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면 으례 자금 사정이 더 나빠지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있다. 기업은 기업대로 결제 자금 마련에 급급하는가 하면, 정부는 또 정부대로 통화 억제에 분망해야 한다. 왜 이처럼 연말에 특히 통화 사정이 긴박해지는 것인지를 기본적으로 검토해 볼만하다.
얼핏 생각하면 기업의 자금 수요가 너무 많이 몰리는 때문이라 여길 수도 있다. 연말 결산 회사가 아니라도 연말이면 각종 자금 수요가 폭주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런 계절적인 자금 수요는 경험적으로 미리 계량이 가능할 것이다.
때문에 애당초 통화 공급 계획에 이런 요인까지 함께 배려되면 구태여 매년 연말마다 똑같은 일을 되풀이 않아도 될 것이다. 실제로 재정 안정 계획을 짤 때도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런데도 연말에는 항상 과부족이 생긴다. 연간 목표선을 억지로 지키려니 자연 무리와 부작용이 따르고 기업은 기업대로 곤경을 겪게 된다.
통화 공급의 계획과 실제가 잘 맞아 들지 않는 것은 계획 자체에 현실성이 적거나 계획을 실현시키려는 노력이 부족하거나 둘 중의 하나다. 올해의 경우는 애당초 계획 자체에도 비현실적인 면이 없지 않았지만, 굳이 그 계획을 밀고 나가려는 끈기도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올해는 특히 안정에 주력한다고 원래 통화 공급을 지난해 보다 20%만 늘릴 계획이었다.
그러나 수출이 호조였던 탓으로 해외 부문에서만 4천억원이 넘는 통화팽창이 생겼다. 한 곳에서 이처럼 거액의 돈이 풀리면 긴축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상반기에는 재정에서 많이 환수했지만, 추경이나 추곡 수매 등으로 이제는 사정이 거꾸로 되어 있다. 이런 현실에서 통화 증가율을 30%로 더 늘리지 않을 수 없었던 점은 이해가 간다. 결국은 계획이 오히려 현실을 추수하는 결과가 된 셈이다.
지금으로서는 30%선을 지키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정부 부문에 계속 큰 적자 요인이 남아 있는데다 민간 여신도 늘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자금 수요로는 적어도 7백억원 정도는 연말 여신을 풀어야 될 전망이지만 자금 여유는 거의 남은 것이 없다. 30%한도를 지키면서 연말 자금 수요의 일부라도 메우려면 결국 재정 집행을 일부 이월시키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라도 해서 약간의 자금 옹색이 해소된다면 다행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편법이지 정도는 아니다. 바람직한 것은 자금의 공급이 부문별, 또는 시기별로 한 쪽에 너무 치우치지 않게 처음부터 적정히 배분되는 것이 이상적이다. 재정 계획을 미리 짜는 목적도 본래 여기에 있지 않은가.
일부 재정 집행의 내년 이월에도 문제가 없지 않다. 내년에는 설비 자금을 중심으로 민간에 대한 금융 지원의 폭을 크게 늘리겠다는 것이 정부 방침이다. 올해에는 민간 설비 투자가 매우 저조했고, 수출산업의 추가 공급 능력이 거의 한계에 이르고 있는 점에 비추어 내년의 금융 지원 확대는 불가피한 요청이다.
그러나 재정쪽에서도 여전한 적자 요인이 남아 있는 데다 다시 올해 집행분까지 이월될 경우 통화 압박이 가중될 우려가 적지 않다. 이는 곧 금융과 재정 양쪽을 동시에 적극 혼용한다는 말이 되지만 현실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지난날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역시 금융쪽의 압박이 들것은 짐작이 어렵지 않다. 설비 자금 지원이 여의치 않거나 아니면 운영 자금 조달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일부의 판단은 약간 성급한 것도 같지만 반드시 기우만은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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