 시키겠다는 것이다. 때문에 더욱 벌이가 잘되어 주었으면 하는 것이 진씨가 새해에 거는 소망.『다른 재수도 없는 제가 사회에 무슨 큰 기대를 갖겠읍니까만 새해는 부자들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즘더 힘써주는 사회가 됐으면 해요.』진씨는 때 마침 도착하는 열차 소리를 듣고 재빨리 지게를 걸머지고 일어섰다. <박준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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